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기자상 후기] 이은지 중앙일보 기자 ‘안인득은 어떻게 괴물이 됐나’
[아시아엔=이은지 중앙일보 내셔널팀 기자] “이 기자, 진주에서 방화범이 주민 5명을 칼로 찔러 죽였단다. 퍼뜩 현장 가봐라.”
4월17일 오전 6시에 걸려온 국장의 전화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고향인 경남 진주로 가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왜 죽였을까. 현장에 급파된 기자 6명은 2팀으로 나눠 피의자와 피해자를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은 안인득의 묻지마 살인사건에서도 적용됐습니다. 범행 전부터 이웃 주민에게 기행을 벌이며 갈등을 빚어왔고, 자활센터 직원을 폭행하는 등 전조 증세를 보여왔다는 사실을 단독으로 확인했습니다.
안인득의 조현병 증세가 심해져 친형이 강제 입원시키려 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점을 단독 취재하면서 우리는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 부실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안인득의 피해망상을 키운 사회 구조적 모순을 해결해야 제2의 안인득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이번 기획기사를 취재하면서 전문가에게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일이 터진 뒤에야 관련 예산이 늘고 제도가 마련된다는 탄식이었습니다. 저에게 안인득이 오물을 투척하는 영상을 준 피해자 가족은 “분명히 막을 수 있었다”며 울부짖었습니다.
다행히도 피해자 가족이 찍어둔 폐쇄회로TV(CCTV) 영상 덕분에 단순 살인사건으로 묻히지 않습니다. 정신질환자 관리 체계를 짚어보는 기획기사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데, 1g이라도 도움이 되고픈 마음에 기자가 됐습니다. 이번 기획기사는 제 꿈을 펼친 의미 있는 기사였습니다.
현장에서 다 같이 뛰어준 선·후배들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그리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