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10·26 아침에 박근혜 전 대통령께
[아시아엔=이상기 발행인] 박근혜 전 대통령님, 귀하의 판단과 결심, 실천에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려 있습니다. 그것은 양보와 비움, 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님. 오늘 새벽 어린이대공원과 어린이회관을 거닐었습니다. 특별히 찾아간 것은 아니며, 집 근처에 있어 종종 산책하는 곳입니다. 고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지대한 관심으로 1970년대 초중반 골프장이 있던 자리에 어린이대공원과 어린이회관을 조성한 덕분이지요. 늦가을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50대 장년에서 70대 노인분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장소를 마련한 분을 잠시 떠올렸었지요.
거닐다가 문득 오늘이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날이란 사실을 알고, 대통령께 글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님.
영어의 몸으로 심신이 많이 지치신데 대해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뜻과 바람대로 되지 않는 일과 함께 지나간 세월과 사람들에 대한 여러 상념으로 심사가 복잡하실 걸 생각하면 대한민국의 일개 국민으로서 여간 민망하고 송구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현실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일 뿐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전 대통령께서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번민, 그리고 혹시 갖고 계실 지 모르는 억울함, 원망과 분노에서 어서 평안하고 자유로워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귀하 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도 지금 상황을 참담해 하기만 마찬가지이지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상황과 현실을 벗어나는 길과 열쇠는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님께서 쥐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 대통령께선 지난 4년간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이자 최고지도자이셨습니다. 그것은 앞으로도 바뀔 수 없는 역사이며 ‘당대의 명백한 현실’이었습니다.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이 되는 순간 그는 지지자뿐 아니라 반대자에게도 대통령이며 그들을 하나로 통합해서 국가의 비전을 세우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박 전 대통령께선 혹시 부인하고 싶은 맘도 들 수 있겠지만, 그 책무를 게을리한 결과가 지금의 상황을 불러왔다고 많은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글을 통해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습니다. 그것은 법원과 역사의 몫이겠지요.
작년 이맘때 처음 태블릿PC가 보도된 것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에 닥친 격동만큼 전 대통령께서도 그 이상의 변화를 겪으셨지요.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지금 태극기와 촛불로 대별되는 두 집단이 마주 달려오는 기차마냥 국론은 분열될 대로 분열돼 있습니다. 김정은의 북한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등 어느 주변국 하나 맘놓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님. 전직 대통령들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힘들고 외로우셨을 것으로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후임 문재인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문 대통령의 경우 취임 이전부터 그의 의지와 관계 없이 옥고를 치르고 계신 박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어찌할 바 모르고 가슴이 답답하기만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든 죽는 순간까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기회와 권한이 있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물론 그것은 선의의 희망과 확고한 믿음, 그리고 강한 의지가 동반돼야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전 대통령께서 남은 생을 ‘국가’에 대한 못다한 헌신을 해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지지자에 대한 그것이 아니라 반대자를 포함한 온 국민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 대통령께서 혹시 남아 있을 억울해는 마음과 원망을 떨쳐버린다면, 그리고 여생을 당신이 취임 초기 아니 그 훨씬 이전 정치를 하면서부터 갖고 있던 ‘가난하고 힘없는 가여운 국민들’에 대한 애정을 깊이 간직하고 계신다면, 나아가 물질적·정신적 속박에서 벗어나도록 실천으로 옮기신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소록도를 찾아 환자들의 문드러진 손을 잡고 눈물 흘리던 어머니의 발자취를 다시 찾아나선다면 얼마난 아름다운 일일까요. 전 대통령께서 그런 길을 택하실 진대 지금의 험한 일상은 새벽 안개처럼 걷히고 환한 빛이 그 자리를 비출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한 귀하의 선택과 실천은 온 국민의 박수와 함께 존경을 받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제 전 대통령께서 어린 시절 머물던 신당동 ‘박정희가옥’에 놓여있는 가족사진을 봤습니다. 부친이신 고 박정희 대통령께서 남동생 지만씨를 껴안으려 하자 육영수 여사와 두 누나가 활짝 웃는 장면이더군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박근혜·근령·지만 삼남매가 이제라도 오순도순 잘 지내면 먼저 가신 두 분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저는 전 대통령께 미안한 맘이 하나 있습니다. 잊지 않고 있구요. 제가 한국기자협회 회장 시절이던 2004년 8월 17일 당시 한나라당 대표 자격으로 한국기자협회 창립 40돌 행사에 참석하셨지요. 그때 청와대·여당과 썩 좋지 않은 사이였던 걸로 기억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축하말씀 뒤 박 대표께 마이크를 드리며 말씀을 청하지 않은 걸 지금껏 후회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어하는 듯했는데 저는 침묵하고 말았던 거죠.
2013년 취임 한달 남짓 지난 어느 자리에서 유민봉 수석이 청와대에 합류하게 된 얘기를 하더군요. “유민봉 교수님. 탈북자 한명이 남쪽에 와서 남한사람과 똑같이 일자리도 갖고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는 게 진짜 통일을 준비하는 것 아닌가요? 태풍 피해 농가 보상을 이듬해에 해준다면 무슨 소용인가요. 바로 보상해야 농민들이 맘놓고 신나게 농사짓는 것 아니겠어요?”
전 대통령의 이 말씀에 유 수석은 청와대에 합류하게 됐다더군요. 기억나시지요?
그같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국민들이 지금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기대를, 그들의 믿음을 태극기와 촛불의 극한대립으로 내몬다면 이 얼마나 후회스런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통령의 남은 시간이 대한민국의 통합과 미래를 위해 소중히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은 어찌 저뿐이겠습니까?>
4년 남짓 후 맞게 될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을 상상해 봅니다. 그 자리에 박근혜 전전 대통령과 문재인 직전 대통령이 나란히 참석해 귓속말을 나누는 장면, 아무리 생각해도 흐뭇하기만 합니다.
다시 한번 전 대통령님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줄입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년 10월 26일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