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텅 빈 충만’ 고재종 “억새꽃만 하얗게 꽃사래치는 들판에 서면”
이제 비울 것 다 비우고
저 둔덕에 아직 꺾이지 못한 억새꽃만 하얗게 꽃사래치는 들판에 서면
웬일인지 눈시울은
자꾸만 젖는 것이다…
물빛 하늘조차도
한순간에 그윽해져서는
지난 여름 이 들판에서
벌어진 절망과 탄식과 아우성을 잠재우고
내 무슨 그리움 하나
고이 쓸게 하는 것이다
텅 빈 충만이랄까 뭐랄까,
그것이 그리하여
우리 생의 깊은 것들
높은 것들 생의
아득한 것들 잔잔한 것들
저기 겨울새 표표히
날아오는 들 끝으로
이윽고 허심의 고개나
들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