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에 한양대병원 떠나는 차수련씨 “딸 또래 간호사들은 제발 내가 겪은 일 안 당하길”

“이제 떠납니다.” 30년전 한양대병원 노조위원장 시절(왼쪽). 지난해 복직 후 수술실에서(오른쪽)

그는 80년대 사무직·중간층 노조운동의 중심이었다. 한양대병원에 노조를 설립하고 이어 전국보건의료산업 노조를 통해 화이트칼라의 목소리를 이끌어 냈다. 노동현장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가 함께 숨쉬는 것임을 많은 이들이 그를 통해 깨닫게 됐다. 한양대병원 노조를 만들어 초대 위원장과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을 지낸 차수련 간호사 얘기다. 지난해 30년만에 병원 수술실 현장에 복귀했던 그가 정년퇴직 5개월을 남겨놓고 한양대병원을 떠난다. 그는 <아시아엔>과 전화 통화에서 “참 열심히 달려온 시간들이었다”고 했다. 그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전한다. <편집자>

[아시아엔=차수련 한양대병원 간호사, 전 한양대병원 노조위원장, 전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위원장] 이제 한양대 병원을 떠난다.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1983년 2월1일 한양대병원에 입사한 지 35년이 지났다.

노조 전임을 시작한 지 30년만인 지난해 7월 수술실 현장으로 복귀할 때, 참으로 많이 두려웠었다. 그래도 새벽별 보면서 매일매일 기도하며 출근했다. “오늘 하루도 잘 견뎌낼 수 있게, 강건하게 버텨낼 수 있게 도와주시라”고.

복귀할 때 “한달만 근무하고 그만두라”고 하던 남편은 세종시에서 매일 새벽 일어나 서울에서 출근하는 나에게 전화를 한다. “어디야? 괜찮아?”

병원측의 두차례 해고, 법원의 두차례 복직 판결, 병원측의 복직합의서 두차례 불이행···. 위원장이던 나의 복직을 위하여 조합원들의 두차례 파업,

그 뜨거운 동지애로 모진 탄압 이겨내고 투쟁했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 나는, 그 동지들에게 “반드시 간호사복을 입고 수술실로 돌아 오겠다” 했던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30년만에 수술실로 돌아왔다.

내가 널널하게 편한 일을 하고 있는 걸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거다. 나 또한 ‘절대 을’의 입장인 신규 간호사들과 같은, 을의 처지에서 그들과 같이 발로 뛰며 일부 고참들의 갑질도 참아내며, 열심히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새카맣게(너무나 까마득한) 어린 대학후배 상사의 갑질을 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과로끝에 체력은 바닥나고, 단식 후유증과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교통사고에 독한 감기까지 겹쳐 에어컨 바람이 쌩~하게 부는 수술실로 출근하는 건 도저히 몸이 감당을 할 수 없겠다 판단해 결국 사퇴 결심을 했다. 정년퇴직 5개월을 앞두고.

사직서를 제출하고 하루 종일 많은 조합원들을 만났다. 모두가 내 건강을 걱정한다. 어떤 조합원은 “위원장님을 볼 때마다 마음 속에 큰 부채감을 느낀다”며 눈물을 글썽인다. 모두들 나의 사표 소식에 놀라고 아쉬워하기도 하며 “한양대병원이 늘 위원장님의 발목을 잡았는데, 이젠 좀 편하게 스트레스 없이 즐기며 사세요”라고 한다.

20대 후반, 그 당시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마음이 짠~하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젠 가던 길 잠시 멈추고, 나의 우주를 다독이며 위로할 때인가 보다. 건강을 잃으면 나의 우주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남편은 몇차례나 전화해 “시원섭섭 하겠네”라며 위로를 한다. 아들은 “엄마 퇴직 축하파티를 하자”고 한다.

병원을 그만두면서 무엇보다 아쉬운 건, 예전에 후배들과 함께 ‘간호사준비위’를 꾸려서 ‘간호사회’ 결성 준비를 하다가 나의 해고, 수배, 구속으로 노조가 어려워지면서 무산된 이후, 지금껏 결성하지 못했던 ‘간호사회’를 결성해서 후배들에게 남겨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못내 아쉽고 또 아쉽다.

내 딸과 같은 또래 나이의 어린 간호사들이 예전에 우리들이 겪었던 어려운 처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허덕이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여전히 구시대 방식의 간선제로 회장을 뽑는, 간호사를 위한 권익단체가 아닌 일부 대학교수들의 전유물인 대한 간호협회가 분노스럽기도 하다.

이젠 남아있는 후배들의 몫으로 남기고 떠난다. 수술실을 떠나며 동료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20대의 나의 모습이 아련하다.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링크는 작년 수술실 복귀 당시 한겨레신문 인터뷰. http://m.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3817.html?_fr=nv#cb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