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일] 세계 언론자유의 날

2009년 아시아공동기금 출범

2009년 5월3일 오전 한중일 재무장관들은 인도네시아 발리 웨스틴호텔 컨벤션센터에서 회동, 아시아 공동기금 출범에 전격 합의했다.

중국과 일본은 각각 384억 달러(32%)를 출연,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3(한중일)의 역내 자금지원체계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 다자화기금 1200억 달러를 조성하기로 합의했다. 한국도 16%인 192억 달러를 부담하게 됐고, 나머지 20%인 240억 달러는 아세안 10개국이 분담키로 했다. CMI 조기 출범에 합의, 각국의 경제 규모나 외환보유액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분담금 비율에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내 금융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한중일은 전체의 80%인 960억 달러를 각각 20%(한), 40%(중), 40%(일)이 분담해 조성키로 했다. 분담률은 3국간 국내총생산(GDP), 외환보유액 등 경제지표와 역내 금융협력을 위한 공동노력의 필요성 등 정치적 요인도 감안됐다.

3국 장관들은 또 CMI 다자화의 성공을 위해서는 역내 경제감시기능의 강화가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가급적 조기에 독립적인 역내경제감시기구를 설립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아시아 채권시장 발전을 위해 역내 발행 채권에 신용보증을 제공하는 채권보증투자기구(CGIM) 등 인프라 구축에도 노력키로 했다. CGIM은 우선 5억 달러 규모로 아시아개발은행(ADB) 산하 독립펀드 형태로 두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3국 재무장관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무역과 투자가 위축되면서 아시아 경제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정확대 등 적극적 정책 대응과 3국간 정책공조를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2007년 올리버스톤 이라크 철군 반전광고

2007년 5월3일 CNN은 <7월4일생> <플래툰> 등 80년대 유명한 반전영화를 만들었던 올리버 스톤 감독이 “미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제작한 TV광고를 공개했다. 이틀 전인 5월1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6개월내 이라크 철군 완료’를 토대로 하는 전쟁비용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직후 발표된 광고라서 흥미가 더했다. 미군의 이라크 철군을 요구하는 여론은 점점 확산돼 가고 있었던 점도 이 광고에 대한 흥미를 증폭시켰다.

이 광고는 미국의 이라크 철수를 촉구하는 단체인 무브온(MoveOn.org)과 참전용사 단체인 보트베츠(VoteVets.org)의 후원으로 제작됐다. 60초와 30초짜리 두 편으로 제작된 이 광고는 2003년 이라크전 개전 첫 날부터 1년간 이라크에 머물렀던 존 부른스가 올리버 스톤 감독과 인터뷰하면서 이라크의 참상을 전하는 내용이다.

광고에 등장한 존 부른스는 이라크 복무 중 2000여명의 이라크 주민들이 ‘미군의 이라크 주둔’을 반대하며 폭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고 말한다. 부른스는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라며 “이라크 주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라크에 파병됐다고 교육받았으나 그들은 우리를 향해 총을 쐈다”고 회상했다. 또 “미군을 기한도 없이 이라크에 주둔시키며 정체를 확인할 수도 없는 적들에게 공격받도록 놔둔다는 것은 잘못이고, 비도덕적이며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7월4일생>의 저자로 베트남전에서 총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된 참전용사 론 코빅도 등장, “우리 군인들을 지지하자.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자(Support Our Troops, Bring Them Home)”고 제안했다.

한편 한국에서도 2004년 7월8일 노무현 대통령 집권 당시 이라크 파병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했다. 당시 한국의 라디오방송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을 진행하던 정범구 전 국회의원은 월남 참전 전우회 황명철 회장을 인터뷰 했다.

정 전 의원은 “재향 군인회 등 대부분의 안보 단체가 파병 찬성 입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이라크 파병은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에 황 회장은 “인간이 너무나 황폐화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이 망각되고 파괴되는 것을 8년8개월 동안이나 체험했다”면서 “최전방에서 전쟁을 치른 참전용사들의 생각은 모두 나와 동일하다”고 대답했다.

