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빌 게이츠 특별기고 “코로나 백신 누구나 적정가로 접근 가능해야···세계적 공공재“
[아시아엔=편집국]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은 1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면 ‘세계적인 공공재’로 분류해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이츠 이사장은 연합뉴스 등 세계 주요국 언론사에 실은 특별기고문에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을 종식할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하는 것뿐”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게이츠 이사장은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는 가격”이라면서 “어떠한 백신이든 적정한 가격으로 모두가 접근 가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빌 게이츠 기고문 전문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수많은 전문가와의 대화를 통해 코로나19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년보다 노인에게, 여성보다 남성에게 치명적이고, 사회경제적으로는 빈곤한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또한 코로나19는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바이러스는 국경을 넘나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는 이유는 각국이 이 바이러스를 최초로 인지한 이후 자국 내 확산 방지에만 집중해 왔기 때문이다. 자국민 보호라는 측면에서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 각국의 지도자들은 깨달아야 한다. 코로나19와 같이 전염성이 크고 이미 널리 퍼진 바이러스는 어느 한 곳에 있기만 하더라도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직 코로나19는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에 큰 타격을 입히지는 않았다. 이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러나 결국은 이러한 국가들에서도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할 것이다. 또한 더 많은 지원 없이는 전례 없는 수의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올 것이다. 코로나19가 뉴욕 같은 세계적인 대도시에 어떠한 타격을 입혔는지를 생각해보라. 그리고 뉴욕 맨해튼 소재 병원 한 곳에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의 병원 전체보다 더 많은 집중치료 침상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보다 자명해진다.
선진국들이 앞으로 몇달 간 코로나19 확산속도를 늦추는 데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지속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침투할 수 있다. 세계 어느 한 곳이 다른 지역을 다시 감염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전 세계적 공동대응을 통해 이 바이러스와 싸워나가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코로나19 확산 양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세계의 주요국 특히 G20(주요 20개국) 구성국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세 가지의 과제가 있다.
첫째, 팬데믹 상황에 대처하는 데 필수적인 마스크, 장갑, 진단 키트와 같은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다. 이러한 장구들은 인류의 노력으로 인해 결국은 모두를 위해 충분한 양이 구비될 것이다. 하지만 자원이 한정적인 현재 상황에서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불행하게도 아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다행히도 각국의 지도자들이 동의하기 시작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코로나19 대응 최전선에 있는 의료진들이 먼저 테스트를 받고 개인보호장구에 대한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큰 틀에서 생각해보자. 마스크와 진단검사 등이 각국에 어떠한 방식으로 배분되어야 하는지 등의 문제가 남아있다. 현재는 단순히 누가 더 높은 금액을 제시했는지에 따라 결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팬데믹 상황에서 특정 시장들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한다. 생명 구조장비 시장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의 역할 못지않게 민간 부문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코로나19 퇴치를 위한 구호장비 조달이 입찰전쟁으로 전락한다면 이 바이러스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우리는 공중보건의 관점과 의료수요를 바탕으로 자원을 배치해야 한다. 에볼라와 HIV(에이즈 바이러스) 퇴치의 최일선에서 싸워 본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이 자원 배치 가이드라인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선진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 지도자들은 WHO(세계보건기구) 등과 협력해 가이드라인을 문서화하고 모든 참가국이 이 가이드라인에 공식 동의해야 한다. 그래서 모두가 책임지는 것이다.
이러한 각국의 동의는 코로나19 백신이 마련되었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팬데믹 상황을 종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람들이 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각국 지도자들이 할 일은 백신 개발에 필요한 R&D(연구개발) 기금에 투자하는 것이다. 3년 전 우리 빌&멀린다 재단과 웰컴트러스트재단은 여러 국가와 협력하여 감염병혁신연합(CEPI)을 출범시켰다. CEPI는 백신 테스트 절차를 가속화하고 새로운 면역 생성법을 지원하기 위한 연구기구다. 신종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를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CEPI는 벌써 최소 8종류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는 중이다. 연구자들은 18개월 안에 최소한 하나는 준비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인류 역사상 병원체를 발견하고 백신을 개발하기까지의 최단기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투자기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많은 국가가 지난 2주간 CEPI에 기여해 왔다. 하지만 CEPI는 최소 20억 달러가 필요한 상황이다. 혁신은 예측이 불가능하기에 이 금액은 예측에 불과하지만, G20국가 지도자들의 의미 있는 공여 약속이 필요한 때다.
G20 지도자들이 고려해야 할 세번째 과제는 CEPI 기금은 백신 개발만을 위한 것이며, 생산과 배송물류비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종식을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금과 치밀한 계획이 필요한 상황임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백신이 가장 효과적일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또한 각각의 백신은 독자적인 생산기술과 설비가 필요하다. 이러한 사실은 투자국들이 개발 중인 백신 중 어떤 것들은 결국 사용되지도 못할 것을 알면서도, 다양한 생산시설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 않다면 백신 개발이 성공하더라도 적절한 생산시설 설치를 기다리며 또 몇 달을 허비하게 될 것이다.
또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문제는 가격이다. 만약 민간부문이 나서서 백신을 생산하기로 한다면, 그들은 경제적인 손실을 보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동시에 어떠한 코로나19 백신이든 ‘세계적인 공공재’로 다뤄져야 하고, 적정한 가격으로 모두가 접근 가능해야 한다. 세계백신면역연합(GAVI)과 같이 저·중소득 국가들이 필수적인 바이러스 면역법에 접근할 수 있도록 오랜 기간 연구하고 도움을 줘왔던 국제기구들이 있다는 점은 이런 면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특히 영국의 큰 기여를 바탕으로, GAVI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아동기금(UNICEF)과 협력하여 에볼라 백신을 포함한 13개의 새로운 백신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73개국에 도입할 수 있었다. 이들은 코로나19와 관련해서도 같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데 이론이 없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기금이 필수적이다. 구체적으로 GAVI는 향후 5년간 74억 달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현재의 면역체계를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이다. 결국 코로나19 백신을 세계 각국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기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수십억 달러의 기금은 당장 비싸다고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세계경제가 전체적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역 구축 노력의 실패로 질병 유행 기간이 더 길어지는 데 따른 비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지난 20년간 세계의 지도자들을 만나 세상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질병 퇴치를 위해 투자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설득했고, 실제로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팬더믹 상황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이 옳기만 한 일이 아니라 현명한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인류는 단순히 공통가치와 사회적 유대감으로만 이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도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주 미세한 세균이 한 사람의 건강을 해치면 이는 인류 모두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
미증유의 팬데믹 상황 속에서 인류는 운명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 또한 그에 맞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