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군사합의서에 대한 또다른 시각

남북정상이 들고 있는 합의문은 이제 하나하나 결실을 맺을 것이다. 결실을 맺어야 7천만 겨레의 오랜 염원이 이뤄진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남북 군사합의서에 대해 걱정이 많다. 그 내용과 문제점에 대해서는 김민석 박사가 잘 정리했으므로 이로써 가름한다.(https://news.joins.com/article/22992768)

그러나 남북 군사협의를 주관했던 한 사람으로서 보건대 절차는 잘못된 것으로 생각된다. 군사문제를 국방부가 주도하지 않고 민간인인 청와대 군비통제비서관이 주도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군사합의는 철저히 국방부 주도로 이루어졌다. 국방부는 우선 합참과 협의했다. 이 안을 토대로 유엔사와 협의하고 정부 내에서는 통일부, 외무부, 국정원과 세밀한 협의를 거쳤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미군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연합사령관과 유엔군사령관을 겸하는 것은 로마교황이 삼중관을 쓰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 △로마의 대주교 △바티칸 국의 왕을 겸하는 것과 같다.

남북협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유엔군사령관으로부터 이와 관련된 협의는 우리 국방부에 위임한다는 서한을 받았다. 이 서한에는 남북대화에 유엔사가 방해(hindrance)가 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있었다. 남북협의에 관한 모든 것은 정전협정에 입각(in accordance with the armistice agreement)해서 이루어졌다. 북한도 이를 알고 있었다.

철도와 도로 연결공사를 위해서는 많은 인원과 물자가 비무장지대로 들어가야 되는데 이를 두고 유엔사와 협조문제가 제기되었다. 우리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 영국의 예를 들었다. 영국에서는 아랍 부호들에 부동산을 팔되, 소유권은 99년간 갖고, 999년 뒤에는 반환하도록 한다는 절차를 원용했다. 영국인들의 교묘한 협상력이다. 협의 결과 유엔사가 법적인 관할권(jurisdiction)은 그대로 갖되, 우리는 행정적 관리권(administration)을 갖는 것으로 양해가 되었다.

출입하는 인원과 차량에 대해서 일일이 승인을 얻는 것이 아니라, 국방부가 유엔사에 통보하면 되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남북간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공사는 이러한 협조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모든 협의는 결과에 대해서만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다.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의 어려움’을 윗선에 호소할 수도 없고, 잘 됐다고 빛을 낼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현지 사령관이 알아서 하라는 입장이었다. 연합사령관이 럼스펠드 장관에 미국에 우리 입장에 대한 승인을 구하려고 출장을 갔다. 럼스펠드는 며칠을 만나주지도 않다가 귀임하기 직전 만나주었는데 답은 퉁명하게 “현지 군사령관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이 과정을 나의 상대인 유엔사 부참모장 솔리건 장군이 솔직하게 토로했다.

현재는 미국이 군사합의서에 대해 면밀하게 검토한 것 같지 같다. 브룩스 장군이 합의내용에 논평은 않겠다면서, “유엔군사령관 입장에서는 좋지만 연합사령관 입장선 우려된다”고 한 말이 이를 집약한다.

문재인 정부는 대북관계에서 이런 대목까지 세밀히 짚어가길 바란다. 남북관계를 비롯한 모든 외교관계에서 디테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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