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일] 구 소련 국가들 대거 UN 가입한 날

2009년 기니비사우 대통령 피살

2009년 3월2일 서아프리카 소국 기니비사우의 주앙 베르나르두 비에이라(당시 69세) 대통령이 군부세력에 의해 피살됐다. 자모라 인두타 군 대변인은 이날 “비에이라 대통령이 군인들의 공격을 받고 도주하던 중 사살됐다”고 발표했다.

이날 비에이라 대통령을 공격한 군인들은 전날 저녁 폭탄 테러로 사망한 바티스타 타그메 나 와이 장군의 추종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군부는 2008년 11월에도 대통령 관저를 공격했다. 나 와이 장군은 한 달 전 “비에이라 대통령측이 자신에 대한 암살을 계획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군부 간의 반목은 골이 깊었다.

하지만 군부는 이날 국영 라디오를 통해 “이번 사건이 쿠데타와는 무관하다”며 “대통령 암살은 일부 군인들이 저지른 사건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인구 약 160만명의 기니비사우는 1974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이후 쿠데타와 내전을 반복해 왔으며 최근 들어서는 마약 밀매 거점 국가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1992년 구 소련 국가들 대거 유엔 가입한 날

1992년 3월2일 구 소련 연방 소속이었던 이른 바 ‘스탄’ 국가들이 대거 UN에 가입한다. 아르메니아(Armenia)와 아제르바이잔(Azerbaijan), 카자흐스탄(Kazakhstan),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타지키스탄(Tajikistan), 투르크메니스탄(Turkmenistan), 우즈베키스탄(Uzbekistan), 몰도바(Moldova) 등이 모두 UN에 가입했다.

이탈리아 영토에 둘러싸인 독립국 산마리노 공화국(이탈리아어로 Repubblica di San Marino)도 이날 UN에 가입했다. 산 마리노는 1968년에 나우루(오세아니아)가 독립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공화국이었다.

이밖에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and Herzegovina)와 크로아티아(Croatia), 슬로베니아(Slovenia)가 같은 해 5월22일 UN에 가입했고, 그루지야(Georgia)는 같은 해 7월31일 UN 가입했다.

1972년 소행성 탐사 우주선 파이어니어 10호 최초 발사

1972년 3월2일 우주탐사선 파이어니어 10호가 최초로 소행성대 탐사를 위해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발사됐다. 1970년대 당시 행성간 탐사는 미국이 주도했다. 무인 우주선 매리너 10호가 최초로 수성에 도달했으며, 파이어니어 10호는 소행성대를 무사히 통과해 1973년 12월 최초로 목성을 근접 비행했다.

당시 인간이 만든 물체로서 우주 공간 속으로 가장 멀리까지 나아간 파이어니어 10호는 1983년 6월13일 태양계를 벗어났다. 파이어니어 10호에는 혹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외계인들에게 인류문명을 설명하기 위해 칼 세이건 박사가 고안한 명판이 들어 있었다. 파이어니어 10호가 발사된 이후 파이어니어 11호, 보이저호, 율리시즈호, 카시니호 등이 계속해서 우주탐사에 나섰다.

나사(NASA)는 파이어니어 10호 발사로부터 꼭 16년이 지난 1998년 3월2일 “목성의 위성인 에우로파(Europa, 유로파)에서 물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에우로파는 두꺼운 얼음이 표면을 덮고 있다. 목성의 강력한 방사능으로 표면에서 생명체가 살아있는 것은 불가능하나 그 아래에는 거대한 바다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표면의 협곡들은 얼음 아래의 대류작용으로 인한 것이다. 만약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바다 아래에서 생성된 유기물이 얼음 협곡 주변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에우로파는 목성의 위성 가운데 넷째로 큰 위성이다. 1610년에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발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연인들 중에 한 명인 에우로페의 영어 이름에서 따왔다.

1962년 네윈, 쿠테타로 버마 정권 장악

1962년 버마 국군의 최고 지휘관(국방장관)이었던 네윈(Ne Win, 본명 슈 마웅(Shu Maung))은 “정부를 지키려 한다”면서 쿠데타를 결행해 정권을 잡았다. 버마는 1948년 독립하지만, 그 직후부터 반란이 계속 됐다. 1962년 네윈의 쿠테타는 이런 국정 혼란을 바로잡는다는 명분 하에서 결행됐던 것이다. 집권 후 네윈은 버마의 독자적인 사회주의 정책(버마식 사회주의)을 채택했다. 그 자신이 혁명 평의회 의장을 거쳐 1974년부터 7년 뒤 사직할 때까지 대통령이 됐다.

▲1959년 이스라엘 방문 당시, 이스라엘 총리 다비드 벤 구리온 (좌) 과 악수하는 네 윈 (우)

사직 후에도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 (BSPP) 의장을 맡아 국정에 군림했다. 이 기간에 버마는 외교에서는 엄정한 중립 정책을 취해 주변 제국의 혼란에 말려 들어가지 않았지만, 경제 정책에서는 완전히 실패해 세계의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1988년에 국민의 불만이 폭발한 민주화 요구 데모(8888 항쟁)가 발생했다. 1988년 8월8일 8시 수도 양곤의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하여 불교 승려와 시민들이 대거 참여해서 ‘8888항쟁’이란 이름이 붙었다. 네윈은 여기에 책임을 져 당 의장을 사임했지만, 당시 연설에서 “군은 국민에게 총구를 향한다”라면서 민주화 세력을 견제했다. 사임 후에도 은연의 영향력을 가져 만년에는 지금까지 외교에서의 중립적 자세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판했다.

1911년 탄생해 2002년 12월5일 사망한 정치가이자 군인인 네윈은 독립운동가로서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군 참모총장과 ?혁명 평의회 의장, 대통령, 버마 사회주의 계획당 (BSPP) 의장을 맡았지만 독재자로서 비난당했다.

네윈은 중국인 피를 가진 버마족 가정에서 태어났다. 의사가 되려고 랑군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지만 중퇴했다. 우체국원을 거쳐 ‘우리 버마인 연맹(도바마 협회, Dobama Asiayone, 혹은 타킨당)’에 가입했다. 1941년 2월에 아웅 산이 인솔하는 청년 활동가 그룹 ‘30인의 지사’의 한 명으로서 일본에 의해 하이난 섬에서 혹독한 군사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12월에 방콕으로 이동해 버마 독립 의용군을 결성했다. 네윈은 국내 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게릴라반의 반장으로서 1942년 1월에 일본군과 함께 버마로 진군 했다. 일본의 패세가 분명해진 1945년 3월에 대일 반란을 일으켜 일본군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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