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테르테 방한] 정의롭고 개성 강한 ‘서민의 영원한 친구’

두테르테 취임식 장면<사진=AP/뉴시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3~5일 한국을 국빈 방문합니다. 이번 방한은 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아세안+3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의장국이던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을 초청한 데 따른 것입니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방한은 문 대통령 취임 이후 ASEAN 국가원수로는 첫 번째입니다. 4일 정상회담에선 양국 교역과 투자 확대 등 실질 협력방안이 논의될 예정입니다.

지난 3월 문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에 이어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번 방한으로 신남방정책 추진이 본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ASEAN 국가를 4강외교 수준으로 격상시킨 바 있습니다. <아시아엔>은 아시아기자협회 선정 ‘2017 자랑스런 아시아인’에 선정된 두테르테 대통령 방한 관련 특집기사를 낼 계획입니다. 또 <매거진N> 특별판을 제작해 두테르테 대통령 일행과 주한 필리핀 대사관·교민단체 등에 전달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편집국] 로드리고 로아 두테르테 필리핀의 제16대 대통령은 현대 아시아 리더 가운데 가장 개성이 강하고 정의로우며 서민적인 지도자로 꼽힌다.

2016년 6월 30일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두테르테는 1945년 3월 28일 남레이테 주에서 태어나 남다바오 주 다바오에서 성장했다. 거침없는 막말 행각과 불의에 대한 주저 없는 행동으로 국제사회의 비난도 사고 있지만, 기득권층의 적폐청산과 마약 및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국민들의 안전한 삶을 확보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부에선 그를 ‘필리핀의 도널드 트럼프’라고도 부르지만, 그는 세간의 평가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필리핀 국민들의 안전·행복·미래가 자신의 정책목표이자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가족은 중화인민공화국 푸젠성 샤먼시 출신의 이민자였으며, 1951년 민다나오섬 세부 주의 다바오에 정착했다. 아버지 비센테 두테르테는 변호사, 어머니 솔레다드 두테르테는 교사이자 시민단체 대표였다. 아버지는 변호사 활동 이후 정치인으로 나서 다바오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다바오 시가 다아보 주에서 분리되기 전 다바오 주지사를 지냈다. 1965년에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행정비서관으로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사회지도층에 오른 아버지와는 달리, 어린 시절 로드리고의 성격은 불같은 성격으로 곤경에 처할 때가 많았다. 다이고스 성십자가대학(Holy Cross College of Digos)에 입학하여 중등교육을 끝마쳤다. 1968년에는 마닐라 라시움대학에서 정치학 학사를 취득했으며, 1972년 산 베다 법학대학에서 법학학위를 취득한 직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1970년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다바오 시 검찰의 검사로 임용되었다. 검사로 재직할 당시 두테르테는 범죄자들에게 가차없는 검사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1988년 ‘피플 파워’ 민주화운동이 벌어질 당시 다바오 시의 부시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1988년 두테르테는 지방검사직을 사직하고 민주필리핀당(PDP-Laban)에 입당하면서 정치경력을 시작했다. 같은 해 다바오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2010년에는 3선 연임 제한규정에 걸려 선거 출마가 불가능하게 되자, 딸 사라 두테르테 카르피오를 선거에 내보내고 스스로도 부시장으로 동시 출마해 함께 당선됐다. 딸이 시장, 아버지가 부시장인 체제로 운영되기도 했다. 이후 2011년 다시 시장으로 당선되었으며, 2016년까지 총 22년간 다바오의 시정을 이끌었다.

두테르테는 시장 재임 시절 수많은 범죄자들을 소탕해 징벌자(The Punisher)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바오시는 90년대만 해도 무슬림 무장단체와 공산군 활동 등으로 치안이 극도로 불안했으나 두테르테 시장 취임 이후 밤에도 안전한 도시로 거듭났다. 테러진압과 마약퇴치를 통해 다바오시를 범죄없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그의 약속은 그대로 지켜졌다.

두테르테의 유세운동 중에 모습 <사진=AP/뉴시스>

두테르테는 2016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 중도좌파 성향의 민주필리핀당 소속 후보로 출마하면서 “모든 범죄자를 처형하겠다”며 대통령 취임 6개월 내 범죄소탕과 부패척결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필리핀에 만연한 범죄와 부패, 빈곤을 근절하기 위해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조성되면서 지지세력이 결집했다. 2016년 5월 7일 수도 마닐라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그는 “인권법은 잊어버려라”면서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시장 재임시와 똑같은 방식으로 하겠다”고 말해 지지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범죄 외에도 정치 기득권세력의 공약과 정반대 정책을 강조하며 관심을 모았고, 특히 중앙정치를 끝내고 지방분권형 정치체계를 통해 각 지방의 독자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지방별 맞춤정책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끝내겠다는 공약으로 필리핀 대중의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기존 정치세력이었던 마누엘 로하스 후보와 그레이스 포 후보가 단일화에 실패해 여권 표가 나뉘는 호재까지 겹치면서, 5월 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1300만표를 얻어 당선했다.

그는 취임 후 경호실 인원을 대폭 감축하고 국내 출장때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고 한다. 서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그들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국가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게 그의 오랜 꿈이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7년 타임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사)아시아기자협회는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 아시아 각국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두테르테 대통령을 ‘2017 아시아를 빛낸 아시아인’으로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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