‘불꽃같은 삶’ 살다간 장영희 교수의 ‘내가 살아보니까’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지낸 아버지(고 장왕록), 어머니 이길자 여사(오른쪽)와 함께한 장영희 교수(가운데). 20대 때 찍은 사진이다. 샘터 제공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2009년 만 5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고(故) 장영희 교수가 그립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저술한 분이다. 1952년생인 그녀는 생후 1년 만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 비장애인들의 차별과 싸워야 했다.

입학시험조차 보지 못하게 하는 대학들의 차별의 벽에 막힌 그녀를 위해 부친 故 장왕록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가 던진 질문에 서강대 영문학과 학과장 브루닉 신부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무슨 그런 이상한 질문이 있습니까? 시험을 머리로 보는 것이지, 다리로 보나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부르닉 신부의 배려로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친 그녀에게 국내 대학들은 다시 한번 박사과정 입학 허가를 꺼렸다.

그녀는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 1985년 뉴욕주립대학에서 영문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 해 귀국한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24년간 모교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안타깝게도 그녀의 시련은 장애인으로서의 생활에 그치지 않았다.

2001년에는 유방암, 2004년에는 척추암이 그녀를 엄습했다. 굳은 의지로 이를 모두 이겨낸 그녀는 2008년 다시 찾아온 간암은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2009년 5월 결국 생을 마감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장영희 교수는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믿음으로 투병 와중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여러 권의 책을 냈다. 그중에 인터넷에 자주 등장하는 글 ‘내가 살아보니까’는 2009년 그녀가 병상에서 쓴 마지막 책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의 한 소제목입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더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을 쌓고, 진정으로 남을 위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더라.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평생이 걸린다는 말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의 마음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더라.

우리 나이면 웬만큼은 살아 본거지? 이제 우리 나이면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이 허망함인지 구분할 줄 아는 나이, 진실로 소중한 게 무엇인지 마음 깊이 깨달아 지는 나이, 남은 시간 동안 서로 서로 보듬어 안아주고, 마음깊이 위로하며 공감하고, 더불어 같이 지낼 수 있는 인간의 소중함을 깨우쳐 알아지는 나이더라.

필자는 그보다 20년 이상 더 살고 있다. 정말 이 나이까지 살아 보니까, 장영희 교수의 말씀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팔순 넘는 나이까지 살아보니까 이 땅에 맑고 밝고 훈훈한 도덕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 절실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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