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항서-홍명보의 ‘2002월드컵 비화’···”명보, 대표팀 합류해 구심점 돼주게”
[아시아엔=편집국] 15일 스즈키컵 우승으로 베트남 축구사와 한-베트남史를 새로 쓰고 있는 박항서 감독.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한국대표팀 수석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한국의 4강신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당시 황선홍이 조별 리그 첫 경기 폴란드전에서 선취골을 넣고 달려가 박항서 감독에게 안긴 장면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지난 1월 2018 U-23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일약 준우승을 차지하고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4강 진출 기적을 만들어낸 박 감독이 마침내 동남아시아 최강을 가리는 스즈키컵 우승까지 일궈냈다. 그는 ‘베트남 축구의 전설’로 올라선 것이다.
박 감독의 최대 장점은 그늘진 곳을 살피며 선수들을 발굴하고 이들의 시너지를 극대화시키는 데 있다. 그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전 국가대표 감독)를 대표팀에 합류시키는데 일등공신이었던 점이 밝혀졌다.
홍명보는 2012년 12월 25일자에 게재된 <아시아엔>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2002년 2월 어느 날 박항서 코치가 불렀다. 박 코치는 “어린 선수들을 이끌어줄 구심점이 필요한데 합류할 수 있겠나? 다만 경기에 못나갈 수도 있다”고 했다. 몸 상태를 묻는 것은 당연하지만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고 단지 분위기 메이커로 부른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정중히 말씀드렸다. “지금 대표팀 베스트멤버가 정해져 있고 저를 분위기 메이커로 삼을 거라면 안 가겠습니다. 그러나 주전경쟁을 통해 베스트자리를 차지할 기회가 있다면 기꺼이 들어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2002년 3월 초 월드컵을 3달여 앞두고 대표팀 유럽전지훈련에 합류했다. 9개월 만에 복귀한 것이다. 유럽 전지훈련 터키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러 가다 히딩크 감독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미소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유럽 전지훈련에서 아픔을 꾹 참고 뛴 것이 인정받은 듯했다. 지난 반년간 부상으로 고심하던 기억이 눈 녹듯 사려져 가는 순간이었다.
국가대표팀에 합류한 홍명보 선수는 대표팀 주장으로 ‘월드컵 4강신화’를 함께 일궈냈다.
홍명보는 당시 <아시아엔> 칼럼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히딩크 감독은 우리에게 패스 슈팅 전술 등에서 기본기를 무척 강조했다. 또 공이 가는 곳에 선수 숫자가 우세해야 한다는 단순한 축구진리를 강조하곤 했다. 또 하나 내가 가르침을 준 게 있다. 체력테스트였다. 히딩크 감독 이전 대표팀의 체력훈련은 많이 뛰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은 가슴에 맥박을 재는 띠를 두르고, 손목에는 심장박동수를 볼 수 있는 시계를 채우는 것이었다. 또 정해진 룰에 따라 뛰면서 지구력, 회복속도 등을 체크했다. 무조건 뛰는 게 아니라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키는 것을 그때 나는 깨닫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히딩크 감독은 무슨 일이든 공정하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이었다. 특히 선수선발과 배치에서 그랬다. 그는 1990년 처음 월드컵대표팀에 뽑힌 내게 어드밴티지를 주지 않았다. 나 또한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지난 1년여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맡아 ‘베트남 히딩크’ ‘쌀딩크’라 불린 박항서 감독, 히딩크 전 감독, 홍명보 전무는 지난 2월 13일 축구협회에서 만나 2002년 월드컵을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