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교육-말레이시아] “꿈과 낭만 잃어가는 교실, 안타까워”
우리 조상들은 오래 전부터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해왔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종종 잊고 지내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에 압축돼 표현됐듯,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도 감수하는 것은 전통사회나 현대사회나 그다지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육과 국방은 정상적인 국가라면 어디서나 가장 중시하는 두 축입니다. 국방은 ‘오늘의 우리’를 지켜준다면, 교육은 ‘우리의 미래’를 준비해주기 때문입니다. <매거진N>은 아시아 각국의 교육제도를 살펴봤습니다. 국가 리더십과 교육 관련 비전은 모든 나라에서 일치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모하매드 나시르 유소프 <버나마통신> 기자] 필자는 나의 조국 말레이시아 교육제도를 내 어린 시절과 지금의 교육현장을 비교해 소개하려 한다. 내 어린 시절 우리는 7~12살까지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시간을 보냈다. 수업은 낮 12시30분~1시 사이에 시작하지만 우리 친구들은 오전 11시면 벌써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첫 시간 수업종이 울리기 훨씬 전부터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기다렸다. 우리는 모두 하나같이 흥겹기만 했다. 내가 다니던 변두리 학교 주변에는 숲과 정글, 고무농장과 과수원 그리고 작은 시내와 조그마한 저수지도 있었다. 이 모든 자연은 우리들의 운동장이었다.
10명 안팎의 우리 꼬마들은 집에서 쓰다버린 고물이나 나무토막, 낙엽, 대나무, 심지어 진흙 등으로 장난감을 만들어 새로운 놀이가 뭐 없을까 하고 사방을 싸돌아 다녔다. 바람이 부는 날엔 연도 날리고, 그러다가 나무에 올라가 과일을 따먹거나 냇가에서 미역을 감으며 래프팅을 즐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얼마나 스릴 있고 로맨틱한 순간들이었는지???. 이 모든 것은 우리들에게 크나큰 기쁨이었다. 초등학교 내내 숙제 같은 것에 부담도 느끼지 않았으며 수업과목은 몇 안됐고, 교과서도 정부에서 무상으로 지급해줬다. 가방 안에는 책도 몇 권 들지 않아 가볍기만 했다.
그런데 오늘날 7살 꼬마의 현실은 과연 어떤가? 어깨가 축 늘어질 만큼 무거운 가방과 산더미 같은 숙제???. 80년대 들어 교육현장은 우리 때와 완전히 달라졌다. 어린 학생들은 ‘올 A’를 받으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정신이 없다. 방과 후 사설학원에 다니느라 귀가시간은 늘 한밤중이다. 주말인 토, 일요일에는 피아노와 기타 혹은 가라테나 태권도 같은 호신술 특별수업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오락기나 컴퓨터 게임에 매달린다. 가족들과 언제 대화해 봤는지 가물가물하다. 이런 생활패턴은 중학교 3년, 고교 2년 동안 계속 이어진다.
학생들이 초기 3번, 그리고 뒤이은 5번에 걸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었다 하더라고 사회생활에서 성공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는 매우 적다. 그들은 사회활동에 함께 하기 버거워하고, 이웃들은 낯설기만 하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많은 부모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데 어찌하랴? 기성세대인 나로서도 어찌 할 방도가 없다. 다만 나의 자녀들만은 내 손자들을 위해 정말로 현명한 선택을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손자세대가 할아버지 시대에는 제 아비처럼 학교와 학교, 집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허둥지둥대지 않아도 이런 일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단 사실을 말이다.
취학 전 교육을 미리 안받아도, 초등학교에 가서 금세 ABC도 배우고 기초수학도 익혔다. 알파벳 ABC노래도 부르고 만다린 방언으로 123도 배웠다. 타밀, 인도, 시암, 아랍, 말레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참 많은 걸 줏어들었다. 우리 부모님들은 학문은 못 가르쳐 주셨지만 대신 정을 듬뿍 쏟아줬다. 우리 곁의 자연은 너무나 많은 걸 우리에게 가르쳐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