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천도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 죽음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삶에 자신이 없어질 때,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될 때, 누구나 죽음을 생각해본다. 그러나 쉽게 죽음을 결심하는 사람은 없다. 삶이 아무리 힘이 들어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렇지만 죽음은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죽음은 언제나 인간의 의사와는 별반 상관없이 다가오기 마련이다. 자신이 아무리 죽기 싫다고 버틴들 죽음의 사자가 오는 길을 막을 수는 없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의 가능성, 이 예측불허의 죽음의 가능성 속에서 “오늘도 무사히!”라는 기도가 절실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갖가지 죽음으로 유명(幽冥)을 달리한 그 넋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또한 우리 살아있는 사람들로서 그 영혼들을 위하여 베풀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도리는 무엇일까?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흩어진다. 지역에 따라서는 맹수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그럼 육신은 그렇게 떠나가지만 영혼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원불교에서는 그곳을 중음계(中陰界)라고 이른다. 완전한 하늘나라도 아니고 인간세상도 아닌 영혼이 잠깐 머무는 어둠의 집인 것이다. 지극히 착하지도, 지극히 악하지도 않은 보통 인간의 영혼은 이 중음계에서 약 49일을 체류하며 새 몸을 받을 준비를 한다.

  그 다음에 자기 생전의 업(業)에 따라 적당한 곳으로 가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남에게 피해만 주고 몹쓸 짓을 밥 먹듯이 저지른 악인이거나, 평생에 선행을 많이 쌓은 사람은 혹은 더 빨리, 혹은 더 더디게 몸을 받기도 한다.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낮은 자리에 가게 된다. 그리고 사람에게서 몸을 받지 못하고 다른 동물의 세계에 마음이 끌려가 그곳에서 몸을 받는 수도 있다. 이는 평소 지어놓은 업과 집착 때문에 보는 눈이 완전히 거꾸로 되어 좋은 곳은 추해 보이고 피해야 할 곳은 오히려 아름답게 보이는 일종의 환각작용의 결과다.

  이런 환각을 깨뜨리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도록 인도하는 의식이 바로 천도재(薦度齋)다. 일반적으로 천도재라 하면 죽은 영혼을 위로하여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행하는 의식을 뜻한다. 또는 죽은이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열반인(涅槃人)의 명복을 빌고, 영가(靈駕)가 진급하여 선도(善道)에 태어나도록 기원하는 의식이다.

  그런데 3월 9일자 <조선일보>에 “목사님, 우리 멍멍이 천국으로 인도 좀 해주세요” 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와 같이 최근 종교계에서 반려동물 장례식과 천도재에 대한 논란이 심각한 모양이다. 기독교는 원칙적으로 반려동물은 영혼이 없고, 교인도 아니기 때문에 종교의식으로 추모 예배나 미사를 치를 수 없다는 입장인 것 같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신자가 늘면서 일부 목사 사이에서는 “반려동물이 아니라 키우던 사람을 위로해 주는 차원에서 예배를 할 수 있다”거나 “반려동물 문제에 대해 신학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불교계에서는 봉은사나 비로자나국제선원 등에서 늘어나는 반려동물 장례요청을 수용하고 있다. 또 종교에 무관하게 반려견(伴侶犬)이 죽으면 아는 사람들을 불러 함께 추모하는 문화도 있다. 애견모임 사이트에선 “키우던 ○○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라는 글 밑에 “삼가 고견(故犬)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다른 애견인들이 추모하는 댓글을 달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조의금을 건네기도 한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반려견에게 정서적 유대감을 강하게 느꼈을 경우, 강아지가 죽고 나서 극도의 상실감과 우울감을 동반한 ‘펫로스 증후군’을 겪을 수도 있다. 펫로스 증후군은 가족처럼 키우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반려동물을 키우던 사람이 슬픔이나 정신적 장애를 겪는 현상을 말한다.

  이럴 경우 애견추모 행위는 이러한 펫로스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동물 장례업체는 22곳에 달한다. 경기 시흥에 있는 한 업체의 반려견 장례상품은 180만원이나 되며, 죽은 반려견에게 금사수의(金絲壽衣)를 입히고, 오동나무 관에 넣고 생화로 관을 꾸며준다고 한다.

  심지어 운구 서비스와 유골을 고온 처리해 기념석도 만들어 준다. 애완견의 처리에 관한 문제는 선진국이 먼저 겪었다. 프랑스의 경우 사람을 때리면 3개월 징역형인데 동물을 학대하면 3년 징역형이라고 하니 사람보다 개가 더 잘 나가는 모양이다. 거기다가 사람의 묘지보다도 잘 꾸며진 반려동물의 묘지와 유산까지도 물려준다는 얘기를 들어 보면 정말 개팔자가 상팔자가 아닌가 싶다.

  애완견의 천도재 문제는 이런 측면에서 일본에서는 일상화된 문제다. 일본의 경우 ‘애완동물 공양처’라고 해서 사찰의 ‘지장전’(知藏殿)은 사람의 위패보다는 반려견의 위패가 다수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논란에서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다”고 여기는 우리 원불교의 입장은 훨씬 자유롭다.

  <대종경>(大宗經) ‘실시 품 34장’에 보면,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 총부에서 기르던 어린 개가 동리 큰 개에게 물려 절명하매, 재비(齋費)를 내리시며 예감(禮監)에게 명하사 ‘떠나는 개의 영혼을 위하여 칠(七)·칠(七) 천도재를 지내주라’고 했다”고 나온다.

종교계도 애완동물 장례와 천도재를 위한 의식절차를 서두르면 어떨까 싶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