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정교와 로마카톨릭 어떻게 다른가?

19세기 44년 동안 지어졌다가 스탈린 시절 파괴된 구세주성당이 2000년 4년만에 재건됐다. 러시아 국민들의 신앙심의 반증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아시아엔=남현호 <러시아, 부활을 꿈꾸다> 저자] 러시아정교회 신도는 전체 인구의 75%인 약 1억명 정도이며 다음이 이슬람(15%), 로마가톨릭(2%), 기독교(0.7%), 불교(0.6%), 유대교(0.3%) 순이다. 나머지는 무신론자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정교회 역사는 키예프러시아의 블라디미르 대공이 988년 비잔틴제국에서 동방정교를 받아들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일 국가의 국민을 하나의 종교로 포섭하기 위해서는 권위 있는 종교가 필요했다. 블라디미르는 러시아인답게 음주에 관대했던 동방정교를 택했다.

1917년 사회주의혁명 이후 소련 공산당이 무신론을 공식화하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암흑기에 빠지게 된다. 스탈린에 이어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에 이르기까지 종교 탄압은 이어진다.

공산당의 압제에도 굴하지 않고 민중 속에 자리잡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굳건히 견뎌온 것이다. 혁명 이후 70년 동안 러시아 사람들은 강요된 무신론자들이었다. 그럼에도 1000년 이상 이어져온 뿌리 깊은 종교적 열정을 100년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식힐 수는 없었다. 이제 러시아는 신앙국가로 다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지난 2007년 소련 공산당의 종교탄압에 반발해 해외로 망명했던 신자들이 세운 해외 러시아정교회와 90년만에 재통합을 이뤘다. 러시아정교회의 십자가 모습은 로마가톨릭 성당의 십자가와 다르다.

가톨릭 성당이나 교회의 십자가는 수직과 수평 두개의 ‘바(bar)’로 이루어져 있는데, 러시아정교회의 십자가는 수직 ‘바’ 하나에, 크고 작은 수평 ‘바’ 세개로 이루어져 있고, 제일 밑에 있는 수평 ‘바’는 똑 바르지 않고 기울어져 있다. 약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힌 채 돌아가셨던 그 십자가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고 한다.

러시아에서는 최근 종교와 국가의 구분이 불투명했던 과거처럼 러시아정교회의 영향력이 점점 켜져서 러시아의 사회 전반에 그 부정적 영향이 미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다.

러시아정교가 종교로서의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일정 선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논쟁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종교가 정치문제에 관여하고 정교회 신부들이 정치인들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종교의 정치세력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까닭이다. 2010년 10월 전통적 교리 유지와 엄숙주의를 강조해온 러시아정교회가 젊은 신도 확보를 위한 포교 목적으로 무료 동영상을 공유사이트인 유튜브에 자체 채널을 개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사 문제와 관련한 정교회의 공식 입장과 교회 지도부의 논평, 총주교가 집전하는 예배 모습 등이 영상으로 올려져 있다.

러시아인들은 모스크바 시내 중심부 모스크바 강가에 자리한 ‘구세주성당’(Cathedral of Christ the Saviour)에 얽힌 전설 같은 얘기를 믿고 있다. 구세주성당은 1812년 12월 나폴레옹 군대의 침략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러시아의 비잔틴 양식 건축가였던 콘스탄틴 톤의 설계로 1839년부터 1883년까지 44년에 걸쳐 완공됐다. 구세주성당을 건립할 당시 인근에 있던 수녀원을 부득이 이전해야 했는데 이에 반대한 한 수녀가 “새로 건립되는 성당은 50년 이상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라고 저주를 퍼부었다고 한다.

스탈린에 의해 1931년 12월 구세주성당이 파괴됐으니 결국 수녀의 저주대로 된 것이다. 스탈린은 구세주성당이 허물어진 그 땅에 미국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보다 높은 ‘소비에트성’(Soviet Palace)을 건립하려고 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발발로 건설이 지연되다가 이후 공사를 재개했으나 건설부지의 지반이 약해 고층건물 건설이 불가능한 사실을 알게 된 후 건설은 중단됐다. 대신 이미 깊이 파여진 땅을 이용해 1958년 ‘모스크바’라는 이름의 야외 대중수영장으로 만들어졌고 1995년까지 모스크바 사람들이 애용했다고 한다.

소련 붕괴 직후 당시 옐친 대통령은 대통령 특별포고령을 통해 공산주의 시절 파괴되었거나 방치된 건물들에 대한 복원사업을 추진했는데 구세주성당이 첫 번째 복원대상이었다.

정부의 재정지원 및 국민성금으로 4년간의 공사 끝에 2000년 초 재건됐다. 19세기에는 성당 건립에 44년간이 걸렸던 것과 비교할 때 20세기 건축 기술공법이 상당히 발전되었음을 감안하더라도 4년만에 완공시킨 것은 러시아 국민들의 폭발적인 종교적 충동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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