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시위대 백새테러에 분노, 중국계 은행 등에 방화

18일 오후(현지시간) 홍콩 완차이역 인근에서 송환법에 반대하고 경찰의 강경 진압을 규탄하는 대규모 도심 집회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정부청사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날 집회는 홍콩 대규모 도심 시위를 주도했던 민간인권전선 주도로 열렸다. <사진=연합>

[아시아엔=연합뉴스] 홍콩에서 최근 잇따르는 ‘백색테러’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듯 홍콩 시민 수만 명이 20일 경찰이 불허한 집회와 행진을 강행하면서 복면금지법 반대 등을 주장했다.

이날 시위대는 시내 곳곳의 중국계 은행과 점포 등의 기물을 부수고 불을 지르는 등 극심한 반중 정서를 표출했다.

20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수만 명의 홍콩 시민들은 홍콩 최대의 관광지 중 하나인 침사추이와 몽콕, 오스틴 지역을 행진하면서 시위를 벌였다.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당초 침사추이에서 웨스트카오룽 고속철역까지 행진하며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반대 시위를 할 예정이었지만, 경찰은 폭력 시위가 우려된다며 이를 불허했다.

경찰은 지난 14일 센트럴 차터가든 집회를 이례적으로 허용했고, 전날에도 1천여 명의 홍콩 시민들이 에든버러 광장에서 평화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이날 경찰은 1주일 만에 집회를 불허하고 강경 진압에 나섰다.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도 전날 CRHK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경찰이 외롭게 싸우도록 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찰은 법 집행을 할 때 적절하게 무력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전날 피고 찬 민간인권전선 부대표는 야당 의원들과 함께 ‘시민 불복종’을 내세우며 집회 강행을 선언했다. 이에 화답하듯 이날 수만 명의 홍콩인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강행했다.

집회에 참석한 렁궉훙 의원은 “경찰의 집회 불허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홍콩 기본법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홍콩 시민들이 법을 어기게 만드는 것은 바로 홍콩 정부”라고 주장했다.

이날 시민들의 분노를 키운 것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범민주 진영 인사들에 대한 ‘백색테러’였다.

지난 16일 밤 민간인권전선의 지미 샴(岑子杰) 대표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 4명에게 쇠망치 공격을 당해 중상을 입은 데 이어, 전날에는 ‘레넌 벽’ 앞에서 이날 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전단을 돌리던 시민이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찔렸다.

‘레넌 벽’은 포스트잇 등으로 정치적 의견을 분출하는 장소로, 홍콩에서는 최근 전철역과 육교, 대학 캠퍼스 등 인파가 많이 오가는 곳마다 들어섰다.

이날 시민들은 ‘홍콩 경찰이 짐승처럼 사람을 죽인다’라고 쓰인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일부 시위대는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의 얼굴과 히틀러의 사진을 결합한 플래카드를 펼쳐 들었다.

이는 백색테러를 친중파 진영이 사주했으며, 홍콩 경찰과 정부가 이를 묵인하고 있다는 시위대의 정서를 나타낸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차우(21) 씨는 “솔직히 말해 두렵지만, 집에 처박혀 있다면 이는 정부에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우리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 복면금지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날 홍콩 시민들은 마스크나 가면을 쓰고 시위를 벌였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 등장해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은 쓴 시민들도 있었고, 일부 시위대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얼굴을 그린 가면을 썼다.

경찰의 강경 진압과 백색테러 배후에 중국이 있다고 믿는 홍콩 시위대는 이날 극심한 반중국 정서를 드러냈다.

침사추이, 조던, 야우마테이 일대의 중국계 은행과 점포, 식당 등은 시위대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됐다. 

시위대는 곳곳에 있는 중국계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파손하고, 은행 지점 내에 화염병을 던졌다. 

시위대는 중국은행 지점 밖에 ‘이 은행이 중국 공산당에 자금을 대기 때문에 이를 파괴한다’는 설명문을 붙여놓기도 했다.

중국 본토인 소유의 기업으로 알려진 ‘베스트마트 360’, 유니소(Uniso) 점포 등도 타깃이 됐다. 시위대는 이들 점포의 기물을 파손하고,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할 것이다”, “광복홍콩” 등의 구호를 적어넣었다.

시위대는 몽콕 지역에 있는 중국 휴대전화 브랜드 ‘샤오미’ 점포와 전통 중의약 업체 ‘동인당'(同仁堂) 점포, 삼수이포 지역에 있는 중국초상은행 점포 등에 불을 질렀다.

일부 시위대는 시진핑 주석의 얼굴을 그려놓고 ‘빅 브러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ㅇ다'(BIG BROTHER IS WATCHING YOU)라고 쓴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성조기와 영국 국기를 흔드는 시민들도 있었다.

시위대는 길가의 벽에 시진핑 주석과 캐리 람 행정장관 등의 사진을 붙여놓고 여기에 붉은색 스프레이로 ‘X’ 자를 그려 넣기도 했다.

당초 평화 행진으로 시작했던 이날 시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과격해졌다.

시위대는 야우마테이, 몽콕 지하철역 등의 기물과 유리창을 깨고 ‘개 같은 지하철공사'(狗鐵)라는 낙서를 했다. 이후 역 입구 등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질렀다.

시위대는 도심 시위 때마다 홍콩지하철공사가 시위 현장 인근의 지하철역을 폐쇄한다는 점을 들어 지하철공사가 홍콩 정부의 앞잡이가 됐다고 비난한다.

이날도 침사추이, 몽콕, 오스틴, 야우마테이 역 등 시위 현장 인근의 지하철역이 폐쇄됐다.

시위가 격해지자 경찰은 최루탄, 고무탄 등을 발사하고 물대포 차를 투입해 시위 진압에 나섰다. 

이에 시위대는 침사추이 경찰서와 삼수이포 경찰서 등에 화염병을 투척하고, 보도블록을 깨서 돌을 던지면서 맞섰다.

시위대는 시위 진압 차량의 진압을 막기 위해 몽콕 지역의 도로 위에 쇠못 등을 뿌려놓기도 했다.

시위대가 지하철 선로 위에 폐품 등을 던져놓는 바람에 일부 구간의 지하철 운행이 차질을 빚었다.

일부 시위대가 거리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쇠기둥을 전기톱으로 자르자 시민들이 이에 환호하기도 했다. 

프린스에드워드 지역의 도로 위에서는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체가 발견돼 경찰이 폭탄 제거 로봇을 동원해 이를 제거했다.

경찰은 물대포로 쏘는 물에 파란색 염료와 최루액을 섞어 시위대는 물론 몽콕, 삼수이포 지역의 주민과 현장 취재 기자 등에 무차별적으로 발사했다. 파란색 염료는 이에 맞은 시위대를 식별하기 위한 것이다.

홍콩 경찰은 이날 카오룽 지역의 이슬람 사원에도 물대포를 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경찰은 성명을 내 “시위 진압 과정에서 벌어진 실수였다”고 해명했고, 이날 저녁 경찰 지휘부는 모스크를 방문해 종교 지도자들에게 사과했다.

시위대는 야우마테이 지역에 있는 홍콩의 반부패 기구인 ‘염정공서'(廉政公署·ICAC)로 몰려가 ICAC 현판을 끌어내리고 CCTV 등을 박살 내기도 했다.

염정공서는 전담팀을 구성해 7월 21일 밤 백색테러에서 경찰의 직무유기 혐의 등을 조사한다고 밝혔지만, 아직 별다른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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