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6일] 이스라엘 극우파 샤론 총리 당선

2011년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 스페인서 사망

2011년 2월6일(현지 시각) 전설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가 사망했다. 향년 58세. 게리 무어는 스페인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는 스페인에서 젊은 애인과 휴가 중이었으며, 사인으로 과음과 폐쇄성 수면 무호흡으로 알려졌었다.

무어는 1952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으로 1970년 더블린에서 결성된 록 밴드 스키드 로(Skid Row)의 기타리스트로 데뷔, 1973년 씬 리지에 합류했다. 대표곡으로는 ‘Empty Room’, ‘Still Got The Blues’, ‘Always Gonna Love You’ 등이 있다.

특히 무어는 지난해 4월 첫 한국 공연에서 “천안함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분들과 가족들에게 이 곡을 바친다”면서 ‘Still Got The Blues’를 연주하기도 했다. 그의 당시 방한은 비행기를 오래 타면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는 특이질환을 무릅쓰고 강행한 것으로 알려져 특별히 한국 팬들에게 감동을 줬었다. 그의 육신은 지구촌 팬들의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과 영혼은 항상 함게 할 것이다. 팬들이 ‘항상 당신(게리 무어)을 사랑할 거니까(Always Gonna Love You)’.

?2001년 샤론, 이스라엘 총리에 당선

2001년 2월6일 실시된 이스라엘 총리 선거에서 강경파인 아리엘 샤론 리쿠르당 당수가 노동당의 에후드 바라크 총리에게 압승을 거두고 새 총리에 선출됐다. 별명이 ‘불도저’인 극우 강경파가 이스라엘을 집권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평소 “전쟁을 불사하는 채찍 전략만이 평화를 담보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소신을 밝혀왔다. 당연히 기존 이스라엘의 대(對)팔레스타인 평화협상을 강력 비난했다.

그는 군인 출신이었다. 14살에 군에 입대해 1973년 소장으로 전역할 때까지 수많은 전투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정계진출 후에도 6개 부처 장관을 거치는 관운을 자랑했다. 1999년 베냐민 네타냐후가 총리선거에서 패배한 후 리쿠르당 당수가 됐다.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은 것은 1977년. 당시 농무장관이었던 그는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위해 팔레스타인 거주 지역을 밀어내 버렸고, 그 별명을 얻었다. 1982년 국방장관 시절에도 레바논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요원 소탕을 위한 침공 명령을 강행, 수백 명의 시민을 숨지게 했다. 이밖에 2000년 9월에는 동예루살렘내 알 아크샤 사원을 방문, 유혈사태를 촉발시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는 인물 중 하나인 그는 나중에 영국령 팔레스타인이 된 파르 말알(Kfar Malal) ?출신이었다.

2006년 1월4일 심장마비로 쓰러진 이래 2012년 2월6일 현재까지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고 있다.

1979년 파키스탄 최고재판소, 부토 전 수상의 사형판결 확정

1979년 2월6일 부토 전 파키스탄 수상에게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졌다. 파키스탄 대법원은 수상 재직 당시 정적을 살해한 부토에게 1, 2심과 똑 같은 ‘사형’을 확정판결 했다. 하급심 판결에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시한 것이다.

대법원 확정 판결 당시 미국의 카터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부토의 사면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토는 두 달 뒤인 1979년 4월4일 비밀리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1973년 8월 총리에 취임한 부토는 1977년 3월 다시 총리로 선출됐지만 같은 해 7월 군부 쿠데타와 함께 구속됐다. 부토는 군정에 종지부를 찍고 내정을 충실히 다져 국민의 신뢰를 얻은 인물이었다.

 

1967년 미군, 베트남에 고엽제 살포 개시

1967년 2월일 미국 공군기가 남북베트남 경계지점 비무장지대 삼림지역에 대량의 고엽제(枯葉劑)를 살포했다. ‘오렌지작전’ 또는 ‘고엽작전’이라 불리는 이 작전은 비행기와 헬리콥터에서 대량의 화학약품을 투하, 남베트남 정글을 벌거숭이로 만들어 이들 삼림지대를 거점으로 하는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부대 발견을 쉽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2년부터 시작된 ‘고엽작전’은 주로 베트남 해방전선의 식량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논밭을 말라 죽게 할 목적으로 자행됐다. 그러나 이날 미군은 산림과 초목지대 전체가 완전히 고사될 엄청난 양의 고엽제를 살포했다.

1969년 동물실험결과 이 고엽제에서 다이옥신이 기형과 암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미국을 비난하는 세계의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미국은 같은 해 고엽제 사용을 중지했지만, 이미 ‘고엽작전’의 성과(?)로 베트남 산림의 20%가 파괴된 상태였다.

기형아와 장애아 출산도 크게 늘었다. ‘고엽작전’에 참가했던 미군 병사들과 한국군 병사들의 후유증은 수십 년이 지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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