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2일] 나치에 저항한 독일 대학생들의 최후

2009년 각종 영화 상 휩쓴 <슬럼독 밀레니엄>

2009년 2월22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 dog Millionaire)>가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포함해 최다 8관왕에 오르며 최고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앞서 골든글로브와 영국아카데미상 BAFTA에서 각각 4개 부문 최다 수상, 7개 부문 최다 수상을 기록, 아카데미 선풍을 예고했다.

2009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색상, 음악상, 음향상, 주제가상, 촬영상, 편집상, 감독상을 받았다. 같은 해 영국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음악상과 음향상, 각색상, 편집상, 촬영상, 감독상, 작품상 등을 휩쓸었다. 2008~2009년 각종 영화제를 통틀어 무려 88개의 상을 수상, 명실상부 최고의 영화임을 입증했다.

유명배우 한 명 없이 오로지 뛰어난 작품성 하나로 보수적인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을 매료시켰다. 감독 대니 보일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시몬 뷰포이가 대본을, 인도 러브린 탄단(Loveleen Tandan)이 감독으로 함께 제작에 참여했다.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라는 인기 퀴즈쇼에 18세 고아 자말이 참가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무시했으나 최종 라운드에까지 올라선다. 부정행위를 의심한 경찰은 그를 사기죄로 체포한다. 그 가운데 자말은 자신이 어떻게 최종 라운드에까지 올라설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히면서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된다.

2006년 필리핀 군사쿠테타 음모 적발

2006년 2월22일 당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군사쿠데타 음모가 적발됐다. 필리핀 군 당국은 이날 아로요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쿠데타 음모를 적발, 14명의 장교를 연행·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가족들의 부정부패 및 부정선거 의혹으로 퇴진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아로요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더 큰 상처를 입게 됐다.

쿠데타 음모에 연루된 14명의 장교들은 루손 섬과 민다나오 섬 주둔 부대 대위와 중위 등으로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킬 능력이 없는 하급 장교들. 필리핀 군 당국의 발표가 위기국면 전환용이라는 분석이 그래서 나왔다.

사흘 뒤에는 1986년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전 대통령을 축출한 ‘필리핀의 시민혁명(People Power)’ 20주년 기념일이었다. 이날에 즈음해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질 않았다. 야당 정치인 등 1만여 명은 마닐라에서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고 아로요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퇴를 촉구했다. 시위에는 피플 파워의 상징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은 이틀 뒤인 24일 “정부 전복을 기도한 군사쿠데타 음모가 적발돼 국가적 위기 우려가 높다”면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2006년 한국의 정진석 대주교 새 추기경에 서임

2006년 2월2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대주교(당시 74세)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가 서임한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한국의 두 번째 추기경이 됐다.

1931년 서울에서 출생한 정진석 추기경은 1961년 사제서품 후 중림동 성당, 성신고등학교 교사부교장, 서울대교구 교구장 비서·상서국장을 역임했다. 이후 로마 우르바노대학교 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귀국 후 1970년 주교서품을 받고 청주교구장을 맡았다.

1795년부터 1999년까지 주교회의 상임위원을 역임했으며 1983년부터 현재까지 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위원장,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주교회의 의장직을 맡았다. 1998년 5월 제 13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평양교구 교구장 서리를 겸임하고 있다.

저서로 <교회법 해설> <목동의 노래> <우주를 알면 하느님이 보인다> <구세주 예수의 선구자 세례자 요한> <민족 해방의 영도자 모세> 등이 있다.

추기경은 교회의 교계제도에서 교황 다음 가는 성직자 지위를 말한다. 새 추기경은 서임되는 즉시 추기경단 특별법에 따라 교황 선거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가진다.

추기경을 뜻하는 영어 카르디날(Cardinal)은 라틴어 까르디날리스(Cardinalis)에서 왔는데, 이 명칭은 ‘주춧돌, 문의 돌쩌귀’라는 뜻의 까르도(Cardo)에서 나온 것이다. 돌쩌귀가 없으면 문을 여닫을 수 없듯이 추기경은 교회의 최고 목자인 교황의 주요 협력자이며 중요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추기경들은 추기경단(Collegium cardinalium)을 구성하여 합의체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교황을 보필한다. 추기경단의 합의체적인 보필은 전통적인 추기경회의(Consistorium)를 통해, 개별적인 보필은 교황청이나 바티칸 시국의 다양한 기구의 직무를 통하거나 개별 교회의 목자로서 수행한다.

모든 추기경들은 바티칸에 상주하든 하지 않던 간에 추기경들도 모두 바티칸시국의 시민권을 가지며, 교황과 마찬가지로 세계 어디서나 교구장의 허가 없이도 고백성사를 줄 수 있다. 추기경의 선발은 교황의 자유롭고 고유한 권한에 속한다.

 

1943년 反나치 저항운동가 숄(Scholl) 남매 처형

▲ 나치에 저항한 학생저항단체 <백장미>그룹의 핵심단원이었던 한스 숄(왼쪽)과 그의 누이동생 소피 숄(중앙), 크리스토프 프롭스트(오른쪽)가 1942년 7월 뮌헨에서 토론하고 있다.

1943년 2월22일 나치 독일 시대 뮌헨대학 학생이었던 조피 숄(Scholl, Sophie, 1921~1943)은 오빠 한스 숄(Scholl, Hans, 1918~1943)이 동료들과 함께 처형당했다. 나치 정권은 2월18일 비밀경찰 게슈타포가 이들을 체포된 지 꼭 나흘만에 재판에서 교수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 꽃다운 청춘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나이 조피는 21살, 한스는 24살이었다.

1943년 2월18일 화창한 목요일 아침, 백장미 회원들이 대학의 모든 강의실과 복도에 유인물을 살포하기 시작했다. 한스 숄과 소피 숄은 대담하게 강의실 지붕에 올라가 유인물을 살포했다. 그들은 이미 몇 차례에 걸쳐 거리와 대학에서 반나치 유인물과 히틀러를 모욕하는 전단을 유포시킨 바 있다.

나치의 지방당원인 학교 급사가 유인물을 발견, 건물의 모든 출입구를 닫아걸고 게슈타포에게 신고했다. 불과 몇 분 뒤 게슈타포가 도착, 그들을 체포했다. 대학에서 16km가량 떨어진 비텔스바흐 궁내의 게슈타포 본부로 질질 끌려간 그들은 고문과 함게 조사를 받았다.

한스의 방 수색에서 세 아이의 아버지인 크리스토프 프롭스트(Christoph Probst)가 보내온 편지를 발견됐고, 그마저 체포됐다. 그들이 처형된 2월22일은 재판에 회부된 당일이었다. 재판 당일 사형이 집행되는, 현실의 ‘지옥’ ‘악마의 제국’이었다.

죄목은 ‘반역죄, 전복 음모및 군수산업 파괴를 선동한 예비 대역죄’였다. 법정에서 소피 숄은 “우리는 누구든 결국 시작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단두대에 목을 올려 놓기 전 한스 숄은 감옥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외쳤다. “자유여, 영원하라.”

숄 남매 이외에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빌리 그라프, 알렉산더 슈모렐 등 독일 젊은이들이 반(反)나치 운동에 몸을 바쳤다.

이 이야기는 실화다. 남매의 누나(언니)는 <백장미(Die Weiβe Rose)>라는 책을 써서 이 끔찍한 사건을 세상에 알렸다. 이 책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소개됐고, 1980년대 반독재민주화투쟁에 나선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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