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준석 포스텍 교수 “코로나19, 메타물질로 만든 현미경으로 잡을 수 있어”

노준석 포스텍 교수

학과경계 튼 나노구조 연구···투명망토·홀로그램 기술개발

[아시아엔=나경태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노준석 포스텍 교수 직함엔 기계공학과 화학공학이 병기돼 있다. 해외대학엔 흔히 있는 ‘더블 어포인트먼츠 시스템(double appointments system)’이다. 학·석·박사 학위를 기계공학 전공으로 받았지만, 화학공학과 교수로 임용돼 융합연구와 교육을 담당한다.

초고해상도 광학현미경 및 나노레이저 개발, 다기능성 메타 홀로그램 소자 개발에 메타물질을 설계하는 AI의 개발까지. 다양하고 획기적인 성과의 비결을 묻자 단박에 ‘융합연구’라는 답이 돌아왔다. 2019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젊은과학자상을 수상한 노준석 교수를 인터뷰했다.

“나노구조에 대한 접근법은 기계·전자·물리학을 통한 탑다운(top-down) 방식과 화학·재료·화학공학을 통한 바텀업(bottom-up) 방식이 있습니다. 두 학문 분야가 꽤 이질적이라 양쪽 학과에 공식으로 소속돼 근무하는 제가 특이한 경우이긴 해요. 업무량은 많아지지만, 그 덕분에 나노과학의 ‘양대 산맥’을 동시에 아우르게 돼 연구 범위의 확장은 물론 타 학과 연구자와의 협업에서도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서울대교 재료공학부 남기태 교수님과의 공동연구가 2018년 ‘네이처’에 표지논문으로 실렸을 땐 연구자로서 무척 기쁘고 행복했죠.”

자연에만 존재하는 거울대칭 구조를 세계 최초로 인공적으로 재현한 당시 연구는 네이처 표지논문을 장식했을 뿐 아니라 일반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별도의 지면이 마련되는 등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양방향 메타홀로그램 개념도 [사진=포스텍 제공]
오른손과 왼손은 언뜻 같은 구조로 보이지만 서로 반대 방향으로 뒤틀려 대칭을 이룬다. 이를 거울대칭 즉 ‘카이랄(chiral) 구조’라고 하는데, 독특한 기하 구조와 광학적 성질을 띠어 촉매나 광학재료, 센서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주목받는다.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모든 분자는 카이랄 구조를 띠지만, 무기재료를 활용해 만든 건 노준석 교수를 포함한 국내 연구진이 처음이다. 이는 수백억 달러 규모의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을 선도할 원천기술로 평가받는다.

“제 연구의 가장 큰 주제는 메타물질을 이용한 빛의 극한 제어와 활용입니다. 메타물질은 빛의 파장보다 작은 단위의 구조체로 이뤄져 특이한 광특성을 나타내도록 인공적으로 디자인된 물질이에요. 투명망토, 나노레이저, 홀로그램, 초고해상도 현미경 등이 메타물질을 이용함으로써 자연계에는 없는 광학적 성질을 구현·활용한 성과들이죠. 전 세계를 우한 폐렴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도 메타물질을 활용해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무서운 이유는 100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크기로 매우 작아 명확한 관찰이 어렵다는 데 있으니까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살아 있는 것을 보기 힘든 기존 방식의, 현재 사용하고 있는 초고해상도 현미경이 아닌 실시간으로 살아있는 바이러스를 메타물질 현미경으로 볼 수 있고 나노레이저로 쏘아 맞힐 수 있다면, 종양을 직접 제거하는 수술과 같이 바이러스를 직접 죽일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겁니다.”

과학에서 시작해 기술이 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50년. 100개의 과학적 발견 중 10% 미만이 기술로 구현돼 인류의 삶에 기여한다. 메타물질이 연구된 지는 이제 갓 20년. 노준석 교수가 연구에 뛰어든 지 10년 조금 더 됐다. 아직 갈 길이 먼 셈이다. 그는 “메타물질을 발명해낸 것도 감탄스럽지만, 이를 통해 구현해낸 현상들이 수백년 전 정립된 기본 방정식들에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것은 더욱 놀랍다”고 말한다. 그는 또 “교과서를 기반으로 실험을 설계하고 새로운 실험 결과로써 교과서를 보완, 정립하는 과정이 과학·기술의 발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준석 교수는 빛을 포함한 파동으로 연구범위를 넓혀 최근엔 소리 제어를 통한 스텔스잠수함이나 지진파를 제어하는 내진 구조물 개발에까지 관여하고 있다. 하나같이 어서 빨리 만들어졌으면 하는 ‘생활밀착형’ 과학기술들이다.

외국어고 출신인 그가 공학도로 방향을 튼 이유는 영화 <스타워즈>의 광선검, <드래곤볼>의 에네르기파, <백투더퓨처>의 시간여행 같은 상상 속 세계에 대한 매혹이었다.

“일리노이대에서 석사학위 중 버클리대 시앙장(張翔) 교수님이 ‘진짜’ 투명망토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 저를 매료시켰던 상상의 산물이 현실에서 구현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이거다!’ 하는 느낌이 왔죠. 무작정 찾아가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했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현재는 제작기술의 한계 때문에 손가락 정도 크기를 숨기는 데 수천만원이 필요하죠. 그러나 20~30년쯤 뒤엔 더 저렴한 비용으로 몸 전체를 숨길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한다고 실망하지 말자. 영화 속 ‘아이언맨’처럼 홀로그램을 통해 외부세계를 인식하고 연산 처리까지 할 수 있는 기술은 10년, 메타물질이 적용된 양방향 디스플레이 기술은 5년 내 상용화된 제품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텔레비전이나 빔프로젝트가 빛의 세기 정보만을 전달하는 데 그쳤다면, 홀로그램 기술은 세기는 물론 위상정보까지 저장해 3차원 공간에 투사할 수 있다. 전시, 엔터 테인먼트, 증강현실(AR) 내비게이션 등에 접목될 뿐 아니라 특정 이미지를 제한된 위치에서만 보게 해 보안매체로도 활용 가능하다. 크기와 무게가 적잖이 부담 되는 가상현실(VR) 기기를 경량화·정교화시켜 보다 편리하게 이용하는 데도 제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 결과물이 언론에 소개될 땐 흔히 시각적 화려함을 부각시킵니다. 설계된 대로 빛이 제어되는 모습을 보면 하나의 예술작품 같기도 해요. 실제로 메타물질을 이용해 고전명화를 형상화하는, 미적 측면에서 활용된 예도 있고요. 그러나 그 화려함 이면엔 굉장히 고된 작업이 존재합니다. 수식과 방정식을 이용한 계산, 컴퓨터 코딩을 통한 설계, 클린룸에서의 나노공정을 이용하여 실제 제작하고 제작된 나노구조를 평가하는 실험의 반복 작업 등은 피와 땀을 요구하죠. 다른 많은 연구도 마찬가지겠지요. 하나씩 힘들게 쌓아온 저의 연구가 인류의 삶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이 기사는 서울대총동창회가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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