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근 ‘녹두거리’의 변신은 무죄···박종철기념관·창업단지 ‘공존’

 

[아시아엔=박수진 <서울대총동창신문> 기자] 1970년대초 서울대종합화에 따라 관악산 밑에 캠퍼스를 조성한 국립서울대학교. 당시 일부에선 “종합화는 구실이고, 데모 막기 쉽게 한곳으로 모아놓은 것”이라는 말도 떠돌았다.

진위를 떠나 40여년 전 서울대를 다닌 세대뿐 아니라 최근에도 서울대 관악캠퍼스 인근 대학동의 상업·주거지역은 오가는 이들로 북적댄다. ‘녹두거리’다.

황량한 벌판이던 이곳은 대학문화와 고시문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발전했다.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옮겨온 후 ‘관악세대’로 불린 서울대생들은 녹두거리 곳곳의 식당과 술집, 자취방에서 민주화 담론을 꽃피우며 울분을 삭이고 정의감을 불태웠다. ‘벼슬 산’이라고 불리던 관악산에 칩거하던 고시생들은 고시촌으로 내려와 터잡았다. 인근 녹두거리의 저렴한 물가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로였다.

작년 말부터 녹두거리가 또다른 변화를 겪고 있다. 사법시험 폐지로 고시촌 인구가 줄면서, 유흥가이자 놀이터 역할은 서울대입구역 상권인 ‘샤로수길’이 상당 부분 이어받았다. 그런가 하면 금년 초 영화 <1987>의 흥행과 함께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서울대 언어학과 84학번)씨 하숙집이 있던 녹두거리는 민주화의 성지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녹두거리의 가게들은 주머니가 가벼운 청춘들의 몸과 마음을 배불리 먹였다. 녹두거리라는 이름도 70년대 후반부터 저렴한 가격에 동동주와 안주를 팔아 인기를 끈 ‘녹두집’에서 유래했다. 1980년대 학생들의 사랑을 받은 곳은 청벽집, 탈, 달구지, 두레박, 회빈루 등의 학사주점이다.

학내집회와 시위가 있던 날이면 대만원을 이뤘다. 서울대 60년사에 따르면 금요일엔 2시 아크로 집회→4시 교문투쟁→8시 주점 뒤풀이→11시 자취방 토론이 정해진 코스였다.

1990년대 들어서 주점문화는 카페문화에 자리를 내줬다. 청벽집, 달구지 등 많은 주점이 문을 닫았다. 과외지도로 주머니가 넉넉해진 서울대생의 소비성향이 변한 탓으로 풀이된다. 1995년 한 일간지는 이렇게 보도했다.

“지금의 녹두거리는 사방 20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술집 105곳, 당구장 25곳, 오락실 8곳, 노래방 16곳, 비디오방 26곳이 몰려 있어 ‘녹두 라스베가스’로까지 불린다”며 “학생들이 1병에 4000원 하는 미제 밀러맥주를 홀짝거리는 등 유흥가 부근 카페에서나 볼 수 있던 모습들이 이제 이곳에서도 전혀 낯설지 않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90년대 향수를 자극한 신원호(서울대 화학공학과 94학번) tvN PD는 “‘태산’이라고 부르던 주점 ‘태백산맥’이 아직 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1988년 개업한 ‘태백산맥’은 90년대에도 끄떡없이 하루 1000명씩 손님을 받았다. 타 대학 학생들의 예약을 받지 않을 정도였으나 2000년대 들어 경영 악화를 면치 못하고 당구장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1996년 문을 연 민속주점 ‘임꺽정은 살아있다’는 2014년 문을 닫았다가 유사 이름의 해장국집을 오픈했다. 반면 ‘황해도 빈대떡’, ‘동학’ 등의 막걸리집과 호프집 ‘휘가로’, ‘녹두호프’ 등은 20년 넘게 건재한 모습이다. 개강파티, 일일호프, 종강파티 등의 단골 장소다.

