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윤창로 전 국방부 대변인 “이 세상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마이크 앞에 선 윤창로 전 국방부 대변인(왼쪽)

[아시아엔=이정호 전 재향군인회 홍보실장, 예비역 대령] 천국에 대변인이 공석인가? 윤창로(1940년 8월 10일~2018년 10월 12일) 장군님의 별세소식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이런 외마디가 흘러나왔습니다.

‘아직은 너무 이른데!’

80을 못 넘긴 장군님의 부음에  선·후배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안타까워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장군님은 소통의 달인이셨습니다.

전방 사단참모 시절, 당시 윤 육군정훈감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보좌관은 감님께서 부재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감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부재중이니 다시 하라”는 문화가 일상적이던 그 시절에 장군님은 꼭 메모를 하게 하고 전화를 건 사람에게 반드시 전화를 하셨습니다.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소통의 달인이셨던 거지요.

장군님은 타고난 대변인이셨습니다. 육군의 대변인, 국방부 대변인, 재향군인회 대변인을 지냈습니다. 특히 국방부 대변인은 두번을 역임하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계십니다.

국방이 어려울 때마다 대변의 달인 윤장군님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장군님은 평생을 적과 싸워오신 진정한 군인이셨습니다.

“전시에는 모든 군인이 싸우지만 평시에도 전투중인 병과는 정훈이다. 정훈은 상시심리전을 담당하지 않는가!” 늘 이렇게 정훈인의 긍지를 자극하셨습니다.

월남전에 뛰어들어 안캐전투의 현장에서 1신을 타전하셨던 장군님은 결국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현역 때는 상시 전투병과 정훈인으로서 전역 후에는 고엽제후유증과 싸우셨기에 사실상 전투중에 순직을 하신 것이지요.

장군님은 선배들에게는 친근한 아우, 후배들에게는 믿음직한 형님이셨습니다. 윤 장군님을 사랑하는 선배들은
대부분 “어이 윤창로” 이렇게 부르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후배인 저를 부를 때는 꼭 “유찬아빠”라고 부릅니다. 군의 선배나 후배라기보다는 형님·동생·전우·친구로 살았던 장군님은 진정 이 시대 리더십의 표상이었습니다.

‘예수 잘 믿고, 잘 살다, 잘 가자!’ 장군님의 거실에 걸려있는 액자속의 글귀입니다. 만나교회 수석장로로서 장로성가단의 일원으로서 마지막까지 잘 믿고, 잘 사는 길을 걸으시던 장군님은 가시는 길도 잘 가셨겠지요.

이땅에서 보내는 많은 이들은 이렇게도 서운한데 천국에서 반기는 이들은 성대한 환영식을 준비했을 테니 말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 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지금쯤 천국에 안착하셨겠네요. 유머에도 달인이신 윤장군님! 하나님을 웃게 하는 대변인근무를 기대합니다.

후배요 전우이며 아우인 유찬아빠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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