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전후 일본의 상실과 길을 잃은 연인
[아시아엔=서의미 기자] 20세기 말 번영을 구가하고 있는 도쿄.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겐 그들의 부모들이 겪었던 전쟁의 아픔은 그리 와 닿지 않는다. 일본의 혼을 재건하려는 일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시와 도시 속 사람들은 방향을 잃은 채 방황한다.
이야기의 주인공 하지메와 시마모토는 전후 시대의 외동자녀다. 타인의 눈에 비친 둘은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 살아가는 이기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12살의 나이에 만난 이들은 서로의 감정을 교감하며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운명은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다.
성년이 된 하지메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시마모토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집에 남겨졌다. 자연스레 멀어진 이들을 맞이한 것은 타인과 거리를 둔 채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 살던 예전의 일상뿐이다. 이별 이후 시마모토가 떠났음을 견디지 못한 하지메는 방황을 거듭한다.
역사적인 비평을 문학 작품에 담아내는 것으로도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후 일본의 모순을 조망한다. 그의 눈에 비친 일본은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자신들의 침략 행위는 인정하지 않으려 들며, 그들의 눈에 비친 고통만을 바라본다. 역설적으로 이 책의 마지막 장엔 허무함과 하지메(또는 일본)의 고독한 마음을 녹여줄 희미한 온기를 향한 기다림만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