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일] 역사 속 삼일절엔 이런 일이?

2011년 역사 속 삼일절

2011년 3월1일 오전 당시 삼일절을 맞아 경북 울릉군 남면 독도 접안장에서 ‘독도 페스티벌’ 음악회가 열렸다. 한국인 가수 김장훈 씨는 독도행 유람선을 타고 배 위에서 승객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김장훈 씨는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씨와 함께 이 음악회를 기획, 한국의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회원 등 300여 명이 이날 선상 음악회에 참가했다.

2010년 삼일절에는 한국의 웹사이트 <디시인사이드>와 <웃긴대학>, <루리웹>, <엽기 혹은 진실> 등의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연합, 한국의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서 ‘정당한 테러 대응 카페’에 집결해 일본의 웹사이트 <2채널>을 공격했다. 앞서 <디시인사이드>와 <2채널>은 2004년 이후 크고 작은 싸움을 벌여왔다. 2010년은 ‘경술국치(1910년)’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2009년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 90주년, 2008년은 대한민국 건국 60년이었다.

2009년 3월1일 삼일절 기념을 앞두고 한 청와대 비서관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일화를 한국의 친일파 행적에 비교하면서 “(일본 강점기 때) 일부 독립운동 지도자가 이런 류의 생각을 하고?있어 우리의 근대화가 늦어졌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 해 2월26일 당시 이상목 청와대 민원제도개선비서관은 충남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을 방문, 식민종주국인 영국의 방직기 제공 의사를 거부하고 물레로 옷감을 만들어 입자고 주장했던 간디의 일화와 친일파 행적을 비교 설명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비서관은 또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 근대화와 발전에 미친 영향을 높이 평가하는 발언도 한 것으로 보도됐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최근 이 비서관과 같은 사람들이 한국에 많다고 지적하면서 일본과 한국 근대사의 역사를 바로 보자는 취지에서 동영상을 만들어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스스로를 보수로 여기는 한 젊은이는 이 동영상을 본 뒤 “일제 독립투쟁과 임시정부까지 잊게 하려는 시도는 참을 수 없다”면서 “이런 식으로 미래를 바꾼다고 지금 조작한 세력이 누릴 수 있는 영화는 기껏해야 수십 년일 텐데”라고 말했다.

1947년 삼일절 기념식은 당시 좌익(서울 남산)과 우익(서울운동장, 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따로 치렀다. 우익은 미군정청 자문기관인 ‘민주의원’의 주최로, 좌익은 ‘민주주의민족전선’ 주최로 남산에서 각각 기념행사를 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좌익과 우익 군중 사이에 유혈충돌이 일어난다. 이를 진압하러 나선 경찰의 발포로 결국 2명이 숨지고 많은 사람이 부상했다. 좌우익의 삼일절 기념식 분리 개최와 충돌은 서울뿐 아니라 제주와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이날 하루 모두 16명이 숨지고 22명이 크게 다쳤다.

특히 제주에서는 경찰과 미군이 좌익집회를 해산시키기 위해 발포, 부녀자 등 6명을 숨지게 했다. 이날 무력 진압은 3개월 뒤 발발한 제주 4.3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민족문제연구소의 동영상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일부 우익 네티즌들은 “박정희를 친일파로 몰라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를 낙마시키려는 음모”라면서 민족문제연구소를 공격하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 다음은 민족문제연구소의 동영상과 그 반대세력들의 글.

http://cafe.naver.com/rightofkorea.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6833&

2011년 중국 세계최대 박물관 개관

2011년 3월1일 중국이 강대국 이미지에 걸맞은 세계최대 규모의 국가박물관을 개관했다.

중국 정부는 베이징 천안문(톈안먼) 광장 동쪽에?있는 국가박물관을 4년간의 대규모 보수공사를 거쳐 다시 개관했다.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언론들은 면적이 20만㎡로 세계 최대라고 보도했다.

중국 국가박물관은 기존의 국립역사박물관과 중국혁명박물관을 통합해 2003년 개관했다. 하지만 건물이 낡고 어두침침해 전시 시설 등이 관람객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특히 소장품 50여만 점 중에서 3분의 1이 동전일 정도로 부실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당시까지 고급 유물들은 대부분 대만의 고궁박물관이나 산시(섬서), 허난 등 지방 박물관에 있었다.

결국 중국 정부는 2007년 3월 박물관을 폐쇄하고 대규모 예산을 들여 재건축에 나섰다. 공사에 들어간 25억 위안은 베이징 올림픽 주 경기장(냐오차오) 건설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거액이다. 특히 소장 유물이 100만 점 이상으로 대폭 늘었고 각 지역 최고의 유물들을 국가박물관으로 옮겨왔다. 2009년 문화부와 문물국은 각 지역 박물관들이 최고의 유물들을 국가박물관에 보내도록 명령하는 등 중국 중앙정부는 이를 적극 지원했다. 9개의 전시실은 공산당 정권하에서 중국의 ‘부흥’을 상징하는 전시에 할애하기도 했다. 입장료, 무료다.

2001년 탈레반 정권, 1500년 전 석불 파괴

2001년 3월1일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탈레반 정권의 민병대가 바미안의 고대 석불에 탱크와 로켓 포격을 퍼부어 석불 파괴를 시작했다. 고대 간다라 미술의 영향을 보여주는 바미안의 고대 석불은 약 15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53m와 37m짜리 2개로 이루어져 있다.

탈레반 정권의 최고 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는 2월28일 발표한 포고문에서 “불상파괴 결정은 ‘거짓 우상’ 숭배를 막아야 한다는 이슬람 성직자들의 요구에 부응한 것”이라며 “모든 석상을 파괴하겠다”고 선언했다. 탈레반의 불상파괴 선언이 나온 직후 국제사회는 인류문화유산의 보호 차원에서 석불의 보존을 요청했었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측은 유물의 국외 이전을 허용해달라고 호소했고, 유럽연합·러시아 등과 태국·스리랑카·네팔 등 불교국가, 이집트·인도·파키스탄 등도 유적 말살행위의 중단을 요청했다. 심지어 이슬람권 국가들도 탈레반의 야만적인 불상파괴행위를 비난했지만 바미안 석불은 그 윤곽만이 희미하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파괴됐다.

누군가가 자신들의 신을 ‘거짓 우상’이라고 부르며 그 성스런 시설들을 파괴한다면 어떨까. 공존의 가치, 인류 문명의 가치를 업신여기는 이 자들을 어찌할까.

1999년 오타와 협약 발효

1999년 3월1일 오타와 협약(Ottawa Treaty)이 발효됐다. 대인 지뢰 금지 협약(Mine Ban Treaty)이라고도 한다. 정식 명칭은 ‘대인 지뢰의 사용, 비축, 생산, 이전 금지 및 폐기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Prohibition of the Use, Stockpiling, Production and Transfer of Anti-Personnel Mines and on their Destruction)’이다.

오타와 협약은 1997년 9월18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초안이 작성돼 같은 해 12월3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체결됐다. 그 뒤 1999년 3월1일 40개국이 비준하면서 효력이 발생한 것이다. 2009년 5월 기준 133개국이 이 협약에 서명했고, 156개국이 비준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란, 이스라엘, 대한민국(남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등 39개국은 아직도 이 협약에 서명, 비준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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