Oliver Stone’s “Bring Them Home” (30 second version) from Gowanus Sound Initiative on Vimeo.

 

2004년 세계 언론 자유의 날 (World Press Freedom Day)

2004년 5월3일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는 반체제 활동 죄목으로 20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인 쿠바 언론인 라울 리베로(당시 58세)에게 ‘세계언론자유상’을 수상했다. 마쓰우라 고이치로(松浦晃一郞) 당시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세계언론자유상 시상식에서 “이 상은 독립 언론을 위해 용감하고 끊임없이 헌신해온 라울 리베로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면서 쿠바 당국에 리베로의 석방을 촉구했다.

‘세계언론자유상’은 마약거래 조직 폭로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1986년 12월17일 자기 회사 앞에서 피살된 콜롬비아 언론인 기예르모 카노를 기리기 위해 1997년 제정된 상이다. 매년 5월3일 ‘세계 언론자유의 날’에 맞춰 시상식을 거행하며, 상금은 2만5000달러다.

리베로는 1988년 쿠바 국영통신사를 그만둔 후 민간통신사를 설립, 기자모임을 만들어 독립적인 언론활동을 해왔으며 지난해 3월 반체제 인사 검거과정에서 붙잡혔다. 쿠바 정부는 그가 국가의 독립과 영토 보전을 저해했다면서 25명의 다른 언론인들과 함께 그를 옥에 가뒀다.

유네스코는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3년 ‘세계 언론 자유의 날’에도 전쟁의 혼미한 상황을 파헤치려 노력하는 언론인의 전문직업 정신을 치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유네스코는 당시 “1990~2002년까지 최소 274명의 언론인들이 전쟁 지역에서 숨졌다”면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에 직면해서도 용감성을 보여준 언론인들을 치하하고 사실을 파헤치려는 기자들의 끈기를 찬양했다.

제1회 세계 언론자유의 날은 1994년 5월3일이었다. 유엔은 유네스코의 추천을 받아 1993년 12월20일 유엔 총회에서 매년 5월 3일을 세계 언론자유의 날로 선포했다. 많은 나라에서 신문과 다른 미디어에 대한 정부의 억압으로 언론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있으며,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일반인들에게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진실을 밝히는 와중에 생명마저 위협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위해서 였다.

유네스코는 이에 앞서 1991년 4월29일부터 5월3일까지 아프리카 남서부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에서는 ‘독립적이고 다원적인 아프리카 언론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 마지막 날인 5월3일 자유언론의 원칙들을 담은 <빈트후크선언>이 채택됐다. 세계 언론자유의 날이 5월3일로 정해진 것은 이 빈트후크선언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세계 언론자유의 날’에는 언론자유의 옹호와 신장에 이바지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유네스코가 기예르모 카노 세계 언론자유상을 수여한다.

2009년 기예르모 카노 언론자유상은 레바논의 여성 저널리스트 마이 시디아크가 받았다. 레바논방송공사(LBC)의 뉴스앵커인 시디아크는 2008년 9월25일 그의 목숨을 노린 폭탄 테러로 왼손과 왼다리를 잃었다.

1997년 이 상이 제정된 이래 지난해까지의 역대 수상자는 중국의 가오유(Gao Yu), 나이지리아의 크리스티나 아니야누, 멕시코의 헤수스 블랑코르넬라스, 시리아의 니자르 나이유프, 미얀마의 우 윈 틴, 짐바브웨의 제프리 니야로타, 이스라엘의 아미라 하스, 쿠바의 라울 리베로, 중국의 청이종이다. 대표적인 관제언론의 나라로 알려진 중국에서 2명의 수상자가 나온 점이 눈에 띈다.

한편 5월3일은 언론과 밀접한 날인가 보다. 1966년 5월3일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런던 타임스’가 오랜 전통을 깼다. 1785년 창간된 이래 전면 광고만 게재하던 1면에 기사를 실은 것이다. 넬슨 제독이 1805년 10월 트라팔가르 해협에서 프랑스-에스파냐 연합 함대를 격파하고 전사했을 때에도, 제 1~2차 세계 대전 때 런던이 공습 당했을 때도 1면에 기사가 아닌 광고를 실었던 ‘런던타임즈’였다. 국내외 유력지들과의 경쟁 탓이다.

