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9일] 에베레스트 첫 정상오른 네팔 ‘텐징 노르가이’

2011년 남한 대통령, “北 비핵화 합의땐 김정일 초청” 발표

2011년 5월9일 당시 독일을 공식방문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포기 문제에 대해 진정하고 확고하게 하겠다는 의견을 국제사회와 합의한다면 2012년 3월26~27일(서울) 제2차 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초대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비핵화 선언은) 북한의 미래를 위해 매우 좋은 기회이며, 국제사회에 나오게 됨으로써 북한 미래가 밝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과는 관련이 없는 제안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전날 재독 한인들과 만나 “한반도에 핵이 있다는 것은 통일을 지연시킬 것”이라며 “핵무기를 가지고 통일이 됐을 때 이웃 나라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은 비핵화에 확고히 합의도 하지 않았고, 합의했더라도 이명박 대통령의 초청에 응할 수 없게 됐다. 2011년 12월17일 8시30분 현지 지도 방문을 위해 탑승한 열차에서 과로로 인한 급성 심근경색과 심장 쇼크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2007년 중국 진출한 평양단고기집

2007년 5월9일 북한을 대표하는 음식점 중 하나로 꼽히는 평양단고기집이 중국 선양(瀋陽)시의 코리아타운으로 불리는 시타(西塔)가에 첫 해외 직영점을 열었다.

평양시 락랑구역 통일거리에 위치한 평양단고기집은 1960년대 신흥단고기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현재는 630개의 좌석과 80석 규모의 연회장, 노래방과 공연장 등 시설을 갖춘 북한 최대의 단고기 전문식당으로 자리 잡았다.

평양단고기집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문을 닫지 않고 계속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식자재를 공급해줬을 정도로 북한에서 애착을 갖고 있는 외식 브랜드이기도 하다.

랴오닝 선양 허핑구(?? 沈? 和平?) ??路85?(近明珠??)에 위치한 평양동묘향산 단고기집 <자료사진= 온바오닷컴>

평양단고기집은 수년 전 선양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푸순(撫順)시에 본점 출신 요리사와 봉사조를 보내 ‘진달래’라는 이름의 직영 식당을 운영하고는 있지만 평양단고기집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사용해 해외에 식당을 낸 것은 이곳이 처음이다.

2004년 체첸 카디로프 대통령 폭탄테러 사망

2004년 5월9일 오전 아흐마드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이 수도 그로즈니 시내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폭탄테러로 사망했다. 대통령 이외에도 주요 인사 등 14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부상했다.

이날은 2차대전 승전기념일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행사장 귀빈석 의자 밑에 장치된 지뢰형태의 폭탄이 터져 카디로프 대통령과 북부 카프카스 주둔 러시아군 사령관 발레리 바라노프 대장 등이 사망했다. 근처에서 폭발하지 않은 폭탄 1발도 발견됐다. 한편 상당수 체첸 고위관리들도 숨지거나 부상했으며 로이터 통신기자 1명도 사망했다.

카디로프 대통령은 폭발 30분 뒤 병원에서 치료 중 사망했으며 바라노프 장군은 즉사했다. 체첸 반군들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카디로프 대통령은 크렘린측이 2000년 대통령직에 앉힌 인물로 지난해 10월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정식 선출됐다. 러시아와 체첸 반군간 투쟁에서 러시아 입장을 지지, 반군의 테러 표적이 돼왔다.

러시아 정부가 관여한 이 선거는 국제 사회로부터 부정선거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고 마스하도프를 비롯한 반군 지도자들은 이 선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지속적인 무장투쟁을 다짐해 왔다.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체첸은 구 소련 해체 과정에서 독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1994년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체첸을 침공, 영토 수복을 기도하면서 지금까지 러시아와 전쟁을 벌여왔다. 체첸은 1997년 아슬란 마스하도프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며 독립국으로서 첫 발을 딛었으나 1999년 다시 러시아로부터 침공을 받았고 현재도 러시아군이 체첸에 주둔하고 있다.

<체첸 관련 주요 사건 일지>

▲1999년 10월 1일= 러시아군, 1994~1996년 1차 체첸전 이후 첫 체첸 진입. 2차 체첸전 시작.
▲2000년 2월 1일 = 러軍, 체첸 수도 그로즈니 점령.
▲7월 2~3일 = 체첸 동부 아르군 등 2곳에서 연쇄 폭탄 테러···33명 사망, 84명 부상.

▲2001년 12월 30일~2002년 1월 1일 = 러시아군 그로즈니 동부서 체첸 반군과 교전···200명 이상 사망.

▲2002년 8월 19일 = 체첸 무장 세력, 러시아군 Mi-26 수송헬기 격추···121명사망.

▲10월24일 = 체첸 무장 세력, 모스크바 극장 침입 인질극, 관람객 129명과 인질범 41명 등 170명 사망.

