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등소평의 유언과 한국 대통령의 ‘국가장’
[아시아엔=이형균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경향신문 전 편집국장] 세계 제2차대전에서 나치독일의 점령 하에 있던 프랑스를 구한 프랑스의 영웅 샤를르 드골 대통령은 1970년 11월 9일 고향인 콜롱베(Colombey-정확한 이름은 ‘콜롱베-레-되-제글리제·Colombey-les-Deux-Eglises’, ‘2개의 교회가 있는 콜롱베’의 뜻)의 사저에서 회고록을 집필하던 중에 80세로 서거했다.
프랑스의 총리와 제5공화정의 대통령을 지낸 그의 장례식은 그의 유언에 따라 조촐하게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그는 생전에 작성한 유언에서 “가족장으로 할 것과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참배하지 못하게 할 것, 다만 2차 대전의 전쟁터를 누비며 프랑스 해방을 위해 싸웠던 전우들의 참배는 허용할 것” 등을 당부했다. 또한 “장지는 사랑하는 딸 장애인인 안느가? 잠들어 있는 고향마을 콜롱베의 공동묘지로 해달라, 비석에는 이름과 출생. 사망년도만 새기라”고 했다.
프랑스 정부는 드골의 가족장이 진행되는 같은 시간에 파리의 노트르담성당에서 영결식을 가졌는데, 닉슨 미국대통령 등 외국의 국가원수 몇명만 참석(한국에서는 김종필 총리가 참석)한 대신에 퐁피두 대통령과 장관들은 영결식장에 가지 않고 각자 자기 사무실에서 묵념을 올렸다.
특히 콜롱베의 공동묘지에 있는 묘비명에는 ‘Charles de Gaulle 1890-1970’이라고만 새겨졌다.
드골은 또한 대통령 퇴임 후 정부가 지급하는 연금을 받지 않고 불쌍한 국민들을 위해 쓰도록 했다. 그의 사후에 미망인과 가족에게 주는 연금도 무의탁 노인들과 고아들을 위해 사용토록 했다. 이로 인해 그의 가족들은 드골 대통령이 태어나고 은퇴 후 살았던 생가를 관리할 여력이 없어서 팔기로 했는데 한 재벌이 구입해서 정부에 헌납했다. 이를 지방정부가 문화재로 지정한 후 드골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의 부인 이본느 여사가 타계하자 드골 묘 옆에 안장했는데 이때 프랑스 정부가 드골의 묘비에 ‘프랑스 대통령’이라고 추가로 새겨 넣었다.
중국을 오늘의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크게 기여한 덩샤오핑(鄧小平) 유언이 13억 중국인의 가슴에 큰 감동을 주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헤이마오 바이마오’(黑猫白猫)論을 내세워 과감한 개혁 개방 정책을 통해 슈퍼 파워 중국으로 일으켜 세운 그는 만년에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다가 홍콩반환을 앞두고 1997년 2월 19일 93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에 따라 안구 각막은 시각장애인에게 이식되어 광명을 되찾게 했고 시신은 의학도들의 실습용으로 제공되었다. 그리고 유해는 화장되어 가족에 의해 홍콩 앞바다와 중국 각지에 뿌려졌다. 생전에 그는 “관례처럼 행해지는 장례식이나 영결식을 하지 말고 어디에든 분향소를 차리지 말 것, 각막은 기증할 것, 시신은 의학계의 발전을 위해 실습용으로 제공할 것, 남은 시신은 화장하여 홍콩이 바라다 보이는 바다에 뿌릴 것” 등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는 베이징대학에 다니던 장남 덩푸방(鄧樸方)이 문화혁명 중에 홍위병에게 쫓기다가 건물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하반신 마비로 장애인이 되자 아들을 극진히 간호했고 이를 계기로 중국장애인협회가 설립되어 덩푸팡이 협회회장으로 사회봉사에 열정을 바쳤다.
위의 세계적인 두 지도자가 보여준 검소한 모습과 우리나라 일부 지도자들의 행태를 비교해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억제할 수가 없다.
물론 장군묘역을 사양하고 한 평짜리 사병묘 옆에 묻힌 채명신 장군도 있기는 하지만 어떤 대통령은 국민장 대신에 국장을 고집하여 관철시켰다. 또 최근에 돌아가신 대통령도 동작동 현충원 맨땅에 급조된 묘지에 묻혔다. 오죽 했으면 국장이냐, 국민장이냐의 시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정부가 아예 이를 한데 묶어 국가장으로 만들었을까.
또 다른 대통령은 유언에서 “내가 죽거든 화장을 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고 천명했지만 사후에 고향 마을 전체가 성역화 되다시피 했다. 화장되어 묻혔지만 묘역은 1천평의 거대한 규모로 확장된 후 국가보존 묘역으로 운영되고 있다.
동작동 현충원이 포화상태가 되자 그 후에 돌아가실 국가원수를 위해 조성된 대전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에는 최규하 대통령만이 홀로 잠들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언론이 무슨 풍수지리학자의 입을 빌려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의 묘소가 각각 봉황의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를 상징하며 두 묘소의 봉황이 날개 안에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라는 등의 흥미본위의 기사를 보도하여 일반 국민들에게도 명당을 물색해야 한다는 암시를 주기까지 했다.
어디 그뿐인가?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는 법에 의해 국가 경호를 받고 있는데 어느 대통령 미망인은 대통령 경호실 경호가 시한이 되자 “10년 동안 같이 지내온 대통령 경호실 경호원들과 헤어지는 것이 어려워 계속 이들이 경호해 주면 좋겠다”고 하여 2013년 국회에서 5년 더 연장 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5년이 지나면 경찰관이 경호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번에 또 평생토록 대통령경호실에서 경호하는 이른바 ‘OOO경호법’이라는 희한한 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작고하면 대개 고향땅에 묻힌다.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만 워싱턴 포토맥 강 건너편에 있는 버지니아주의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혔을 뿐이다.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으로 숭앙을 받는 링컨도 변호사 생활을 했던 일리노이주의 수도 스프링필드에 묻혀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대통령 모두 화장을 하거나 고향 땅에서 영면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다. 윤보선 대통령은 고향인 충남 아산 유택에 잠들어 있고 노무현 대통령도 고향인 봉하마을에 있다. 다만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서도 작고 후에 국장이나 국가장을 사양하고, 화장 후 생전에 자기 업적과 관련이 있는 지역에 뼛가루를 뿌리도록 하는 대통령이 한 둘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일 뿐이다. 정부가 국민에게 국토관리라는 면에서 매장보다도 화장을 권장하고 있고 2015년 5월 현재 화장률이 78%를 넘어서고 있는 마당에 지도층 인사가 여기에 앞장서는 것이 뜻이 있는 게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