녹두거리의 인문사회과학서점들은 서울대 학내 시위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다. 80~90년대 ‘그날이 오면’, ‘전야’, ‘열린글방’ 등은 녹두거리의 서점 트로이카로 꼽힌다. 이해찬(서울대 사회학과 72학번) 전 국무총리 형제가 운영하던 ‘광장서적’처럼 서울대 동문이나 가족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 서점은 사회과학서적 외에도 민중가요 테이프와 가사집을 팔았고 시위학생들의 책가방과 쇠파이프, 화염병 등을 맡아주곤 했다. 지금은 ‘그날이 오면’만이 후원회의 도움으로 자리를 이전해 영업 중이다. 학생들이 신문과 유인물을 만들던 복사집 중에는 ‘집현전복사’가 1980년대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은 녹두거리의 동의어다. 관악산에서 내려온 고시생도 많았지만 신림동 일대에서 자취나 하숙을 하던 서울대 고시생들이 다수 합격하면서 고시 동네로 입소문을 탔다. 윤석열(서울대 법학과 79학번) 서울중앙지검장, 원희룡(서울대 공법학과 82학번) 제주지사 등이 고시촌 출신으로 유명하다. ‘돼지막’으로 불린 1평짜리 무허가 하숙집에서 출발한 고시촌은 고시원과 고시학원, 고시식당과 서점 등 파생시설과 함께 확장을 거듭했다.

고시생들은 고시촌에 면한 녹두거리의 술집과 당구장, 만화방, PC방 등을 즐겨 찾으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신림동 토박이 출신의 영업용 택시기사는 “20여년 전 서울대 법대 학생들과 녹두거리에서 밤새 어울려 술을 마셨다. 그러고서도 고시에 합격해 한 턱을 쏘곤 했다”고 회상했다. 법대생들이 호프집 ‘휘가로’ 등에 소위 ‘깔때기’를 두고 술을 마셨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2007년 사법시험 폐지 발표 이후 고시촌과 녹두거리도 침체기를 겪고 있다. 골목마다 고시 관련 상점들의 업종 변경과 폐업이 눈에 띈다. 서울대 재학생들 발길도 뜸해졌다. 서울대생 홍정우(건축학과 15학번)씨는 “통학하는 학생들을 배려해 녹두거리보다 교통이 편리한 서울대입구에서 모임을 잡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녹두거리가 낡은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도 원인이다.

홍씨는 “녹두거리가 차별화된 점은 학과 행사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술집들이었는데, 학생들 트렌드에 대응하지 못하고 서비스도 만족스럽지 않아 등을 돌리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지역 상권은 변리사, 법무사, 회계사, 7·9급 공무원 등 신종 고시생들을 통해서 활로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저렴한 주거지를 찾아온 젊은 층의 유입도 반가운 변화다.

최근에는 녹두거리 활성화를 위해 서울대와 서울대 동문들이 나섰다. 지난해 12월 녹두거리에 문을 연 청년 창업단지 ‘서울대 스타트업캠퍼스 녹두.zip’가 한 사례다. 서울대생과 각지의 청년창업가들이 신림동 고시촌에서 꿈을 키우며 새로운 ‘대학촌’을 형성하게 한다는 취지에서다.

‘녹두.zip’은 불황을 겪는 고시학원과 독서실, 고시원 등을 빌려 리모델링하고 청년창업가들에게 창업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첫 입주자로 15개팀 34명이 선정돼 창업 실험을 펼치고 있다. 서울대가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추진 중인 ‘서울대 청년 창업밸리’ 조성사업이자 지역사회와의 상생을 도모하는 일환이다.

치열한 학생운동의 장이었던 녹두거리의 역사를 되새기는 움직임도 한창이다. 지난 1월 관악구는 녹두거리에 ‘박종철거리’를 조성하고 선포식을 열었다. 박종철씨가 재학 시절 살던 하숙집이 있는 골목이다. 기념 동판과 벽화 등으로 꾸민 박종철 거리 인근에는 내년 중 ‘박종철기념관’을 세울 계획이다.

박종철기념관 민관추진위에는 관악구 관계자와 지역민은 물론 서울대 민주동문회 소속으로 박씨와 같은 학과의 이현주(언어85학번)씨, 이남주(경제84학번) 서울대 6월항쟁 기념사업회장, 김치하(서양사학84학번) 박종철기념사업회 감사, 신재용 총학생회장 등 모교 동문과 재학생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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