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이 죽어가고 있다”···대학교수, 지식 전문가 넘어 비판적 대안 세워야

서울대 정문.

[아시아엔=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한국의 대학은 앞으로 20년 안에 거의 반이 문을 닫을 것이다. 올해 이미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정원보다 적었다. 지금의 초(超)저출산율이 지속된다면 학령인구가 대학정원 50만여 명을 채우기 어려워 당장 내년부터 적지 않은 대학이 정원감축의 압박을 받게 된다. 대학 안팎의 통폐합은 불가피하다.

인구도 적고 재정도 나쁜 지방의 4년제와 전문대의 일부는 이미 폐교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육부가 인위적인 대학정원의 감축은 없다고 하지만 ‘대학혁신지원방안’은 알맹이가 없어 실효성이 있을지 회의적이다. 자율적인 혁신은 공허한 유인책에 지나지 않고, 융합학과의 개설이나 평생교육을 위한 단과대학의 도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한국의 대학이 진리의 전당으로서 어려움에 마주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의 사회 구조와 의식의 변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 마당에 대학은 소수정예의 원칙 아래 전공별, 지역별 특화를 통해 역량을 키워야 한다. 학령인구의 감소를 외국인 학생의 유입으로 상쇄할 수 있지만 질 높은 교육과정으로의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교수, 학생, 직원 모두 살아남기 위해 각각 도생하다 보니 최고 권위를 갖는 고등교육을 위한 공동체는 사라지고 있다. 취업이 어려운 가운데 학생은 미래의 주인공으로서 꿈을 잃어가고 있다. 행정의 일선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은 직종간의 차별로 인해 사기가 떨어져 있다.

요즈음 교수를 두고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는 힐난이 있다. 갑질, 미투, 표절, 횡령 등은 외면해도 돈이나 힘 되는 것이라면 굳이 양보하지 않는다는 야유다. 어려운 시절에 지사형(志士型) 지식인의 전형으로 대학교수는 인권과 정의에 앞장을 섰다. 반(反)독재 민주화 대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 대학에서 교수는 비판적이라기보다 기능적이 되어가고 있다. 일부 교수들이 ‘세일즈맨’이 되거나 ‘폴리페서’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공공성을 통해 계몽과 해방에 나서야 할 교수가 입신과 명리에 빠져 절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늘의 대학에 대해 사회는 지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최고 수준의 지력과 품행을 요구한다. 그러나 교육의 공공성보다 수월성이 강조되는 세계화 시대에서 교수와 학생 모두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생존하기 바쁘다. 대학이 진리를 추구하는 상아탑이라기보다 직장인을 찍어내는 공장이 되고 있다는 회의가 든다.

대학이 공공성보다 수월성이라는 이름 아래 과도하게 경쟁력 제고에 몰입하면서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공감과 연대 의식이 줄어들고 있다. 현실사회에 대한 교수들의 비판적 문제 제기도 찾아보기 어렵고, 학생들은 그들을 대표하는 학생조직과 모임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는다. 사제지간의 정리와 예의도 약해진 것은 물론이다. 지식공동체로서 대학의 사명과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다는 소견이다.

지난 30여년의 교수생활을 돌아보면서 내가 권력으로부터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교수란 지식인의 자존심을 지키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나 장관 자리도 마다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품위와 명예를 잃지 않으려고 한 단심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베버(Max Weber)는 일찍이 “자유의 이념이 근대문명을 탄생시켰지만, 자체의 합리화 과정에서 출현한 시장과 조직이 그러한 자유의 실현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의 명저 중 하나인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베버는 대학을 압박하는 외부의 정치 개입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면서, 공부하고 가르치는 것이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기술이 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공부하고 가르친다는 것은 자기 학문 분야를 깊이 팔 수 있는 자아도취, 즉 ‘열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연 앞으로 대학을 어떻게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든 대학의 총장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서울대의 경우 교육조건과 연구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힘쓰기보다 그 이력으로 총리나 대통령을 하려고 한다면 대학의 미래는 보장하기 어렵다. 어떤 교수가 정부에 정무직으로 발탁되었을 때 “대학을 위해서는 다행이나 나라를 위해서는 불행이다”라는 소리가 나오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대학은 교양 있는 시민을 키울 뿐만 아니라 한국과 나아가 세계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를 기르는 곳이다. 그러므로 공공적 지식과 담론의 생산, 유통, 소비 과정에서 제도적 공간으로서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인터넷, 소셜미디어, 스마트폰 등에 의해 공적 담론이 소통되고 있듯이 지식이 대학의 전유물은 더 이상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가 지식인이고자 한다면 정치권력 및 경제자본과 긴장을 유지해야 할 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소통의 장에서 여론을 선도하고 대중의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대학교수는 지식 전문가로만 자족하지 말고 우리 주변의 현실문제를 거시적으로 총관하고 비판적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지성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임현진 교수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99호(2019.10.15) 轉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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