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여행에서 놓쳐선 안 될 것은?···’페니키아 공주 엘리사’의 전설

카르타고를 건국한 엘리사 공주의 후손이 엘리사 공주를 기리고 있다.
카르타고를 건국한 엘리사 공주의 후손이 엘리사 공주를 기리고 있다. <사진=아시라프 달리>

[아시아엔=아시라프 달리 아시아엔 중동지부장] 아프리카에서 문명을 건설한 것으로 전해지는 한 공주의 전설이 있다. 지중해 연안 동쪽에 위치한 도시 티레(Tyre, 지금의 레바논)의 페니키아인 공주 엘리사(디도)가 그 주인공이다.

엘리사의 인생은 험난 그 자체였다. 왕위를 계승한 그녀의 오빠 피그말리온은 폭정을 일삼았다. 심지어 재산에 눈이 멀어 당시 엘리사의 남편이었던 아케르바스를 살해했고, 위기를 느낀 그녀는 오빠로부터 도망쳤다. 엘리사는 페니키아인답게 모험을 즐겼고, 침묵과 비밀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엘리사는 가능한 한 멀리 떠나 안전한 곳에 정착하기 위해 서쪽으로 이동했지만, 거기에는 이미 다른 도시가 있었다. 북아프리카 연안에 정착한 상인들과 초기 페니키아인 선원들이 세운 도시 우티카(Utica, 튀니지 북동부 고대도시)였다.

할 수 없이 엘리사는 우티카에서 30km 떨어진 곳에 도시를 세웠다. ‘카르타고(Carthage)’의 탄생이었다. 카르타고가 정착하고 번영하기 시작하자, 베르베르족의 왕 이아르바스가 카르타고를 탐내기 시작하고 엘리사에게 결혼을 강요했다. 엘리사는 원치 않는 결혼으로 죽은 남편과의 정절을 저버릴 수 없었거니와, 카르타고를 지키는 일 또한 중요했다. 결국 엘리사는 모두를 보호하는 길을 택했다. 그는 단검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엘리사의 발자취를 따라간 필자는 비제르테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재 튀니지 북쪽에 위치한 비제르테의 사람들은 역사적 아픔을 지니고 있다. 1961년 7월, 그들은 비제르테 기지를 두고 프랑스와 무력 충돌했다. 이른바 ‘비제르테 사태’ 당시 프랑스 군대가 비제르테 기지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튀니지 군대와 전투가 벌어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벌써 반세기가 지났지만, 이 곳의 사람들은 그 날의 아픔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비제르테에서의 기행을 마치고 튀니스로 돌아오는 길엔 석양이 지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엔 보름달이 밝게 떴고, 코 끝에 전해지는 바다 내음에 지난날 역사의 한 축을 창조했던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엘리사. 그녀는 척박한 땅에 씨앗을 심고 평화를 일궈냈다. 그녀는 거친 파도를 잔잔히 가라앉히고, 어두운 항구를 밝게 비추는 등대 같은 존재로 우리 기억에 남을 것이다.

 

비제르테 추모비
비제르테 추모비 <사진=아시라프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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