▲12월 27일 = 그로즈니 시내 친(親)러 체첸 정부 청사에서 자살 폭탄 테러 2건 발생···83명 사망.

▲2003년 5월 12일 = 즈나멘스코예 친러 체첸 정부 청사 외곽서 차량 폭탄 테러···60명 사망.

▲7월 5일 = 모스크바 록콘서트장서 체첸 여성 2명 자살 폭탄 테러···최소18명 사망.

▲8월 1일 = 러시아 서남부 북(北)오세티야 공화국 모즈도크 군병원서 폭탄테러···50명 사망, 64명 부상.

▲9월 3일 = 러시아 서남부 스타브로폴주(州) 통근 열차 폭발 사고. 5명 사망, 30여명 부상.

▲9월 15일 = 체첸 인접 잉구셰티야 공화국 소재 연방보안국(FSB) 폭탄 테러. 5명 사망. 40여명 부상.

▲10월 5일 = 체첸 대통령 선거에서 카디로프 82.5% 득표율로 당선. 같은 달 19일 카디로프 대통령 공식 취임.

▲12월 5일 = 러시아 서남부 스타브로폴주(州) 에센투키 마을 근처서 열차폭탄 테러···37명 사망, 177명 부상.

▲2004년 2월 6일 = 모스크바 지하철 폭탄 테러···30명 사망, 100여명 부상.

▲5월 9일 = 체첸 수도 그로즈니서 폭탄 테러. 카디로프 대통령 사망, 100여명 부상.

1998년 日가격파괴왕 미야지 사망

1998년 5월9일 일본 가전제품 소매회사 조난(城南)전기의 사장인 미야지 도시오(宮路年雄)가 70세의 나이로 숨졌다. 정부 규제에 대한 그의 오랜 ‘게릴라전’은 일본인들에게 신화로 남아있다.

1994년 3월 이른 새벽 일본 도쿄(東京) 시내의 가전제품 소매회사 조난(城南)전기 앞에는 3000여 명의 시민이 가전제품이 아니라 쌀을 사기 위해 장사진을 이뤘다. 쌀 흉작으로 쌀값이 급등하자 미야지 사장은 농가에서 직접 쌀을 사들여 시중 가격의 50%만 받고 팔았다.

당시 일본 식량청은 “허가받지 않은 쌀 판매는 불법이니 당장 중단하라”고 지시했지만, 미야지 사장은 “정부가 쌀 수급 정책에 실패해서 생긴 일인데 누구를 탓하느냐. 소비자에게 쌀을 싸게 파는 것도 죄냐. 고발할테면 고발해라”고 맞받았다.

쌀은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팔렸고 정부 당국은 차마 미야지 사장을 처벌하지 못했다. 그에게 ‘가격파괴 왕’ ‘소비자의 십자군’이란 명예로운 별명이 생긴 이유다. 그러나 그의 회사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망하고 말았다.

그의 명언은 기억할만 하다. “가격은 파괴되기 위해 존재한다.”

1986년 네팔 셰르파족 산악인 텐징 노르가이 사망

1986년 5월9일 네팔 셰르파족 산악인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가 마지막 숨을 거뒀다. 향년 73세.


산악인들에게 그는 전설이었다. 1953년 5월29일 오전 11시30분 뉴질랜드에서 온 33세 청년 에드먼드 힐러리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50m)에 올랐을 때 함께 현장에 있었다. 아니 실은 그가 먼저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 서구가 주도하는 기록에는 에베레스트 첫 등정자가 힐러리로 돼 있다. 하지만 정상 앞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텐징이었다. 체력이 떨어져 처진 힐러리보다 텐징은 30분 먼저 정상 바로 밑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는 힐러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려 역사에 남을 첫 걸음을 힐러리에게 양보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에베레스트 첫 등정 50주년을 맞은 2003년 셰르파 텐징의 삶을 조명한 전기 <히말라야가 처음 허락한 사람-텐징 노르가이>가 출간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등반가들의 짐을 나르는 포터를 뜻하는 셰르파는 16세기 티베트에서 네팔로 이주해 에베레스트가 자리한 쿰부 계곡 주위에 사는 고산족을 의미한다. 1914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텐징은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보면서 첫 셰르파의 꿈을 키운다. 1935년 21살의 나이에 에릭 십턴이 이끄는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처음으로 참여한 이후 여러 차례 등반을 통해 성실하고 인간성 좋은 셰르파로 명성을 쌓았다. 영국 9차 원정대에 셰르파 우두머리이자 대원으로 참여하게 된다.

텐징은 첫 등정 후 다시는 에베레스트에 오르지 않았다. 1954년 히말라야 등반학교를 설립하고 1978년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한 텐징 노르가이 탐험회사를 세운다. 그리고 1986년 71살의 나이에 인도 서벵골 주 다르질링에서 뇌출혈로 일기를 마감한다.

서구 강대국 중심의 탐험사에 가려졌던 텐징은 아시아적 가치의 상징으로 손색이 없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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