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신문 특파원’으로 ‘소련 스파이’였던 리하르트 조르게를 아십니까?

[아시아엔=강희창 목사, 서울장신대 교수, 서초교회 목사] 10여년 전 러시아에서 고려인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러시아에서 대단한 영웅으로 인정받는 군인 중에 고려인이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리하르트 조르게 <사진 위키피디아>

그 고려인은 중동의 분쟁과 관련해서 이스라엘 지역으로 비밀스럽게 파견된 특수부대의 책임자였다. 특수부대를 이끌고 이스라엘로 떠나려 할 때, 러시아 당국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작전에 성공하여 돌아오면 당신은 영웅이 될 것이요. 그런데 작전에 실패해서 붙잡히게 되면 당신은 러시아 군인이 아니요.”

그러면서 떠나던 순간부터 러시아는 그의 국적을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만일의 경우 생겨날 국제적 분쟁에 대비해서 떠나던 순간부터 그는 무국적의 군인이 되어야 했다는 것이다.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돌아온 그는 지금 러시아의 영웅으로서 살아간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에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비인간적인 이야기나 하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요한 모든 일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모두가 자기 권리만 주장하려는 나라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은 누구의 공로로 어떻게 끝나게 된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참전국들마다 조금씩 다른 대답을 해왔다. 그런데 러시아의 어떤 사람들은 이런 대답을 할 듯하다. “2차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 것은 리하르트 조르게 때문이다.”

리하르트 조르게는 일본 여인과 결혼해서 도쿄에서 살았던 독일 신문 특파원이었는데 실은 소련의 스파이였다.(<제주신보> 2015년 12월7일자 ‘리하르트 조르게’ 참조) 그는 일본 군대의 주력이 한동안 동남아 쪽에 집중할 것이라는 사실을 소련으로 타전했고, 그 첩보에 근거하여 소련은 수십만의 군대를 서부전선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리하여 독일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게 되었고, 그 승리가 2차대전 흐름을 결정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리하르트 조르게는 첩보를 소련으로 타전하고 얼마 후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던 일본이 소련에 항의하면서 스파이 교환을 제안했다. 그때 소련은 “우리는 리하르트 조르게를 모른다”고 응답해왔다. 소련에게 최고의 승리를 안긴 그는 소련으로부터 무참하게 버려진 셈이다. 그런데 요즘 러시아는 2차대전 승전 기념일이 되면 리하르트 조르게를 특집방송으로 다룰 때가 있다.

그런 소련이 비겁하다고 말하려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쳐 일하다가 비참하게 버려진 자가 우리의 진정한 영웅이 된다”는 엄연한 역사의 외침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조르게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좌파든 우파든 간에, 몰래 서로에게 파고 들어가서 어떻게든 이 나라가 앞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가는 동안에 이편에서 욕을 먹고 저편에서도 버려지고 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얼마만큼 세월이 흐르면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으로부터 영웅으로 인정받게 되는 인물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요즘의 우리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다.

진정한 영웅을 역사는 절대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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