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총장 선출 D-1일···서울대이사회의 선택을 주목한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 지혜를 구하지 못함은 우매함과 교만의 소치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31년 전 일이니 시간이 제법 많이 흘렀다. 6월항쟁으로 민주화의 가을이 찾아온 1987년 11월 장군 진급인사와 관련된 일화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인사는 만사”다.

장군의 경우 가장 까다롭고 그만큼 중요한 것은 대령에서 준장 진급 심사 때다. 경력·능력·평판·인성 등 다면평가를 통해 한 사람의 장교가 장군 반열에 드는 것이다. 진급심사를 위한 심사위원회가 구성되고 얼마 안 있어 고명승 보안사령관이 심사위원장인 민병돈 특전사령관을 찾아왔다. 보안사령관 고명승은 이름을 적은 메모지를 심사위원장 민병돈에게 보여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들은 육사 15기 동기생이다. 다음은 이들의 대화다. “무슨 얘기야?” “그분 생각이시니 알아서···.” “두고 가게나.” “놓고 가긴 그렇고. 이름 잘 기억해 두고 그대로 좀···.” “···” 보안사령관이 치켜든 엄지손가락은 청와대 즉 전두환 대통령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일종의 인사청탁, 시쳇말로 ‘빽’을 쓴 것이다.

보안사령관이 떠난 후 진급 심사위원장은 메모지에 적혀있던 이름을 떠올렸다. 심사위원장 민병돈은 자신이 특전사 여단장 시절 참모로 데리고 있던 부하였음을 어렵잖게 기억해냈다. ‘맞아, 그 친구 무척 유능했었지.’

심사위원장은 청탁받은 장교의 기록 등을 다각도로 조사시켰다. 얼마 전 미군부대 근무 때 교통사고를 낸 일이 여러 증언을 통해 드러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경찰·검찰·군 헌병 및 군 검찰 어디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은 사고 사실을 재삼 재사 확인해야 했다. 분명히 사고는 있었다. 그러나 기록은 없었다. 아니 없어진 것이었다. 심사위원들의 조사 결과 진급대상자가 자신의 교통사고 사실을 모두 없애버린 것이었다. 심사위원장은 위원들의 조사를 바탕으로 위원회에 이 사안을 상정하고 의견을 물었다. 7명의 위원들은 만장일치로 그 장교의 진급을 부결시켰다. 이유는 이랬다.

“장군은 유능한 것보다 정직한 게 훨씬 중요하다. 무능은 부하들을 통해 보완할 수 있지만, 정직성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덕목이다. 인격에 결함 있는 사람이 능력까지 탁월하다면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 다른 이유가 붙었다. “미군부대 근무 때 그가 일으킨 교통사고를 미군 중에서 누군가는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장교를 장군으로 진급시킨다면 미군은 ‘한국군은 저런 사람도 장군 진급시키는구나’라고 여기며 한국군을 업신여길 수 있다.”

전두환 대통령이 청탁(이라기 보다는 지시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을 한 장교를 탈락시킨 심사위원들의 기개와 지혜가 부럽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 장교는 대통령 부인과 동향 출신으로 이듬해, 그리고 그 이듬해에도 결국 진급 못하고 대령으로 예편했다.

지난 6월 서울대이사회가 택한 최종후보자가 대통령 임명을 앞두고 ‘뜻밖의 의혹’으로 사퇴한 지 반년 가까운 총장 공백 사태가 27일 이사회 표결로 마무리 될 전망이다.

섣부른 법인화에 따른 정체성 혼란과 지성 및 권위의 끝없는 추락 등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한 서울대를 앞으로 4년간 책임질 차기 총장으로 누굴 뽑을까, 표결권자인 이사들의 고심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총장후보는 이미 알려졌듯이 오세정·이우일·정근식 세 사람이다. 정책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오세정 물리·천문학부 명예교수는 그동안 국회의원직을 비롯해 정부 안팎의 고위직을 옮겨다녀 대학의 政治化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으로 거론돼온 만큼 이번 총장 출마를 자신의 미래를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많다. 또 지난 대선때 안철수 후보편에 섰던 그가 이를 댓가로 받은 국회의원직 사퇴를 통해 이른바 ‘노선 세탁’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책평가에서 2위를 한 이우일 공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전임 성낙인 총장 체제에서 부총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보직 경험이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 전 부총장은 여러 기업 등의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이는 그의 경영 역량과 인적 네트워크 등이 바탕이 된 긍정적인 자산이라는 평가가 많다. 반면 학맥과 서울대 보직을 활용해 교수 본연의 역할을 방기하며, 서울대교수로서의 품위를 손상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전임 성낙인 총장의 경기고 후배로 그 시절 부총장을 지낸 점은 긍정, 부정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한편 지난 선거에서 최종후보에 오르지 못했던 정근식 사회학과 교수는 인문사회 분야 3대 연구소 원장을 역임했다. 또 많은 저서와 논문을 내며  연구현장을 지켰던 점을 내세우고 있다. 학장 등의 보직경험이 없는 것이 핸디캡으로 지적된다. 그는 교수평의회 회장 출신이다. 서울대 개교 72년 만에 처음으로 총장 선거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그를 지지하는 교수들은 대학(University)의 유래가 ‘학생과 스승의 연합체’(Universitas scholarium et magistrorum)였던 점에서 학생의 참여와 평가를 도외시하고선 대학의 정상적인 운영 및 학문 집중이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성낙인 총장 시절 학생들의 대학본부 점거사건이 그 반증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총장 후보들에 대한 표결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27대 서울대 총장으로 시대 흐름을 정확히 읽고 견인해 내며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사람을 뽑을 지 여부는 오로지 14명 이사들 몫으로 남게 됐다. 서울대 총장이 지녀야 할 가치와 자질 그리고 비전의 공통분모는 한국의 여타 대학 총장들과, 나아가 한국 知性史 및 知識社會에도 매우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표결권을 갖고 있는 이사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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