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차상찬 연구’···일제강점기 문화운동 선구자

개벽 창간 당시 차상찬 선생(흰색 원 안)

[아시아엔=편집국]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저널리스트인 청오 차상찬에 대한 최초의 종합적인 연구서가 나왔다. <차상찬 연구 : 일제강점기 문화운동의 선구자>(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강원문화교육연구소(소장 정현숙)가 기획한 이 책 저술엔 김태웅, 박길수, 성주현, 송민호, 심경호, 야나가와 요스케, 오현숙, 유명희, 정진석, 정현숙(가나다 순) 등이 함께 했다.

청오 차상찬은 올해로 창간 100주년을 맞이하는 《개벽》 잡지의 창간동인이면서, 개벽사에서 간행한 10여종의 잡지와 타사 잡지, 일간신문 등에 수백 편의 취재기와 논설 등을 발표하여 일제에 저항하고 당대의 허위적 지식인, 지배계층을 풍자한 저항적인 저널리스트다.

이 책에서는 그의 다양한 방면의 활동을 부문별로 연구한 10편의 논문과 부록으로 최초로 정리한 차상찬 생애 연보, 《개벽》지에 실린 수백 편의 작품을 새롭게 발굴하고 종합한 목록, 차상찬에 대한 연구자료 목록 등을 수록하였다.

차상찬의 대한 연구 자료 발굴은 그의 전집 간행과 더불어 일제강점기 문화운동과 그 콘텐츠를 개발하며, 잊혀진 일제강점기 저널리스트를 복원하는데 길잡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를 통해 한국 근현대 문화사와 항일투쟁사를 재조명에도 보탬이 될 것이 틀림없다.

<차상찬 연구 : 일제강점기 문화운동의 선구자>를 펴낸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이 책을 평했다.

청오 차상찬(1887~1946)의 생애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상황 속에서 근대적 독립 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전반기 23년과 일제강점기하에서 국내외적으로 문화운동-민족운동과 무장 항쟁을 통한 자주독립을 지향하던 후반기 36년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며 전개되었다.

차상찬 전집

그는 근대 시기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라고 할 수 있는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강사로 활동하다가, 1920년 근대 종합잡지의 효시로 창간되는 《개벽》 창간동인으로 개벽사에 합류하면서 저널리스트로서의 공생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 이후 차상찬은 《개벽》을 비롯한 개벽사 내의 잡지(《어린이》 《별건곤》 《신여성》 《혜성》 《제일선》 《학생》)는 물론이고 당대의 거의 모든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왕성한 집필 활동을 전개하였다.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글을 수많은 잡지/신문에 게재하게 되면서 그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71개의 필명(筆名)을 사용한, 국내 최다 필명 보유자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이력에 비하여 그는 거의 묻혀진 인물에 가깝다. 《개벽》 잡지가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오늘날까지도 그에 비견할 만한 위력을 발휘하는 잡지를 찾을 수 없을 만큼의 성취를 이루었으며, 차상찬은 김기전, 이돈화, 방정환과 함께 개벽사의 4대 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 이유는 ‘개벽파’라고 할 수 있는 자생적 근대화, 자주적 근대화 세력의 몰락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성이 매우 크다.

