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렬의 해외유학 가이드 32] 딸 미래 가로막는 ‘딸바보’ 아빠들

[아시아엔=이강렬 미래교육연구소 소장,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 국적을 불문하고 어느 나라 아빠이건 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남다르다. 그런데 한국 아빠들은 딸에 대한 특별한 정서가 있다. ‘딸 바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문제는 관심이 지나쳐서 딸을 바보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필자는 미래교육연구소에서 학부모들을 상담하면서 ‘딸 바보’를 참 많이 만난다. 딸을 현명하게 키우기보다 바보로 만드는 ‘딸 바보’ 아버지들을 본다. 어떤 딸 바보는 딸을 멀리 못 보낸다며 우수한 딸 아이를 굳이 국내대학에만 보내려 한다.

딸은 기를 쓰고 해외대학으로 가려고 하는 데도 아빠는 “딸은 아빠 곁에 있어야 한다”며 붙잡는다. 어떤 아빠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총기사고가 많은 미국에 보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딸은 어떻게든 아빠의 곁을 벗어나려고 한다. 딸을 사랑하는 것인지 인질로 생각하는 것인지···.

미국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하고 미국 상위권 대학에 갈 수 있는 능력있는 딸을 국내대학으로 불러들이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멀쩡하게 미국대학에서 공부 잘하는 딸을 국내 대학으로 편입하라고 성화다. 이런 아빠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된다. 사례를 몇 가지 보자.

#1.

외동인 A는 9학년 때 본인이 원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지금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 성적도 매우 우수해 미국 상위권 대학 진학도 가능하다. A의 ‘딸 바보’ 아버지는 대기업에 다닌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게 어렵지 않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빠와 딸의 갈등이 시작됐다. ‘딸 바보’ 아빠는 아이에게 국내 대학으로 진학하라고 적극 권한다. 자신의 옆에 두고 싶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나와서 한국에서 평범하게 결혼해 살기를 원한다.

아이는 끊임없는 아버지의 설득과 협박에 국내대학으로 방향을 잡았다. 반면 엄마는 “외국에서 그렇게 잘하는 아이를 굳이 한국 대학으로 데려오려고 하느냐”며 국내로 돌아오는 것을 반대하지만 아빠의 딸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 고집을 꺾지 못하고 동의하는 단계에 와 있다.

딸이 아버지를 위해 있는 것인지, 아빠가 딸을 위해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간다. 아빠의 이기심이 딸을 바보로 만들려고 한다.

#2.

국내 중학교에 다는 B는 해외로 조기유학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딸 바보’ 아빠는 아이를 절대로 보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아이를 보내고 나면 허전해서 못 보내고, 그 위험한 곳에 딸을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고 나중에 대학원을 갈 수 있으면 그때 유학을 생각해 보자고 한다.

엄마 생각은 다르다. 아이가 한국 학교 시스템에 잘 맞지 않아서 해외로 조기유학을 보내고 싶어 하지만 아빠가 워낙 딸에 대한 집착이 심해서 허락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3.

C는 미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지금도 C의 아빠는 아이에게 한국 대학으로 편입하라고 채근한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오래됐으니 이제 함께 살자고 한다. 하도 아빠가 한국대학으로 편입하라고 성화여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C는 정말 만족스럽게 대학을 다니고 있다. 국내대학에서 접하기 어려운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C는 미국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취업할 생각이지만 ‘딸 바보’ 아빠는 아이를 곁에 두고 싶어 한다.

필자는 이런 ‘딸 바보’ 아빠들에게 묻는다. 아이를 ‘한강의 잉어’로 키우길 원하는가 아니면 ‘태평양의 고래’로 키우길 원하는가? 코리아 스탠더드㉿로 키울 것인가, 글로벌 클래스 기준으로 키울 것인가?

선택의 문제다. 큰 물에서 노는 아이와 얕은 물에서 노는 아이는 노는 격이 다르다.

딸을 아끼는 ‘딸 바보’ 아빠들에게 주고 싶은 말은 가급적 넓은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라는 것이다. 어떤 선택이 진정 딸을 위한 것인가 생각해보라. 교육은 연습이 없다. 단판 승부다.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 딸은 아빠의 장식품이 아니다. 독립적 인격체로 자기의 길을 가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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