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최종현 선대회장 20주기①] 어록···”노사는 한솥밥을 먹는 한 식구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봐도 조건 없이 지원하겠다”며 1973년 광고주를 구하지 못한 문화방송 장학퀴즈를 선뜻 후원했다.

8월 26일 별세 20주기를 맞는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은 평생 두권의 책을 남겼다. <마음을 다스리고 몸을 움직여라>(1988)와 <도전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1992). 책 제목만큼 그의 평생은 下心과 挑戰의 연속이었다. 얼핏 보면 상충되는 듯한 이들 두 단어는 최종현 자신과 그가 키워낸 SK그룹 그리고 계승자 최태원의 화두이자 목표가 되고 있다. <아시아엔>은 그의 ‘어록’ ‘인재관’ 등을 통해 독자들과 그의 삶을 살펴보려 한다. 자료를 제공해주신 SK그룹 PR팀에 감사드린다.<편집자>

기업관

“섬유업체 경쟁자들이 줄곧 섬유에만 매달릴 때 나는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완성을 위해 줄곧 노력했다. 주변에서조차 믿지 않았던 것을 15년 노력 끝에 해냈다. 플랜을 갖고 경쟁하는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1991년, 울산 CLX 완공 이후)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 유공 인수, 정보통신산업 진출 등 남들은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절대 운만으로 큰 사업을 할 수 없다. 새로운 성장동력원 확보를 위해 10년 이상 준비한 결과다.”(1997년 12월 주간지 인터뷰)

“석유개발은 한두 해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한두 번 실패했다고 중단하면 아무 성과가 없다. 실패에 관해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1984년, 아프리카 유전개발 실패 이후)

“지금 2000억원을 더 주고 사지만 나중 일을 생각하면 더 싸게 사는 것이다. 우리는 충분히 준비했으니 10년 이내에 1조~2조원의 이익을 낼 수 있다.”(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비용이 치솟자 반대하는 임원들에게)

“노사는 한솥밥을 먹는 한 식구다. 식구끼리 싸우면 집안이 어찌 되겠는가? 싸움은 밖에서 다른 경쟁업체와 해야 한다.”(1980년 7월, 전경련 강연 중)

“우리나라 시장경제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을 필수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공존관계다. 중소기업 도움 없이는 대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1993년, 전경련 회장 취임 후 대중소기업협력위원회 구성에 나서며)

국가관

“최종현 회장은 산소호흡기를 달고 휠체어를 탄 채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에게 세 가지를 강력히 얘기했습니다. ‘비상수단을 쓰고 금리 낮춰달라, 규제 풀어달라.’

후에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는데 ‘최종현 회장의 금리를 낮추자는 얘기를 들었어야 했는데’라며 후회하더라. 곧이어 외환위기가 터지고 말았다.”(손병두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 회고 중)

“국가경쟁력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며 국민과 정부, 기업의 총체적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 경제를 지배하는 정치논리가 아니라 경제를 도우려는 정치논리를 재정립하는 것이 국제화, 개방화를 앞둔 우리나라에 필요한 국가과제다.”(1993년, 이코노미스트클럽에서 ‘국가경제력 강화를 위한 제언’ 강연 중)

“향후 국제관계는 글로벌리제이션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진행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를 것이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제무대에서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1991년, 아시아소사이어티 초청 연설 중)

인재관

“21세기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강국이 되고 SK는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변방의 후진국이지만 인재양성 100년 계획을 세워 지식산업사회를 구축해 일등국가로 발전해야 한다.”(1978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과의 대화 중)

“우리는 사회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었다.”(1995년, 울산대공원 조성을 약속하며)

“인간은 석유와 비교도 되지 않는 중요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자원이다. 석유는 한 번 쓰면 없어지지만 인간의 능력은 사용할수록 향상되고 가치가 커진다.”(조동성 전 서울대 교수와의 대화 중)

“회사 임원 일부가 ‘해외 유학생 장학금으로 연간 4만~5만 달러는 너무 많다’는 의견을 내놓자 최종현 회장은 ‘이왕이면 최고 수준의 장학금으로 합시다. 돈 좀 아낀다고 뭘 하겠소. 그리고 돈 걱정 없어야 24시간 공부에 전념할 수 있지 않겠소’라고 답하더라.”(고등교육재단 이사들과 장학금 관련 대화 중, 정범모 전 서울대 교수 회고)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봐도 조건 없이 지원하겠다.”(1973년, 광고주를 구하지 못한 장학퀴즈 후원을 결정하면서)

“우리가 장학퀴즈로 7조원 정도를 벌었을 것이다. 기업 홍보가 1조~2조, 인재를 키우고 교육시킨 효과가 5조~6조원 정도 될 것이다.”(1980년, 장학퀴즈 500회 특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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