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0일]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 선출(1972년)

2003년 사형수 감형시킨 일리노이주지사

2003년 1월 일리노이주지사 조지 리안(George Ryan)은 사형수 4명을 사면하고 나머지 사형수 167명 전체를 ‘무기징역’으로 감형시켰다. 리안 주지사는 당초 사형제를 찬성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그의 태도를 바꾼 것은 오판으로 사형을 당한 사람들의 통계를 접하고 나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는 1977년 일리노이주에서 사형집행이 재개된 이래 오판으로 사형 집행된 사람이 13명이나 된다는 발표를 들은 리안 주지사는 충격에 휩싸였다. 전체 사형수 25명 중 13명, 절반이 넘는 52%가 오판이었으니 그의 충격을 짐작할 만하다.

엠네스티 등에 따르면, 1973년 이후 미국에서는 107명의 사형수가 수감 중 새로운 증거가 발견돼 석방됐다. 이 가운데 일부는 사형 선고 후 몇 년이 지나 처형이 임박해서 풀려나기도 했다. 검찰이나 경찰의 잘못, 신빙성 없는 증인의 진술이나 물리적 증거 혹은 자백의 채택, 부적절한 변호 등이 주요 요인이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미국에서 유죄사실과 관련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됐지만 사형이 집행된 사람들이 많다.

1996년 요르단 국왕 이스라엘 방문

1996년 1월10일 요르단 국왕 후세인은 텔 아비브를 방문한다. 당시 이스라엘 수상인 시몬 페레즈(현 이스라엘 대통령)가 그를 데 도브 공군기지에 마중 나가 정중히 후세인 국왕을 영접한다. 후세인 국왕은 “양국간 우의를 통해 이 지역에서의 포괄적인 평화를 위한 기초를 다질 기회가 마련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시몬 페레스 총리는 지난 1996년 당시 라빈-페레즈 평화 프로그램에 맞섰던 빈야민 네탄야후에게 선거에서 졌다. 1994년 맺었던 이스라엘과 요르단 평화조약은 도처에서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지속됐다.

2002년 9월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양국에 걸쳐있는 홍해로부터 사해에 이르는 물 수송용 파이프 설치계획에 합의한다. 8억 달러(USD)에 이르는 돈이 들어가는 양국 최대 협력 프로젝트였다. 그로부터 18개월 뒤인 2004년 3월 양국은 국경지대에 사막과학센터 설립 프로젝트에도 합의한다.

1994년 양국의 평화조약에 대해 요르단의 기쁨과 신뢰를 위해 상징적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후세인 국왕은 그러나 이런 거대한 혁력프로젝트들을 보지 못하고 199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1991년 일본, 재일 한국인에 대한 지문날인제도 폐지

1991년 1월10일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 정부는 재일 한국인의 권리를 침해해온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1955년부터 실시된 지문날인제도는 재일동포를 포함한 외국인에 한해 정기적으로 지문날인을 강요, 외국인의 인권을 부당하게 억압하려는 제도였다. 재일 한국인들은 남과 북의 정치, 군사적 대립 속에서 어느 쪽에서도 보호받지 못했는데 일본 사회 내에서도 냉대와 멸시를 받아왔다.

지문날인제도는 재일 한국인과 외국인에 대한 일본의 배타적 인식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실행 초기부터 조직적인 거부운동에 직면했다. 재일 한국인은 투쟁과 연대를 통해 마침내 1991년 일본 정부는 재일 한국인의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하게 됐다.

1972년 방글라데시 초대 대통령 선출

1972년 1월10일 방글라데시 건국 지도자인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Sheikh Mujibur Rahman)이 초대 대통령에 선출됐다.

나중에 2대 총리로도 잠시 재직했던 그는 학생 정치 지도자로서 성장, 강력한 카리스마와 연사로 동파키스탄의 정치와 아와미 연맹에서의 영향력을 키우며 사회주의를 옹호해 민족과 제도적 차별을 주장하며 큰 지지를 얻었다. 강력한 지방 자치와 서파키스탄의 아유브 칸 대통령의 강압 정치가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1970년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2012년 현재 그의 장녀 셰이크 하시나(Sheikh Hasina)가 그의 정당인 방글라데시 아와미 연맹을 이끌며 총리로 재직 중이다.

그는 1970년 선거 후에도 자신의 정부가 형성되지 않자 1971년 3월 26일 서파키스탄의 대통령 아히야 칸과 총리 줄피카르 알리 부토에게 독립 선언을 발표한다. 이에 서파키스탄 Informative stuff정부는 그를 체포해 군사법원에 세운다. 그러나 그로부터 9개월 뒤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에서 승리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5년 8월15일에 일어난 쿠데타로 자신의 일가족과 당시 밑에서 재직했던 총리 등 측근들과 함께 암살당했다. 이날 훈다카 무스타파 아메드를 포함한 아와미 연맹의 동료와 육군 장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탱크를 이끌고 대통령궁을 침입, 라흐만 대통령과 그의 일가족, 조카 셰이크파즈룰 웨이크 마니 등을 암살했다. 지금의 총리인 라흐만의 딸 셰이크 하시나와 셰이크 레하나는 서독으로 탈출, 망명했다.

라흐만의 죽음으로 방글라데시는 오랜 정치적 혼란에 빠졌고 훈다카 무스타파 아메드가 5대 대통령이 되는 가운데 11월3일 라흐만의 밑에서 총리를 지냈던 세이드 나즈룰 이슬람, 타주딘 아흐마드, 무함마드 만수르 알리 등이 암살당했다.

뒤에 망명한 셰이크 하시나가 총리가 되고 1991년 민주주의 정권이 복귀하자 이번에는 쿠데타 세력들에 대한 처벌이 시작돼 파루크 라흐만 중령을 포함한 6명이 지난 2010년 1월 28일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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