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대설주의보’ 최승호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거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 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레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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