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편지’ 김용택 “선암사 홍매는···나도 모른답니다”

선암사 홍매화 피었건만 축제는 맘속에서만 열리는구나, 무정한 코로나여!

  봄비 오는 날 뭐 한다요
  책을 보다 밖을 보면 비가 오고
  비에 마음을 빼앗겨
  넋을 놓고
  비를 보다
  비 따라가던
  마음이 문득 돌아오면 다시 책을 봅니다
  그러다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게 움직여 도로 그리 간답니다
 
  시방 뭐 하시는지요
  나는 오늘 혼자 놉니다
  비를 보며, 때로 바람 따라 심란하게 흩날리는 비를 보며
  혼자 놉니다
 
  선암사 홍매가 피어나는지
  선암사 홍매는 피는지
  선암사 홍매는 피어버렸는지
  자꾸 선암사 홍매가 궁금합니다
 
  이끼 낀 가지 끝에 붉은 이슬처럼 맺힌 홍매를 생각하며
  빗방울을 따라가다보면 빗방울들이 땅에
  툭툭 떨어져 부서지며 튀어오릅니다
 
  산이 적막하고
  나도 적막하고
  물이 고요하고
  나도 고요합니다
 
  고요한 마음에 피는 선암사 홍맷빛이 내 마음에 물결처럼
  일어납니다
  일었답니다
  내 마음이 자꾸 그리 갑니다
  가는 마음 붙잡아 되돌려 앉혀놓아도
  마음은 자꾸 그리 달아납니다
  그립고 보고 싶습니다
 
  선암사 홍매는 한 잎 두 잎 꺼져도
  내 마음에 일어난 그리운 꽃빛은 언제나 꺼질지
  나는 모른답니다
  나도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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