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방한] 대통령 일등공신 ‘필리핀 로빈 훗’ 라몬 툴포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3~5일 한국을 국빈 방문합니다. 이번 방한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의장국이던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을 초청한 데 따른 것입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방한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ASEAN 국가원수로는 첫 번째입니다. 4일 정상회담에선 양국 교역과 투자 확대 등 실질 협력방안이 논의될 예정입니다.

지난 3월 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이어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번 방한으로 신남방정책 추진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ASEAN 국가를 4강외교 수준으로 격상시킨 바 있습니다. <아시아엔>은 아시아기자협회 선정 ‘2017 자랑스런 아시아인’에 선정된 두테르테 대통령 방한 관련 특집기사를 낼 계획입니다. 또 <매거진N> 특별판을 제작해 두테르테 대통령 일행과 주한 필리핀 대사관·교민단체 등에 전달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문종구 <아시아엔> 필리핀 특파원, 이상기 발행인] 2016년 12월 26일 밤 9시45분 필리핀 마닐라시티 상그릴라 호텔에 두테르테 대통령이 들어섰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언론인 라몬 툴포 ‘isumbongtulfo’(툴포에게 물어봐) 대표의 7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참석자들 눈길이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쏠렸다. 대통령은 보통 필리핀 서민들이 그렇듯 차분한 미소를 띠고 조용한 걸음걸이로 들어왔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1시간30분 가량 이곳에 머물며 하객들의 손을 일일이 잡고 대화를 나누다 자리를 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무대 앞에 나와 별도의 인사말은 하지 않았지만 시종 겸손하고 온화한 표정이었다.

툴포 기자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현직 대통령, 그것도 반년 전 취임해 ‘마약과의 전쟁’과 ‘반미 발언’ 등으로 전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는 ‘스트롱 맨’ 두테르테가 그의 생일에 직접 참석했을까?

툴포 기자는 1946년 11월22일 다바오에서 태어났다. 생일잔치는 애초 툴포 생일에 예정돼 있었으나 두테르테 대통령이 “선약이 있다. 변경해 달라”고 요청해 이날 열렸다.

툴포는 독립투사 출신 부친과 일본계 모친 사이에서 4남1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부친은 미국과 일본의 필리핀 점령 기간 ‘게릴라 투쟁’을 했으며 독립 후 군인으로 살다 생을 마감했다.

툴포는 집안이 가난해 선원이 되려고 2류급에 속하는 해양대학(PMI, 지금은 폐교된 상태)에 다니다 중퇴한 후 언론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필리핀 유력지 <인콰이어러> 칼럼니스트로 언론활동을 하며 라디오 고정채널 ‘DWIZ 882 AM’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20년 이상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을 위한 ‘신문고’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isumbongmokaytulfo’(툴포에게 얘기하세요) 사무실엔 전국 각지에서 억울한 사정을 갖고 찾아온 서민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툴포 기자는 부자들이나 공직자, 특히 경찰의 비리에 대한 제보를 받아 취재한 후 실명으로 라디오와 신문, 텔레비전 등에서 보도한다. 그는 특히 알린 페라르 <아시아엔> 필리핀 특파원 등 후배기자 4~5명과 팀을 이뤄 전국적으로 서민들의 억울한 실태를 수집하고 공직자 비리근절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동생 2명과 함께 ‘툴포 브라더스’라는 채녈5 텔레비전 고정 코너도 운영해 오다, 현재는 두 동생이 계속 진행하고 있다.

툴포는 2016년 대통령선거를 1년여 앞두고 당시 다바오 시장이던 두테르테 대통령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의 필리핀을 개혁시킬 사람은 두테르테 당신 외에 없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라.” 이에 두테르테는 “나는 대통령직에 미흡할 뿐더러 출마의사가 없으니 누구든 내 이름을 거론하지 말라, 만일 나를 부추기는 사람은 총으로 쏘아 죽이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그렇다고 물러설 툴포가 아니었다. 툴포는 설득을 멈추지 않았다. 며칠 뒤 툴포는 칼럼을 통해 두테르테에게 “국가를 위한 봉사와 의무를 회피하지 말라”며 “나를 쏴라”고 했다.

