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 로마 교황청립 한인신학원장 “서울 개최 추진 2019 세계청년대회, 한반도 통일·세계 평화 큰 몫 할 것”

[아시아엔=인터뷰 이상기 기자, 정리 김아람 인턴기자] 김종수(61) 신부는 현재 로마 교황청립 한인신학원장을 맡고 있다. 1982년 사제 서품을 받고 로마에 유학한 뒤 서울교구 주임신부를 거쳐 가톨릭대 신학대교수로 재직했다. 통일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그는 특유의 개성과 소신 있는 행동으로 ‘종수스럽다’ ‘종수답다’는 등의 형용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김종수 신부는 현재 로마에서 한국의 주교회의를 대신해 교황청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세계청년대회 유치 등 많은 계획을 준비중인 그가 잠시 귀국했다. <매거진 N>은 지난 8월10일 김종수 신부가 종종 찾는 ‘혜화칼국수’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다.

2019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한국에 유치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들었다.
“서울대교구에서 ‘2019 세계청년대회’를 유치하기 위해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현재 교황청에 서울 개최 제안서를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아직 보완할 점이 많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다. 100만명 가량의 세계 청년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다. 분단국인 한국에 세계 청년 백만명이 모여 평화와 통일을 얘기한다면 이 얼마나 벅찬 일인가?”

다소 낯선 대회인데, 어떤 행사인가?
“전세계 가톨릭청년들의 신앙축제다. 하지만 특정 종교에 국한되는 행사는 아니다. 인종, 민족, 언어, 종교를 떠나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국제행사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1984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첫 행사를 개최한 이후 2~3년마다 열리고 있다. 대륙별로 돌아가면서 행사가 개최되는데, 아시아의 경우 20년 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게 처음이다. 우리가 유치한다면 아시아 두번째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서울유치 가능성이 높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2019년 개최지 선정 결과는 내년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 폐막식에서 발표된다.”

세계청년대회를 한국에 유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이 대회는 인류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행사다.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진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여 평화를 이야기하는 장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 자체가큰 의미가 있다. 가톨릭 교회는 물론 불교 이슬람 등 이웃종교가 서로 협력한다는 긍정적인 국가 이미지도 세계인들에게 전해줄 수도 있을 거다.”

김 신부께선 지난 20여년 통일운동 현장을 지켜왔다. 남북한 관련 일을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종수스럽다’ ‘종수답다’는 말이 회자된다고 들었다.
“2006년 로마 한국신학원 원장 취임을 위해 이탈리아로 출국하기 전까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활동을 제법 했다. 북한을 자주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소신 있게 행동한 걸 두고 그런 말이 생긴 듯하다. 북한과 협상할 때 무리한 요구는 단호히 거절했다. 할 말은 하면서 북측 입장을 존중했고, 우리 국민정서와 정부의 입지도 두루 챙겼다. 그런 판단과 행동이 결국 좋은 결과를 냈다고 나름 자부한다.”

김대중 정부 시절 6·15 남북정상회담을 전후로 민간차원의 남북교류가 제법 활달했는데, 그때 얘기 좀 해달라.
“2000년이었다. 당시 나는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았었다. 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 평양을 10여번 방문했다. 금강산이나 개성까지 합치면 매달 한두 차례 북한에 갔다. 하지만 지금 남북관계가 점점 경색되어 통일이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이 있었다. 터키와 월드컵 3-4위전이 있던 날이다. 당시 북한을 방문해 북측의 사과문을 받는 데 큰 기여를 한 걸로 아는데.
“민간 차원의 방문이었다. 8·15 남북공동행사 실무회담 남측 대표단장으로 방북했다. 사건이 터진 뒤라 국내 분위기가 안 좋았다. 정부측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북측은 어떻게 해서든지 남북대화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평양의 순안공항에서 대기하고 앉아 있는데 북측 관계자가 와서 이러더라. ‘어휴, 신부님 다시는 못 보는 줄 알았습니다.’ 그 순간 북한이 대화를 원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때 침이 마르도록 우리 입장을 열심히 전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아쉽게도 바로 대답은 듣지 못하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그 이튿날 오후 북한이 제2차연평해전에 유감을 표명하고 남북장관급회담을 열자고 제의하는 전통문을 보내왔다.”

남북문제 개선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먼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고 경청해줘야 한다.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 마음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면서 ‘아! 이제 네 속을 알았다’ 하면 관계진전이 안된다. 북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지금 북측이 여러 가지를 요청하고 있는데, 정부나 민간단체가 모르쇠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상대방 요구를 알고 들어줄 때 한발짝 관계가 진전되는 것이다. 물론, 무조건 들어주는 것은 절대 안 된다.”

한국이 세계 여러 나라 특히 빈곤한 나라들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평소 말씀을 자주 하시더라.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세계와 연대하는 게 필요하다. 지구촌 문제가 바로 나의, 우리의 문제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유럽은 이런 걸 참 잘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예전에 세계의 교육문제 관련 회의가 있었는데 그때 주제가 ‘내전으로 교육의 기회를 잃어버린 아이들’이었다. 내전이 발발하면 그 나라 어린이들이 학교 갈 나이에 교육을 받지 못한다. 내전이 끝나고 사회가 안정되더라도 그 후유증으로 빈곤에 시달리며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이 굉장히 심도 있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보고 참 많은 걸 느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로마 한국신학원에서 아프리카에서 온 신부들 교육도 담당하고 계시다. 아프리카, 중남미, 아시아 출신 가톨릭 사제도 있는지?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가톨릭 사제가 감소하는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특히 최근 들어 아프리카에서는 가톨릭 비중이 커지고 있다. 물론 아프리카에 가톨릭 문화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프리카는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유럽국가의 식민통치를 받으면서 기독교 신앙도 함께 받아들였다. 아프리카의 토착문화 못지 않게 그들의 사고나 행동방식의 바탕에는 가톨릭 신앙이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식민지 시절, 교황청이 한국 교회를 일본에 편입시키지 않았다고 들었다.
“일제 때 ‘한국 교회도 일본에 편입되는 것일까?’ 하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교황청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조직(교구)을 일본 교회에 편입시키지 않았다.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던 시절에도 교황청은 우리나라를 독립국가로 인정했던 것이다. 외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실인데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내년 1월이면 5년씩 두차례 임기가 끝난다.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열심히 준비해서 세계청년대회를 서울에 유치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다음으로는 세계 각국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게 목표다. 외국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 나라라고만 여기지, 남북문제 같은 내부 사정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하나된 마음에는 힘이 있다고들 말한다. 많은 이들이 한 뜻을 모은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본다. 통일문제 역시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희망에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인터뷰 말미, 김종수 신부는 중세 이탈리아 이야기를 들려줬다. “당시 봉건귀족들은 자신들 소유의 영토에 성을 쌓고 도시를 건설해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가난한 평민들은 그곳에서 귀족들 보호를 받고 농사를 짓거나 사냥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러면서 귀족을 영주로 섬기기 시작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자연스럽게 실현된 셈이다. ‘너는 부자니까 돈을 좀더 내라’가 아니라, 가진 이가 먼저 베푸니 대접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정말 안타깝다. 상생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약한 사람을 얕잡아보는 일이 다반사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며 김 신부의 말이 기자의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 “마음에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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