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N 특집 코미디② 아시아] 이란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무사위’ 인기 절정

 

중동과 동남아 일대에서 인기를 끈 그림자극의 두 주인공 카라괴즈와 하지와트.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역사 알면 찡하고, 내용 보면 재밌고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기자] ‘아시아’와 ‘코미디’. 이 두가지 키워드로 글을 쓰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 누구도 코미디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 문명임을 부정하지 못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고대 그리스에서 무대 위 사람들이 코미디를 할 때 아시아 지역에서 코미디를 아예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시아 코미디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관련 언어들에 대한 정의부터 내릴 필요가 있다. ‘해학’은 일상생활에서 익살스럽고도 품위 있는 요소들을 꺼내는 예술이다. ‘풍자’는 어떤 부정적인 상황을 표현할 때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해학을 사용하는 예술이다. ‘희극’은 인간과 사회와 관련된 이상하거나 모순된 점들을 흥미 있게 여러 방법으로 다룬 연극이다. 영어로 코미디(comedy)라고 한다. 따라서 ‘희극인’은 바로 코미디언인 것이다. 희극인은 무대에서 웃기는 화장을 하거나 옷을 입고 공연을 펼칠 수 있고, 풍자를 이용할 수도 있다.

아시아의 코미디를 관통하는 몇가지 키워드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림자극이다. 그림자극은 조명에 비친 그림자에 비춰진 인형을 이용해 공연하는 극을 말한다. 인형극의 한 부류지만, 그림자극이 인형극보다 널리 알려진 이유가 있다. 아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아침 일찍부터 노동을 했기 때문에 밤에는 이웃과 모여서 즐길 거리를 찾아야 했다. 밤에도 가능한 그림자극이 보통 인형극보다 많은 주목을 받은 까닭이다. 특히 그림자극은 명절이나 축제 기간 밤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골메뉴었다.

그림자극의 탄생지가 어딘지 확실하지 않지만, 일각에서는 중국 서부 혹은 인도남부라는 설이 있다. 또 인도네시아에서 시작됐다는 얘기도 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는 대형 인형극박물관이 있고, 여기엔 인도네시아 전통 인형은 물론 세계 각국의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자극이 코미디 장르로 정점을 찍은 것은 오스만제국 시절이다. 발칸반도부터 이란까지, 아라비아반도는 물론 북부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오스만제국에서 사회적인 이슈들을 재미있게 다루던 것이 그림자극이다. 특히 라마단 기간에 주민들은 저녁이 되면 도시 광장에 모여 그림자극을 관람하곤 했다.

오스만제국 시절에 그림자극이 발전하면서 특정 캐릭터가 압도적으로 뜨기도 했다. 카라괴즈와 하지와트(Karagöz and Hacivat)가 대표적이다. 하지와트는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허세가 심한 캐릭터다. 반면 카라괴즈는 백수인데 쓸 데 없이 솔직해 말실수를 자주하는 캐릭터다. 이 두 캐릭터의 만담과도 같은 그림자 인형극은 오스만제국을 통해 그 지배 지역에서 확산되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에서 알제리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같은 이름으로 공연되고 있다.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카라괴즈와 하지와트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관계를 풍자하면서 사회문제들을 해소하고 극복하는데 크기 기여했다.

아시아의 코미디를 통일시키는 또 다른 키워드는 나스레딘 호자(Nasreddin Hoca)다. 나스레딘 호자는 어떻게 보면 최불암 같은 인물이다. 즉, 원래 13세기에 셀주크제국에서 살았던 수피 현자인 나스레딘 호자가 주인공이 된 수많은 민담이 존재하고 있다. 몽골제국의 서부 지역인 일칸제국과 충돌하면서 몰락한 셀주크 사회의 제반 문제들을 현명하게 제기한 나스레딘 호자의 민담들은 아직도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다.

