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대표 음악페스티벌’ 펜타포트가 존속해야 하는 이유
2015 인천 펜타포트(Pentaport) 락페스티벌(이하 펜타포트) 이튿날인 8월8일 토요일 오후. 갑작스레 비가내리기 시작했다. 축제 분위기를 망치는 것 아닌가 했지만, 기우였다. 이윽고 비가 그쳤고, 드넓은 하늘이 펼쳐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삼삼오오 관객들이 몰려들며 분위기가 고조됐고, 축제의 화려한 막이 열렸다.
오후 3시, 메인 무대인 펜타스테이지. ‘윈디시티’(Windy City)의 경쾌한 리듬 위에 ‘사랑과 평화’ 리드보컬 이철호가 가세해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연출한다. 관객들도 이에 화답하듯 흥겹게 몸을 흔든다. 다른 이의 시선 신경 쓸 필요 없다. 1년에 딱 하루인 그날인데!
윈디시티의 무대가 막을 내린 후, 관객들은 또다른 공연을 찾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물론 공연이 다가 아니다. 관객 중 일부는 텐트, 혹은 돗자리 위에서 바닷바람을 느끼며 맥주 한잔의 여유를 갖는다.
밤이 다가온다. 이 날의 메인 뮤지션 중 하나인 영국 밴드 ‘쿡스’(Kooks)의 무대가 펼쳐진다. 어느덧 중견밴드가 된 이들은 초창기 히트곡부터 2014년 발매한 ‘리슨’(Listen)의 히트곡까지 열창하며 관객과 호흡한다. 리드보컬 루크 프리처드(Luke Pritchard)는 처음 마주한 한국 관객의 호응이 놀라운지 연신 감사인사를 표한다.
잠시 쉴 틈도 없이 다른 뮤지션들의 무대는 계속 된다. 그리고 시선은 한 곳으로 집중된다. 이 날의 헤드라이너 서태지의 무대가 아직 남아있다. 기다림 끝에 그가 무대에 오른 순간, 펜타포트는 폭발했다.
2015 펜타포트가 열린 8월7일(금)부터 9일(일)까지 3일간 모인 관객은 약 10만명. 이튿날 토요일엔 펜타포트 사상 최대인 4만5천여명이 관람했다고 하니, 얼마나 화제가 됐는지 쉬이 짐작하고 남는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펜타포트는 그만큼 사연도 많았다. 첫날엔 한국 대중음악을 대표한 고 신해철을 추모하는 무대가 열렸다. 둘째날 헤드라이너를 장식한 서태지는 타 음악페스티벌의 무대에 최초로 오른다는 점 때문에 그가 원하는 사운드를 완벽히 구현하지 못할 것이란 일부 우려가 있었으나, 이를 말끔히 불식시켰다. 피날레를 화려하게 장식한 프로디지는 펜타포트의 모태가 된 트라이포트에서 무대에 오를 예정이었으나, 폭우로 취소된 기억이 있다. 근 16년만에 다시 밟은 한국 땅에서 관객을 열광시킨 셈이다.
한국 음악페스티벌은 2013년 여름에만 5개의 축제가 국내외 아티스트를 초청하며 절정을 맞이했으나, 올 여름 이 같은 대규모 축제는 단 두 곳에서만 열렸다. 한국 음악페스티벌이 부침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펜타포트가 생존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프라 측면에서 본다면, 접근이 용이한 서울 또는 서울 근교에서 많은 음악페스티벌이 열리며 펜타포트의 지리적 약점이 부각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펜타포트는 이런 약점을 상쇄하고 남을 만큼의 장점들을 지니고 있다.
폭우가 쏟아진 이튿날, 공연장 주변의 잔디밭이 진흙투성이로 변했을까 염려됐으나 공연을 보는데 별다른 지장을 주진 않았다. 오히려 공연장 주변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은 지친 관객들에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줬다. 최근 불거진 공연장 안전사고 같은 불상사도 없었다. 주최측도 관객들을 지나치게 제지하지 않았고, 관객들도 나름의 질서를 지키며 공연을 즐겼다.
관객 입장에선 먹거리도 매우 중요한데, 펜타포트에서는 한식, 양식, 중식까지 웬만한 종류의 음식을 판매했다. 적어도 뭘 먹을까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는 소리다. 심지어 이번 축제 기간엔 TV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인기 쉐프가 직접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물론 오랜 세월 펜타포트를 빛내준 관객과 아티스트들이 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최근 <타임아웃> 매거진은 전세계 음악페스티벌 Top 50을 발표했고, 펜타포트는 당당히 8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음악페스티벌 중에선 가장 높은 순위다. 이 순위가 절대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주목할만한 성취다.
페스티벌에서 만난 음악, 당신을 새로운 길로 인도한다
아직 장르음악의 기반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한국에서 특정 음악을 기반으로 한 음악페스티벌이 자리잡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펜타포트는 자리를 지켜왔고, 이 무대를 통해 관객과 만난 아티스트만 수백팀에 이른다. 그리고 음악페스티벌에서 만난 음악은 당신을 새로운 길로 인도한다.
페스티벌 무대에서 당신을 매혹시킨 뮤지션에 관심을 갖고, 정당한 가치를 지불해 그의 음원을 구매하는 것처럼 바람직한 선순환 구조가 또 있을까. 출연진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관람하더라도, 극중 배우에 빠져 그의 영화를 찾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동안 펜타포트는 음악팬과 뮤지션의 가교 역할을 하며 한국 공연문화와 장르음악의 저변을 확대시켜왔다. 펜타포트가 앞으로도 우리 곁을 지켜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