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자이니치 2세②] 나카시마 주연 <우연하게도 최악의 소년>···자살·이혼·마약·정신질환

[아시아엔=이주형 기자] <고>가 사춘기 시절 정체성으로 고민하는 소년의 성장통에 코믹적인 요소를 가미해 유쾌하게 풀어냈다면 <우연하게도 최악의 소년>(2003)은 다소 암울하다. 폭력이나 섹스를 적나라하게 묘사하진 않지만 따돌림, 자살, 이혼, 마약, 정신질환 등 불편한 소재들을 다룬다. 첫 장면부터 그렇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사키 유미(나카시마 미카 분)는 열차의 좌석 하단을 발로 차며 고요함을 깨뜨린다. 카네시로 히데노리(이치하라 하야토 분)는 레코드샵에서 도둑질을 하다 걸려도 연신 웃어대기만 한다. 그에게 도움을 주려던 타로(이케우치 히로유키 분)의 칼날을 맨 손으로 잡아 피를 철철 흘리지만 웃음은 그칠 줄 모른다.

레코드샵에서의 일을 계기로 연락처를 주고 받은 타로는 헌팅 자리에 히데노리를 불렀고, 그 자리에 유미가 동석하며 극을 이끌어 가는 셋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러나 각자의 아픔을 안고 있는 히데노리와 유미의 첫 만남은 최악이었다.

히데노리가 딱딱하게 굴기만 하던 유미에게 음료수를 부었고, 유미는 그의 뺨을 날리며 복수한다. 그래도 히데노리는 여전히 웃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항상 웃기만 하는 히데노리. 그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말을 하며 생활하는 히데노리는 자이니치 2세란 이유로 어려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그의 엄마와 누나 카네시로 나나코(야자와 신 분)는 히데노리에게 늘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성격 탓인지 히데노리는 쉽게 변하지 못한다. 히데노리는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부서져 자라왔다. 착한 사람을 본 적이 없기에 나쁜 사람이 좋다고 할 정도로 세상을 불신하는 히데노리. 그가 등교를 거부하고 거리를 방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히데노리와 나나코의 부모가 이혼하고 부자-모녀로 가족이 갈라지면서 극은 급격히 전개된다. “조선인도 한국인도 싫지만 일본인은 더 싫다”고 당차게 말하며 늘 강인해 보였던 누나 나나코가 자살한 것이다. 그리곤 어느 때처럼 거리를 방황하는 히데노리.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던 유미를 발견한다. 히데노리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그녀를 끌고 어디론가 향한다. 목적지는 놀랍게도 병원의 영안실이다.

히데노리는 조국 한국땅을 밟아보지 못한 채 죽은 나나코의 시체를 들고 밀항해 한국으로 향하자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꺼낸다. 놀랍게도 유미는 이를 받아들이고, 차를 소유한 타로까지 합류하며 셋은 황당한 여정에 나선다.

<고>와 <우연하게도 최악의 소년>은 어느 정도 연식이 있는 작품들이다. 그 사이 세월도 많이 흘러 세계화란 단어가 우리에겐 익숙해져 버렸다. 세계화가 진행되며 국경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지만 민족의 경계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경계인들은 태생의 뿌리가 된 집단과 실제로 속해 있는 집단 사이에서 헤매고 있다.

두 작품이 묘사했듯, 자이니치 2세대들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두 작품은 자이니치 문제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식의 노골적인 메시지는 던지지 않는다. 다만 <고>의 중반부에서 스키하라와 조총련계 친구 정일이 나눈 대화는 다시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일본인은 오래 전 한국인, 중국인과 같은 DNA를 갖고 있었어. 수십 만년 전엔 심지어 아프리카 사람들과도 비슷했다고. 다 같은 인간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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