 

세계언론자유의날 관련 아시아기자협회 성명서

아시아기자협회(회장 Ivan Lim)는 5월3일 세계언론자유의 날을 맞아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언론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올들어 4월 말 현재까지 17명의 언론인이 취재현장에서 숨을 거뒀고 지난해 취재현장에서 사망한 전세계 언론인은 46명이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취재현장에서 언론자유를 수호하다 희생당한 언론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자유로운 취재활동은 어떤 이유로도 제한 받아서는 안되며, 이를 통해 기자들은 인권과 세계평화라는 숭고한 가치를 목숨처럼 지켜나가는 데 앞장서야 한다.

아시아기자협회는 취재 최전선에서 진실을 추구하고 자유언론을 실천하는 이 땅의 언론인들에게 다시 한번 격려를 보낸다.

2012년 5월3일

(사)아시아기자협회 (Asia Journalist Association, AJA)

1970년 미군, 캄보디아 침공

1970년 5월3일 미군이 베트남국경을 넘어 캄보디아로 전격 침공했다. 캄보디아 국경 서쪽을 따라 조성된 베트콩의 주요 보급로 ‘호치민 루트’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B-52의 맹폭격 아래 미군 8000여 명이 ‘호치민 루트’로 진격했다.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은 호치민루트를 통해 군수물자와 병력을 보급해가며 미군에 큰 타격을 가해왔다.

캄보디아의 국왕 노로돔 시아누크는 ‘호치민 루트’에 대한 미군의 공격을 암암리에 승인해줬다. 미군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1968년 5월부터 시작된 평화교섭이 중지되고 수그러들던 베트남전쟁이 다시 격렬해졌다.

 

1946년 2차 대전 전범 재판 개정

1946년 5월3일 세계2차대전 A급 전범을 재판하는 극동국제군사재판(동경재판)이 동경 구육군성 대강당에서 개정됐다. 기소된 28명중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을 비롯한 26명의 피고인이 무장한 MP의 지프의 호위를 받고 구치소로부터 도착했다.

오전 11시17분 오스트리아 재판장이 개정을 선언하자 법정에는 일순 긴장이 감돌았다. 수석검사가 11개 국어로 된 기소장을 낭독했다. 기소장에 나타난 이들의 죄는 ‘평화에 대한 죄’와 ‘살인범죄 및 살인 공모죄’, ‘관례의 전쟁범죄 및 인도에 대한 죄’ 등 3가지로 대분됐다. 구체적으로 전쟁계획과 준비, 수행의 공동모의, 비전투원에 대한 학살, 노예화 등 55항목이 열거돼 있었다.

동경재판은 1948년 11월 12일까지 이어졌다. 판결문에서는 전체 55개의 항목 가운데 10개의 항목을 인정했다. 10개의 항목 가운데 8개는 ‘평화에 대한 죄’를 적용한 것이고 나머지 두개의 소인이 통례의 전쟁범죄 및 인도에 대한 죄가 적용됐다. 판결문의 낭독이 끝나고 비로서 모든 피고인에 대한 형이 선고됐다. 교수형 7명, 종신금고형 16명, 금고20년 1명, 금고7년 1명으로 25명 전원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1946년 1월19일 연합국 최고사령관인 D. 맥아더는 전쟁범죄를 심리·처벌하기 위한 ‘극동국제군사재판소의 설립에 관한 명령’을 발포했다. 이에 기초해 같은 해 4월28일 A급 전범 용의자 28명에 대한 기소장이 발표됐다. 2년 반의 심리 끝에 1948년 11월12일 판결이 내려졌다.

사망자 3명을 제외한 모든 피고인에게 유죄가 선고되었다. 같은 해 12월23일 도조 히데키 등 7명의 피고인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이 재판은 뉘른베르크 재판과 함께 전쟁범죄의 개념에 전혀 새로운 내용을 부여한 재판으로서 국제법 역사상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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