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나라 장왕의 ‘절영지회’ 고사를 기억하십니까?

초 장왕, 그의 절영지회 고사는 남의 허물을 용서하는 방법과 그후 어떤 일이 생기는지 깨닫게 해준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우리말 ‘허물’은 원래 파충류, 곤충류 따위가 자라면서 벗는 껍질을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허물은 인간이 ‘저지른 잘못’ 또는 ‘모자라는 점이나 결점’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허물이 있다.

그런데 나의 허물은 작고 남의 허물은 크게 보이게 마련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허물 역시 상대적이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작은 허물이 남이 생각할 때에는 치명적인 큰 허물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생각하는 상대의 큰 허물이 상대가 생각하기에는 작은 허물일 수도 있다.

이 허물을 달리 생각해보면 참 다행스럽기도 하다. 내가 허물을 가지고 있기에 허물이 있는 ‘너’ 또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허물이 없다면 허물이 있는 상대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타인의 허물을 탓하기 보다는 허물을 덮어 줄 방법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 방법은 사랑이다. 서로가 허물을 덮어주고 용서하며 살아야 바른 관계, 복된 인생이 될 것이다.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갓끈을 자른 연회”라는 뜻으로,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신의 허물을 깨우친다는 의미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 BC 613~591)의 일화에서 만들어진 성어다.

초의 장왕은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사람으로 불같은 성격에 심중에는 원대한 웅략(雄略)을 감추고 있는 사람이다. 필(邲)의 전투 당시 몸소 선두에서 북채를 잡고 진(晉)나라 군을 사정없이 몰아쳐 춘추시대 미증유의 대승을 거둔 춘추시대 세번째 패자(覇者)다.

하루는 장왕이 나라의 큰 난을 평정한 후, 공을 세운 신하들을 치하하기 위해서 연회를 베풀었다. 신하들을 아끼던 장왕은 이 연회에서 자신의 후궁들이 시중을 들게 했다. 연회가 한창 진행되던 중,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연회장의 촛불들이 일순간에 꺼졌다.

그 순간 한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어둠을 틈타서 누군가가 한 후궁의 가슴을 만졌고, 그 후궁이 그 자의 갓끈을 뜯어 두었으니, 장왕께서는 어서 불을 켜서 그 무엄한 자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후궁을 희롱한 무례한 신하가 괘씸하고, 자신의 위엄이 희롱당한 것 같은 노여운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장왕은 큰 소리로 이렇게 명했다.

“이 자리는 내가 아끼는 신하들의 공(功)을 치하하기 위해서 만든 자리다. 이런 일로 처벌은 온당치 않으니 이 자리의 모든 신하는 내 명을 들어라! 지금 자신이 쓰고 있는 갓끈을 모두 잘라 버리도록 하라! 지금 일은 이 자유로운 자리에 후궁들을 들게 한 나의 경솔함에서 빚어진 일이니 불문토록 하겠다.”

장왕은 먼저 후궁들의 마음을 다독여 연회장에서 내보냈고, 모든 신하가 갓끈을 자른 뒤에야 연회장의 불을 켜도록 했다. 그러니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자칫하면 연회가 깨어지고,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장왕의 통 큰 명령으로 가벼운 해프닝으로 끝났다.

그 시대의 분위기에서 왕의 여인을 희롱한 것은 왕의 권위에 도전한 역모에 해당하는 불경죄로, 죄인은 물론 온 가문이 멸족을 당할 수 있는 중죄였다. 그렇지만 신하들의 마음을 달래는 연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로 용인한 것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 놀랍게도 그 일이 자신의 경솔함에서 빚어진 일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것은 장왕이 자신에 대한 자존감(自尊感)이 충만한 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몇 해 뒤에 장왕의 초나라는 진나라와 나라의 존폐가 달린 전쟁을 치르게 된다. 그 전쟁에서 장왕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장왕의 앞에 나서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맹하게 싸워서 장왕을 구하고, 초나라를 승리로 이끈 장수가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장왕은 그 장수를 불렀고, 용상에서 내려와 그 손을 감싸 쥐고 공로를 치하하며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맹하게 싸운 연유를 물었다. 그 장수는 장왕의 손을 풀고 물러나 장왕에게 공손하게 큰 절을 올렸다.

“몇 해 전에 있었던 연회 자리에서 술에 취해 죽을죄를 지은 소신을 폐하께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소신은 새롭게 얻은 제 생명은 폐하의 것으로 생각하며 살았고, 오늘 이 전장에서 제 목숨을 폐하를 위해서 바칠 각오로 싸웠습니다.”

<채근담>(採根談)에 이런 말이 있다. “남의 허물을 들추지 마라/ 다른 사람의 작은 허물을 꾸짖지 말고/ 다른 사람의 비밀을 들추어 내지 말며/ 남의 지난날 악을 마음에 두지 마라./ 이 세 가지를 실천하면 덕을 기를 수 있고 또 해(害)를 멀리할 수 있다.”

남의 허물을 잘 발설하는 사람은 적이 많다. 남이 내게 저지른 악을 잊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마음에 새겨 두어 복수를 꾀하면 자신도 같은 유(類)의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경남 양산의 소나무 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 통도사 경내 곳곳에 걸려 있는 검은 나무판의 경구(警句)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남의 잘못을 탓하지 마라!/ 남의 단점을 보지도 마라!/ 나의 단점을 정당화하지 마라!/ 오로지 나의 단점을 고치기에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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