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나의 조국’·’레닌그라드’···활기찬 아침 열어주는 내 친구 ‘클래식 음악’
[아시아엔=이종수 YTN 부국장]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스텝이 꼬이는 때가 있으리라. 자초한 일이 아닌데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이럴 때 좌절감이 억울함을 동반한다. 억울함은 분노로 확대 재생산되기 십상인데 이럴수록 강퍅해진 내면을 달래기 위해 ‘위로’와 ‘힐링’이란 약손이 필요하다. 이럴 무렵 클래식이 찾아와 약손이 되곤한다.
뉴욕에서 특파원으로 같은 시기를 보낸 동료가 평일 아침에 자신이 고른 클래식곡과 함께 관련 사실들로 꿴 담담한 글, 여기에 유튜브에 실린 해당곡 연주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첫회부터 카톡으로 보내왔다. 고등학교 시절 세계 유명 클래식 LP판 모음집을 에로이카 전축으로 듣고 뉴욕에서 종종 연주회를 찾았지만 매일 기상시간에 맞춰 클래식으로 아침을 여는 것은 새로왔다. 동료가 선정한 곡을 머리맡에 있는 오디오 세트와 블루투스로 연결해 서라운딩 사운드로 들으면 간밤의 상념은 사라지고 평상심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유명 클래식 곡들을 감상하면서 작곡가와 곡 탄생의 사연까지 알아가는 과정은 마치 세헤라자드로부터 아라비안나이트를 듣는 듯한 경험이다. 클래식 곡에는 방탕과 방황, 여성편력, 질투, 음모와 살인 같은 세속적인 인간사가 있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망망대해로 흘러가는 듯한 유장한 역사와 서사도 있으며 계절과 그 변화에 맞춰 옷을 갈아입는 꽃, 숲, 태양, 비와 같은 자연도 있다.
이를테면 프레드릭 쇼팽의 ‘녹턴(Nocturne), 야상곡 작품번호 27’의 두 번째 곡은 마치 안개 낀 아침에 숲속을 산책하는 느낌이 들게 한다. 시종일관 같은 유형이 이어지는 고요한 반주를 바탕으로 주제 멜로디가 살짝 변해 가는 이 곡은 야상곡 특유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쇼팽 특유의 서정성이 더해져 꿈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쇼팽의 24개 전주곡 가운데 15번째 곡인 ‘빗방울 전주곡’은 어떤가.
이 곡은 쇼팽이 중병을 앓아 연인이었던 6살 연상의 유명 여류 소설가 조르주 상드와 스페인 남부섬 마조르카에서 머물 때 만들어졌다. 겨울 비를 들으며 병수발로 고생하고 있는 샹드를 생각하며 지어진 것이다. 우울한 쇼팽의 심정이 반영된 음울한 음이 왼손 반주로 반복되면서 빗방울을 연상시킨다.
국민주의 작곡가 스메타나 교향곡 ‘나의 조국’ 중 제2번 ‘몰다우'(Vltava, Die Moldau)는 도입부 관악기 연주로 흘러가는 지류들을 떠올리게 한다. 현악기 연주가 이어지면서 지류들이 합쳐지고 타악기까지 가세하면 비바람에 소용돌이 치며 대해(大海)로 나가는 도도한 몰다우가 그려진다. 그런 몰다우는 중부유럽의 대하드라마 같은 역사를 지켜보고 품고 쉼없이 흘러온 듯한 인상까지 준다.
좋아하는 클래식 곡을 고르라면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 ‘인터메조(간주곡)’를 우선 꼽는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왠지 어딘가 심연으로부터 밀려오는 아름다운 슬픔이 느껴진다. 풍상의 세월을 지내온 장년의 남성, 또는 여성이 아름드리 나무들이 끝없이 마주보며 펼쳐진 길의 끝 한편에서 다른 편의 끝을 응시하며 살아온 날들을 회고하는 그런 숙연함이 압도적이다.