차상찬은 2010년 11월 1일 제45회 잡지의 날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으면서 겨우 복권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그의 고향 춘천을 중심으로 차상찬 동상 건립(2015), 차상찬문고(컬렉션) 개설(2016), 차상찬 연구 학술대회(2016, 2017, 2018, 2019) 등이 잇달으며 차상찬을 재조명하기에 이르렀다. 또 강원문화교육연구소에서는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2018년 <차상찬전집> 1차분 3권을 발행하였으며, 학술대회 및 기념사업 등이 점점 그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차상찬에 대한 조명은 단지 한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첫째, 차상찬이 주력하였던 《개벽》 잡지의 재조명, 그리고 《개벽》이 지향하였던 문화입국으로서의 근대적 자주독립국가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근대 문화운동의 보고인 《개벽》과 개벽사 잡지들의 콘텐츠를 통해 식민지 치하에서 치열하게 전개된 문화투쟁의 전모를 재조명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문화운동은 ‘일제의 문화통치의 산물’이라는 고정관념에 편향되어 그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에 상대적으로 소홀하였다. 셋째, 개벽사의 다른 주역들(이돈화, 김기전, 방정환, 박달성 등)에 대한 연구로 이어질 것이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차상찬에 버금갈 만한 이력과 콘텐츠를 간직하고 연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차상찬 연구』는 지난 4년여 동안 꾸준히 계속되어 온 차상찬 연구 사업(학술발표)의 성과를 총망라한 것이다. 차상찬의 주 활동무대인 ‘개벽사’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차상찬과 천도교, 생애 주기별 활동, 민족문학 발굴 활동, 조선문화의 기본조사 활동, 문화기획자로서의 차상찬, 아동문학가로서의 차상찬, 민요수집가로서의 차상찬, 언론인, 언론학자로서의 차상찬 등을 조명한다.

총론인 정진석의 「식민지 조선의 항일 문화운동과 개벽」은 《개벽》이 추구한 항일문화운동을 민족, 문학, 사상, 여성, 어린이의 세부적인 관점에서 규명하였다. 성주현의 「청오 차상찬과 천도교」는 천도교청년회(청년당), 천도교소년회, 조선농민사를 중심으로 차상찬이 전개한 청년운동, 어린이운동, 농민운동, 문화운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박길수의 「청오 차상찬의 개벽사 활동」은 차상찬이 개벽사를 무대로 잡지 발간을 주도하고 주요 필자로서 활동한 과정을 생애 주기별로 조명하고, ‘조선문화의 기본조사’에 반영된 현실인식을 짚어 보았다. 심경호의 「차상찬의 민족문학 발굴 공적」은 민족문학과 민족사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차상찬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김태웅의 「차상찬의 지방사정 조사와 조선문화 인식」은 ‘조선문화의 기본조사’의 배경과 의도, 답사 과정, 성과물의 내용, 통계표의 활용 등을 검토하였다.

송민호의 「식민지 조선의 문화기획자 차상찬」은 잡지 편집자 또는 조선 문화의 기획자로서의 차상찬의 면모를 주목하고 취미잡지 《별건곤》을 분석하였다.

유명희의 「차상찬의 민요수집과 유형 연구」는 차상찬의 민요수집 활동을 통해 역사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고향 춘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고 고찰하였다.

오현숙의 「차상찬의 아동문학」은 차상찬이 전개한 아동 역사 서사에 주목하고 기초적인 개념을 정립하였다. 야나가와 요스케의 「1920-1930년대 언론계와 차상찬의 위치」는 차상찬의 언론활동과 ‘신문발달사’의 내용을 고찰하였다.

정현숙의 「차상찬 필명 연구」는 구체적인 자료를 근거로 차상찬의 71종의 필명을 확인한 내용이다.

한편 일제강점기 35년 사이에 발행된 잡지 가운데 가장 혹독한 탄압을 받고 큰 희생을 치른 잡지는 《개벽》이다. 《개벽》은 세 차례에 걸쳐 죽었다 살아나는 과정을 되풀이하였다. 제1차는 창간되던 1920년 7월부터 1926년 8월까지 72호가 발행된 기간이다. 3·1운동의 열기가 뜨겁던 1920년대 전반에서 후반으로 넘어오던 6년 사이에 수많은 압수, 삭제 처분과 정간과 벌금을 한 차례씩 당하는 가시밭길을 걷다가 폐간의 비운을 맞았다. (책 13쪽)

차상찬 선생

청오 차상찬은 1887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하여 1904년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중략) 1910년대 천도교 기관지 《천도교회월보》에 학술적 글을 게재한 이후 천도교단에서 발행한 《개벽》 창간 동인으로 참여하여 제72호로 폐간될 때까지 일관되게 편집인으로 활동하였다. 이 외에도 《제일선》, 《혜성》, 《어린이》, 《조선농민》 등 천도교 관련 출판물에 많은 글을 기고한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1922년 3월 천도교청년회 간무로 선임되어 청년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책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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