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출신 학자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하버드대를 나온 김경원 박사나 예일대를 나온 이홍구 박사 같은 분은 집안의 도움을 받았지만 당시 자력으로 미국에 유학을 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김재익의 부인이 세우고자 한 장학재단은 풀브라이트 장학금과 같이 제3세계 학생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재익의 부인은 이 문제로 아들과 일체 상의하지 않았는데, 아들도 어머니의 이런 결정에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분히 미국식이다. 김재익은 스탠퍼드대학에 가기 전 하와이대학에서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았다.

많은 육사 교수요원이 풀브라이트 장학금의 혜택을 받았고 이렇게 미국 유학을 다녀온 박사들은 대성했는데, 대표적인 분이 오명 박사다. 한국의 정보통신이 이 정도 발전한 것은 국보위에서 체신부 차관으로 간 오명 박사 덕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때까지 전화는 사치품을 넘어서서 집안의 권세를 과시했다. 그만큼 전화가설이 힘들어서다.

오명 박사는 국내에서뿐 아니라 그를 배출한 미국 뉴욕 주립대학의 자랑이다. 최상진, 최창윤, 박용옥 박사 등도 많은 역할을 했는데 육사가 사회에 기여한 이러한 부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0년대에 원자력연구소를 만들며 미국 유학을 보낸 것도 탁월했다.

하버드는 마치 진공소제기와 같이 세계의 인재를 온전히 흡수한다. 중국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지만, 이점에 있어서는 도저히 미국을 따라가지 못 한다. 세계 초일류의 인재들이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를 선호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은 한국에서 인재의 보고라 하는 삼성에서도 하나만 뽑는다. 현대, SK, LG, 정부에서도 각각 학생을 뽑기 위해서다.

육사 교수로 국가적으로 기여한 분으로 김성진 박사가 있다. 김성진은 인천고 출신으로 육사에 수석 입학했다. 4년 내내 수석이었고 졸업도 수석이었다. 같은 수석 입학, 수석 졸업으로는 28기 김병관 대장이 있다. 김성진은 경성고보(경기고)와 경성제대 법문학부에서 내내 수석을 하다 고대 총장을 지낸 유진오 박사와 같은 전설적 수재였다.

김성진을 기억하는 교관들은 그의 답안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감 첨삭이 없는 모범답안이었다고 한다. 육사 졸업 후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위탁교육을 받았고 4·19 당시에는 송요찬 참모총장의 부관을 지냈다. 송요찬은 흔히 石頭로 알려졌으나, 4월혁명에서 카빈총으로 무장한 경찰에 M-1 총탄을 가져다주라는 절묘한 지휘로 대량살상을 막았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를 김성진은 후배들에 들려주었다.

김성진은 국방관리연구소(ADD)에서 국방관리연구소(KIDA)를 분리시켰는데 KIDA는 공학 중심의 ADD에서 경영학, 정치학 중심의 국방관리로 전환해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김성진이 떠난 후 장성 출신의 소장들을 보좌, KIDA를 더욱 발전시킨 것은 부소장을 지낸 권태영 박사다. 국보위에서 KIDA로 들아온 밴더빌트 경제학 박사 오관치, 솔본느 정치학 박사 차영구도 큰 기여를 하였다.

재정상 여유가 생긴 70년대에 들어 졸업 성적 1등에서 4등까지 외국유학을 시켰다. 인재를 중시하는 박정희의 탁월한 결정 덕분이다. 요새 육사 출신을 질시하는 분위기는 잘못되었다. 박정희는 사관학교 출신을 졸업 5년 뒤 연수시킨 후 임용고시를 거쳐 사무관으로 특채했다. 행정의 달인 고건 등은 이들을 활용했다. 노태우가 이를 없앤 것은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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