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테’ 두른 美민주당 지도부에 비판 쏟아진 이유
[아시아엔=송재걸 기자] 지난 8일, 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추도식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착용한 ‘켄테’를 두고 뒷말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추모의 뜻을 밝히며 국회의사당 바닥에 8분 46초간 무릎을 꿇는 의식을 펼쳤다.
8분 46초는 백인 경찰이 플로이드의 목을 짓누르고 있었던 시간이다. 이는 무릎을 꿇고 그의 영면을 비는 동시에 뿌리깊은 인종갈등의 역사를 끝내겠다는 다짐 또한 담겨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받으려는 의도도 다분히 있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전해진 후 이에 대한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특히 일부 소셜미디어에서는 “낸시 펠로우 하원의장 등의 ‘스카프 두르기’ 역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경 인증샷’과 다를 바 없다”며 부정적인 의견이 나왔다. 미 CNN이 9일(현지시간) “논란거리가 됐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의 순수한 문화유산을 정치선전 도구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다.
이는 민주당 의원들이 ‘무릎꿇기’ 의식을 벌이며 아프리카 가나의 전통 의상 ‘켄테’(kente)를 어깨에 둘렀기 때문이다. 켄테는 기원전 1000년경 서아프리카 가나와 토고 아칸족과 이웨족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가나에서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거나 애국심을 강조할 때 몸에 두르는 것으로 활용되고 있다.
영국 옥스포드대의 가나-나이지리아 지역 연구원 제이드 벤틸은 트위터에 “우리 선조들은 2020년 (대중 노출에 심취된) 정치인들이 행동주의의 수단으로 입으라고 켄테를 발명하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야후의 스포츠 담당 찰스 로빈슨 기자는 트위터에 “교회 앞에서, 절대 읽지 않는 성경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것과, 단한번도 입어본 적도 없었을 켄테를 걸치고 무릎 꿇는 것이 뭐가 다른가”라고 말했다. 극작가 에릭 헤이우드는 “의원들이 와칸다(영화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가공의 아프리카 국가) 체스 세트처럼 걸쳐입는 대신 (경찰개혁 등 시급한) 법률안을 통과시키는 게 더 낫지 않을까”라며 이 사태를 조롱했다.
이 두 개의 트윗은 “좋아요” 수천 개를 받는 등 보여주기 행태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편 켄테는 식민 지배 이전 가나에서 가장 강력했던 아샨티(Ashanti) 왕국에서 처음 만들어졌으며, 아샨티를 지배했던 아칸(Akan) 왕족만이 착용할 수 있던 옷감으로 왕족들이 직접 생산과 공급을 관리했다. 그러다 18세기 노예무역제도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켄테는 서구 열방이 아프리카에서 착취해간 물품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켄테는 색깔마다 고유의 의미를 가지는데 금색은 높은 지위와 평온함, 녹색은 재탄생, 푸른색은 순수한 정신과 조화, 붉은색은 열정, 검은색은 조상과의 연대·영적인 각성을 의미한다.
가나에서 켄테는 서구사회의 턱시도나 이브닝드레스와 같은 역할을 한다. 결혼식과 졸업식 때 켄테를 착용하며, 선물로 주고받기도 한다.
한편 이런 비판적인 여론에 대해 ‘코커스’ 의장으로 민주당 경찰개혁안을 발표한 흑인 출신의 카렌 바스 하원의원은 “백인 의원들이 (흑인과의) 연대를 표시하기 위해 켄테를 두른 것”이라며 “우리의 기원이자 과거를 존경하는 의미”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