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찍고 대천 ‘1박 2일’···건국대 농축대원 ‘자생회’ 서해 나들이
[아시아엔=이길주 탐마루 대표] “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번 탐방을 통해서 자생회 회원들은 오래토록 함께 하자고 서로 공감을 하였습니다.”
지난 6월 23~24일 1박 2일로 서울을 출발해 평택을 거쳐 보령에서 마무리된 ‘2018 자생회 1차 탐방’을 마치고 나니 갑자기 가슴이 울컥거렸다.
마침 탐방기간이 2010년 건국대 농축대학원에 최고위과정을 개설해 ‘자생회’(자원생명의 약자에서 따옴)를 발족시킨 고 박세원 학장님의 3주기 추도식과 겹쳤기에 더욱 그랬다.
농축산업과 관련된 생산, 가공, 유통 관련 업종을 비롯해 언론계, 학계, 공기업 등에서 일하는 회원들은 1년에 3~4차례 모여 사업하며 겪는 갖가지 일과 인생을 털어놓으며 친목을 다지고 있다.
30대 중반부터 여든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가방끈 차이도 제법 난다. 하지만 그런 것은 우리 자생회에선 ‘정말로,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어느 회원의 말대로 “흙냄새 맡고 땀 흘리며 살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인 듯하다.
작년 가을, 일본 후쿠시마 탐방에 이은 이번 상반기 국내 탐방에는 모두 28명이 참여했다. 전체 회원의 1/3 조금 넘는 인원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참석한 것이나 다름없다. 탐방 도중 ‘자생회’ 단체카톡에는 여러 사정으로 참석 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담긴 글이 계속 뜬다.
탐방 첫날, 서울 경찰병원 앞에서 오전 9시 출발한 28인승 버스는 오전 11시 평택 남양에 있는 신도철 자생회 회장의 ‘남양농산’에 닿았다. 미리 와 있던 김광호( 회원 이 합류하고 잠시 후 심재만 회원 부부, 황인철 회원 부부 가 도착한다.
남양농산 소회의실엔 “(주)남양식품의 미래 사업 위에는 항상 고객만족이 있다”라고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30년 가까이 그야말로 성실 하나로 남양농산을 일군 신도철 회장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남양농산 이진영 박사가 ‘남양농산의 비전’을 20여분 압축 설명한다. 이런 내용이다.
“대형마트를 비롯해 각종 마트와 학교급식에 쌀과 잡곡 등을 가공·유통, 공급하고 있다. 국내 독보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불량률 제로에 가까운 품질을 목표로 한다. 신브랜드를 생산하며, R&D 투자를 과감하고 활발하게 한다. 소비자는 바로 우리 가족이자, 우리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신도철 회장의 열정과 땀방울이 물씬 묻어나는 (주)남양농산 현장견학을 마치고 일행은 충남 보령으로 이동했다. 물론 탐방일정에는 회원들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을 호스트에게 전달하고 공동식사가 빠지지 않는다.
주말 서해쪽으로 이동하는 고속도로는 이날도 붐비기는 마찬가지. 오후 5시 보령시 남포면 봉덕삼현길 318 소재 (주)에코플랜츠에 도착했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자생회 부회장인 백정민 대표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저희 회사가 매각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하여 오늘 제 말씀은 성공사례가 아니라 실패담이 될 것 같습니다. 회원님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북한에 농업생산 기술이전 등 남북경협에도 일찌감치 눈을 뜬 백정민 대표는 “작년 가을 신도철 회장님과 이길주 총무님께 저희 회사에 와주십사 초청을 했기에 그 약속을 지키려고 모시게 됐다”고 했다.
백 대표의 발표를 정리해본다.
“30대 젊은 나이에 회사를 설립해 토목공사부터 완공시점까지 손때 묻히고, 정성 들여 설립한 회사였다. 애초 1조원 시장을 꿈꾸며 출발했다. 탄탄대로를 가다가 ‘과유불급’이랄까. 한번도 실패를 맛보지 않았는데, 에코플랜츠에서 발목이 잡힌 거다. 원인은 외부에도 있지만 내 자신에게서 찾고 있다.”
그는 “남북관계가 잘 풀리고 있어 20년전부터 해온 남북관련 사회적 기업에 집중하려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기죽지 않은 그의 모습에 일행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는 “실패를 거울삼아 더욱 알차고 내실 있는 사업을 펼쳐가겠다”고 했다.
이틀 전 夏至가 지난 여름밤, 대천 앞바다에 색소폰 소리가 퍼져갔다. 사업 틈틈이 색소폰을 익힌 심재만 회원(알앤에프 대표)이 음향기기와 반주기를 가져와 혼신의 힘을 쏟은 연주는 작년 말 송년회에 이어 이번에도 회원들에게 깊은 감동 그 자체였다. 몸빼바지 차림의 심재만 회원은 가곡에서 가요·뽕짝까지 흥을 돋우기 위해 땀 뻘뻘 흘리며 연주를 계속해갔다. 식탁에는 고기 바비큐가 오르고, 회원들은 자신들의 일과 삶을 풀어낸다.
어느새 밤은 깊어가고 멕시코와의 월드컵 2차전을 핑계로 자리는 마무리됐다.
일행은 이튿날 새벽 바다낚시에 나섰다. 새벽 4시30분 기상, 5시 대천항 출발, 신분증 확인 후 6시 승선···.
낚싯대를 바다에 던지며 건져 올린 우럭으로 빚은 회와 매운탕을 앞에 놓고 도란도란 뱃머리에 앉았다. 회원들은 이곳에서도 ‘자생회’와 ‘자생회 회원들’을 화제로 얘기꽃을 피운다.
낚시 대신 대천 명소 산책에 나선 회원들과 합류한 자생회원들은 불과 6~7시간 떨어져 있었지만, 얼마나 그리웠던지 서로 반기느라 정신이 없다. 일행 중 가장 어른으로 홍어회와 떡, 복분자를 준비해온 박송자 회원(고창농산 대표)의 추임새가 재밌다. “나는 자생회원들만 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져요.”
글을 정리하다 보니 빠진 것이 있다. 김광호 회원(AK&BH 회장) 얘기다. 공직에 몸담고 있다 대기업 임원으로 옮긴 그는 2년전 부인을 잃고 큰 실의에 빠졌었다. 작년 말 송년회에 나온 그의 초췌한 모습은 너무 안쓰러웠다. 그러던 김 대표가 그후 러시아에서 농업 생산·유통 사업을 일으켜 삶의 활력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생회를 통해 큰 힘을 얻고 있다”고 했다.
우리 자생회 모임이 앞으로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누구도 쉽게 예단할 순 없을 거다. 그러나 지난 6년여 원생과 동창생으로서 참여하며 확실히 답할 수 있는 게 있다. “흙과 땀, 그리고 진실한 우정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자생회 회원들과 인연을 맺은 것, 그리고 그 인연을 이어가는 것, 그것은 40대 중반을 넘기고 있는 내게 가장 의미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밑바닥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따뜻한 배려 그리고 사랑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자생회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