여기서 더 신기한 것이 나스레딘 호자가 주인공으로 나온 민담들이 오직 터키에만 남아있다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똑 같은 이름으로 나스레딘 호자의 민담들이 중국의 위구르족 자치구부터 보스니아 혹은 이탈리아 남부까지 현지 언어로 남아 사람들로 하여금 큰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민족이나 출신 지역에 대해서 학자들끼리 논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유네스코는 1997년을 ‘나스레딘 호자의 해’로 선정할 정도로 그는 아시아 사람들의 웃음 코드가 미묘하게 잘 들어간 민담의 주인공이 분명하다.

서양의 대표적인 코미디언이 찰리 채플린과 아시아의 대표 코미디언 나스레딘 호자가 역사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뭐야? 두 인물이 서로 다른 시기에 살았는데, 어떻게 둘이 만나?” 하고 믿지 못하실 거다. 바로 설명해 드리겠다. 1940년 ‘The Great Dictator’ 작품을 낸 찰리 채플린이 1942년 출연한 라디오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

“어떤 이웃이 나스레딘 호자의 집을 찾아왔다. 호자는 그를 맞이했다. 이웃은 ‘호자, 옆 마을에 물건을 좀 운반하려는데 당신의 당나귀를 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나스레딘은 당나귀를 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무례하지는 않게 ‘미안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빌려갔소’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당나귀가 벽 뒤에서 울어대기 시작했다. ‘아니 호자, 당나귀가 벽 뒤에 있지 않습니까?’ 그러자 나스레딘은 화를 내면서 말했다. ‘당신은 나의 말을 들은 거야, 당나귀 말을 들은 거야?”

나스레딘 호자의 민담을 들려준 찰리 채플린은 그 직후에 전 세계인들에게 “인간의 말을 들을 거냐? 아니면 당나귀 말을 들은 거냐?”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인류에게 당나귀 즉 히틀러의 말을 거부하라고 제의한 것이다.

현대 아시아에서 다시 뜨기 시작한 코미디 장르가 ‘스탠드업 코미디’가 아닌가 싶다. 필자는 앞 문장에서 ‘다시’라는 부사를 일부러 사용했다. 한국인들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미국의 전통장르로 여기지만 중동사람들은 스탠드업 코미디의 전통이 자기들한테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터키 사람들이 오스만제국 시절 메따(meddah)라고 하는 사람들이 커피집에 모여 있는 대중에게 웃기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마치 코미디 클럽에서 사람들이 술을 마시면서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관람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메따라는 직업은 19세기에 끊임없이 이어진 전쟁들 때문에 거의 사라졌다가 20세기 중후반 냉전이 끝나면서 다시 아시아 각국에서 기지개를 폈다. 지금은 이를 통해 사회적 이슈들을 풍자하며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이란에서 최근 제일 주목받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제이넵 무사위(30·Zeynab Mousavi)다. 코만 보이도록 히잡을 깊숙이 뒤집어 쓴 그는 현재 이란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스꽝스런 현상들을 풍자한다. 보수파의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는 그는 국영방송국의 공채시험을 통과해 개그우먼으로 힘들게 활동하고 있다. 직접 이란정권이나 종교적 요소들을 개그 소재로 쓰지는 않지만 코미디우먼으로서 할 말은 다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란처럼 종교와 정치가 구분되지 않고 일치된 또 다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더 신기한 현상이 있다. 예전 같으면 엄청 말조심 하거나 눈치를 봐야 했던 코미디언들이 최근 들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우디에서 실권을 잡은 젊은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가 코미디언들을 적극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개혁파인 왕세자는 이슬람 이맘들에게서 항의를 받고 있다. 그동안 이맘들을 코미디 소재로 다루지 못 하던 코미디언들이 최근에 와서 그들을 무척 강하게 풍자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유명해진 코미디언은 나세르 알 카사비(Nasser Al Qasabi)다.

환갑은 앞둔 이 개그맨은 최근 소송까지 당했다. 이맘들이 카사비를 종교재판에 고소했다. 다행히 왕세자 눈치를 보는 종교재판관들이 카사비의 개그 속 풍자가 종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특정인물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코미디같은 현실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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