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화폐 탐구] 트럼프·폼페오 지갑에 이 화폐 있을까?
북한화폐, 최고액 5천원권엔 김일성 초상···2천원권엔 백두산 김정일 생가 모습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아시아기자협회 글로벌커뮤니케이션팀 팀장,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저자] 필자는 5년 넘게 한국의 여러 매체에 각국 화폐 관련 글을 쓰고, 서강대·카톨릭대 등에서 지폐를 소재로 강연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나 청중이 국제적인 지식수준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게끔 노력해 왔다.
하지만 아직 한국화폐에 대해서는 글을 쓴 적이 없다. 왜냐하면 외국인으로서 한국인들에게 한국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 왠지 어색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난 4월 27일과 5월 26일 두차례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이제는 말할 때가 됐다”고 스스로에게 확신을 주게 됐다. 물론 아직도 한국화폐에 대해서 말하기보다는 북한화폐와 관련해 먼저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북한을 대표하는 화폐는 최고액인 5000원권이다. 5000원권 앞면에는 북한의 국부인 김일성 주석의 초상화가 실려 있고, 뒷면에는 그의 생가인 만경대 사진이 담겨 있다. 잘 아다시피 오늘의 북한사회는 다른 공산권 국가와 달리 순전히 이념적인 바탕 위에 건립된 체제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거의 김일성이란 인물과 일치된다고 보면 틀림없다. 김일성 주석은 공식적인 국부인 동시에 정신적인 지도자다. ‘신격화’된 존재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김일성 주석의 삶에서 의미 있는 장소들은 성지가 되어있다. 지금도 북한 인민들은 물론 외국인 방문객은 김일성 생가 등을 ‘성지순례’ 수준으로 관광코스에 넣고 있다. 현재 만경대 등 김일성 주석과 관련 있는 장소들은 북한의 ‘1호 유적지’가 되어 있다.
필자 역시 평양에 갈 기회가 생기면-한국 국적을 신청해 취득이 얼마남지 않은 필자는 멀지 않은 시일 안에 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만경대를 가장 먼저 방문할 계획이다.
북한의 공산주의는 본래 유럽에서 탄생한 공산주의와 차이점이 한 가지 더 있다. 통상 공산주의 국가에는 민족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레닌의 볼셰비키혁명을 통해 러시아제국이 붕괴되고, 소비에트연방 건국 과정에서 ‘러시아족’을 찬양하는 발언이 나왔다. 이를 통해 아시아권 공산주의 국가에서 민족주의 요소가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곳이 북한사회다.
북한의 2000원권 뒷면에는 백두산이 등장한다. 백두산은 한민족의 건국시조인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성스러운 곳이다. 뿌리깊은 민족주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이들 화폐 외에도 북한 교과서나 신문에도 민족주의적인 요소들은 쉽게 발견된다.
2000원권 앞면에는 건물이 등장하는데 백두산 밀영(密營)의 김정일 위원장 고향집이다. 김일성 주석의 아들이자, 김정은 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이 태어난 집이라고 북한 당국은 밝히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생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러시아 학자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실제로는 소련 연해주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 만일 러시아 학자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존재를 강화하기 위해 백두산 아래 항일 독립운동기지였던 밀영을 화폐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신성시되는 북한 정권의 모습은 화폐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1000원권 앞면에는 김일성 주석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생가가 등장한다. 국부의 영부인 생가가 화폐에 나타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북한 화폐에 등장하는 것 가운데 김일성-김정일 가계(家系) 이외에도 6·25전쟁과 관련한 것들이 있다. 북한체제에서 6·25전쟁은 매우 상징적인 위치에 있다. 북한에선 6·25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여긴다. 이때 ‘해방’은 일본 식민지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미국 제국주의를 상대로 한 해방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북한체제에서는 ‘적’ 개념이 매우 중요하며, 북한이 ‘적’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바로 미국이다. 북한 정권은 미국에 대해 ‘제국주의의 수괴’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제국주의 수괴를 물리친 ‘용감한 북한군인’을 강조하며 영웅시한다. 그림이나 동상 등에 자주 등장하게 되는 까닭이다. 화폐에도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10원짜리 뒷면에 보이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이다.
북한 당국이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필자 역시 남북정상회담에 이은 북미회담이 앞으로 계속 순항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길 누구보다 기원하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한국인 아내와 아들 하룬이의 손을 잡고 북한 땅 여기저기를 여행하는 꿈을 종종 꾼다.
다시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로 돌아와 보면 실상은 북한이 모델로 삼을 만한 나라가 있다. 바로 베트남이다. 베트남의 경우 월남전 종전 후 20년이 지난 1995년 클린턴 행정부와의 국교정상화를 통해 현재는 매우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이 베트남에서 벤치마킹할 것은 외교만이 아니다. 북한의 개방 역시 세계의 주목거리가 될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 관광분야 개방을 먼저 했는데, 북한도 비슷한 과정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는 외국인들이 여행할 만한 곳이 많다. 빼어난 풍광이 본래 자연환경 그대로 보존돼 있다. 자연 경관 사이사이 들어서 있는 멋진 건축물들이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500원권 앞면에 보이는 평양의 개선문이다. 1982년 김일성 주석 70세 생일에 맞춰 건립된 평양 개선문은 파리 개선문보다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북한의 건축물은 개선문 외에도 또 있다. 바로 50원 뒷면에 있는 공산당창건기념탑이다. 조선노동당 창건 50주년 기념일인 1995년 10월 10일을 하루 앞둔 10월 9일 준공된 이 건물에는 노동당 당기가 새겨져 있다. 당기에는 사회주의 건설을 독려하는 망치와 붓 그리고 낫이 그려져 있다. 북한은 여느 공산권 국가보다 선전에 치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건축물과 기념탑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이들 건축물 등이 화폐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