작곡자 마스카니의 출세작이기도 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우리말로는 시골 기사도로 번역된다. 19세기 이탈리아 시칠리아 시골 마을을 무대로 한 치정 싸움을 다뤘다. 제대한 남성이 옛 애인과 다시 만남을 이어가다 그의 약혼녀가 고자질한 옛 애인의 남편에게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해지는데 이때 이 인터메조가 흐른다. 극도의 긴장과 불안 대신 편안하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르는 것은 시칠리 시골마을의 풍경과 무관치 않겠지만 다가오는 죽음을 모르는 이의 비극적 운명이 서글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50대 초중반으로 접어든 우리세대가 학창시절 음악교과서에서 봤던 노르웨이 작곡가 그리그의 곡 ‘솔베이지의 노래’에는 깊은 고독과 절망에서 나오는 슬픔이 묻어난다.
어쩌면 권력과 부를 좇아 솔베이지 자신을 버리고 모로코 등지를 돌아다니며 방탕한 생활로 부침을 겪어온 옛 애인을 학수고대하는 심정을 노래한 이 곡이 주는 슬픔에 화부터 내는 여성분들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길 눈물 찍어가며 기대하는 것도 기가 찬데 빈털털이가 된 늙어빠진 옛애인을 품에 안고 비감속에 임종을 지켜보는 솔베이지에게 독설을 퍼붓고 싶을 수도 있으리라.
반면 세속적 욕망을 맘껏 추구하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 변치 않고 자기를 받아주는 솔베이지에게 남자 페르는 어떤 감정을 가졌을까? 솔베이지 노래가 요즘에 만들어진다면 어떤 감성이 묻어날까? 작곡가에게 부탁해 현대판 솔베이지 노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면···. 상상만 해도 즐거워진다.
2001년 여름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를 찾았다. 구소련의 붕괴에 따른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부다페스트는 독일 등 서유럽 국가로 일자리를 얻으러 대다수 젊은이들이 떠나 주로 중장년층과 노인들만 보이는 쇠락한 도시였다. 당시 부다페스트에서 가성비가 가장 높은 관광 프로그램은 우리 돈으로 2만원도 안 되는 금요일 저녁 무렵 시립교향악단 콘서트 감상이었다.
출장으로 부다페스트에 온 아내와 콘서트가 열리는 국립극장으로 가기 위해 전철을 탔다. 전철 안에는 연미복같은 근사한 신사복과 드레스를 차려 입은 말끔한 노인들로 가득 찼다. 국립극장에 이르렀을 때 비슷한 차림의 노인들로 로비는 물·론 공연장 입구까지 장사진을 이뤘다. 비록 부유하진 못하지만 클래식을 사랑하는 문화 시민의식과 자부심은 그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표정에서 읽혔다
클래식을 일반인에게 친숙하게 한 베스트셀러 서적들을 쓴 박종호 풍월당 대표의 모 일간지에 실린 칼럼을 최근에 정독했다. 칼럼에 따르면 1941년 독일 히틀러 정권이 레닌그라드를 침공해 사방을 봉쇄했다 당시 영양학자는 봉쇄로 굶어 죽는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생겨나 항복할 테니 굳이 장병을 희생시켜가며 공격할 필요가 없다고 의견을 제시했고 히틀러사령부는 이를 수용했다.
실제로 레닌그라드 시민들이 생존을 위해 인육을 먹기까지 했지만 아사를 막을 수 없어 봉쇄된 872일 동안 인구가 250만명에서 57만명으로 급감했다. 이런 비참한 상황을 레닌그라드에서 직접 겪은 위대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레닌그라드’란 7번 교향곡을 작곡했고 이 곡의 연주를 위해 교향악단이 꾸려졌다. 하지만 단원들이 연습 때 관악기를 불 힘도 없었고 공연 직전 3명이 굶어죽기까지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시 속 공연은 배급표를 모아 입장권을 산 시민들로 객석이 가득 찬 가운데 이뤄졌다.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연주가 확성기로도 레닌그라드에 울려 퍼지면서 시민의 유대감 결속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시민들이 혹독한 겨울을 버티고 봄을 맞이하도록 했고 도시는 다시 살아났다. 시든 영혼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이 레닌그라드 시민에게 비춘 것이다.
어쩌면 21세기 부다페스트 시민들도 국립극장에 울려퍼진 클래식 곡들에 몰입하면서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통기타 정도를 제외하고 연주 경험이 전무하다시피한 비전문인 클래식 아마추어로 시야가 좁고 관련 지식이 일천하기 짝이 없지만 하나하나 더 알아가면서 클래식 세계가 더 보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