마침내 두테르테 시장은 대선출마를 결심했으며 툴포는 두테르테를 공개적으로 소개하고 지지세력 확보에 나섰다.

2016년 말 툴포 기자는 자신의 70회 생일 파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민과 약자들을 위해 뛰어다니는 우리 팀의 활동을 다바오 시장 시절부터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 격려하고 후원해주는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나는 앞으로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나의 조국 필리핀 국민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다시한번 다짐하건대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이날 생일 파티에는 아로요, 에스트라다 등 전직 대통령과 툴포와 뜻을 같이 하는 상하원의원·장차관·시장·도지사 등 정치인 20여명과 연예인, 언론인, 툴포 가족 등 모두 200여명이 참석했다.

툴포가 거리를 거닐거나 도로를 이동할 때 경호원과 경호차가 앞뒤에 따라다닌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파견해 준 것이라고 한다. “툴포, 당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힘없는 국민들은 의지할 곳이 없으니 각별히 몸조심하시오. 내가 지금 벌이고 있는 마약과 범죄와의 전쟁이 빨리 마무리돼 당신이 맘놓고 다닐 수 있길 바라오.”

그로부터 11개월 뒤 작년 11월 20일 아침 마닐라 중심가 술루호텔 식당과 그가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는 필리핀공보센터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당신의 일은 어떤 것인가?

“억울한 문제로 하루 30~40명이 아침부터 와서 기다린다. 언론이나 정부에 호소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갖고 온다. 이야기를 들으며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그 중 일부는 라디오방송으로 소개한다. 전국방송인데 아침 9시부터 1시간 동안 나와 <아시아엔> 필리핀 특파원인 알린이 함께 진행한다. 이들의 민원 80% 정도가 우리 사무실을 통해 해결되곤 한다.”

-주로 어떤 내용들인가?

“갑질에 관한 게 가장 많다. 법률다툼이 필요한 경우는 변호사를 선임해 주기도 한다.(이 사무실에는 변호사가 1명 상근하며 상담에 응해주고 있다) 시골 가는 차비를 달라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자선단체가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그냥 돌려보낸다.”

-한국에서 만난 필리핀 사람들은 당신을 ‘필리핀의 로빈훗’이라고 하더라.

“나더러 로빈훗이라고? 하하, 로빈 훗은 남의 재산을 빼앗아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지만 나는 남의 것을 훔치거나 강도질 해 돕는 게 아니다.”

-두테르테에게 대통령 선거 출마를 권유했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맞다. 대통령이 된 그는 필리핀을 마약과 각종 범죄, 부패로부터 구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그는 한번 마음 먹으면 꼭 해내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공약을 실천해 반드시 필리핀을 선진국으로 이끌 것이다. 두테르테는 무엇보다 청렴하다. 그는 다바오시장 시절 서민들이 사는 집에 살았다. 그렇게 검소하고 국민들 편에 서는 대통령은 두테르테가 처음이다. 두테르테의 리더십은 바로 솔선수범하는데서 나온다.”

-두테르테 임기가 끝나면 필리핀이 진짜 살기 좋은 나라가 될까?

“물론이다. 아시아의 호랑이로 부상할 것이다. 1997년 동남아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 때 놓친 기회를 다시 붙잡을 거라고 본다. 만연한 부패와 범죄 그리고 마약을 퇴치한다면 우리나라도 새로운 미래를 활짝 열 수 있을 것이다.”

툴포에게 “혹시 아시아기자협회 창립멤버인 조 파비아 기자를 아느냐”고 물었다.

“물론! 그는 내 멘토나 다름없다. 1972~74년 필리핀통신사 기자 시절 함께 근무했다. 조 파비아는 계엄령 아래서도 검열을 거부하며 우리들에게 기자로서의 용기가 뭔지 몸으로 가르쳐줬다. 그런 분이 아시아기자협회 창립멤버라니 너무 기쁘다. 나도 아자와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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