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5일]라면 왕, 영면에 들다

2007 日 ‘라면 왕’ 안도, 심장마비로 별세

2007년 1월5일 ‘인스턴트라면’을 처음 만든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 일본 닛신(日淸)식품 회장이 이케다의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96세.

고(故) 안도 회장은 1910년 대만에서 태어났다. 20대 초반인 1933년 도일, 리츠메이칸(立命館)대학에서 공부했다. 재학 시절 타이베이와 오사카에 의류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 국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다. 사람들은 추운 밤 라면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안도 회장은 1948년 식량난에 허덕이는 일본인들을 위해 간편 라면을 개발했다. 이를 위해 설립한 회사 이름은 ‘닛신식품’이었다.

그는 1958년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인 ‘치킨 라면’을 만들었다. 1971년에는 물만 부으면 되는 ‘컵라면’을 세계 최초로 개발, 식품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1999년에는 이케다에 ‘라면 박물관’을 열었다.

2005년 7월에는 미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일본인 우주비행사 노구치 소이치(野口聰一)를 위해 ‘우주(Space)라면’을 개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라면협회(IRMA)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기준 세계 라면소비량은 총 953억 9000만 개.

그중 연간 최대 라면소비국은 중국(423억 개)이고, 인도네시아와 일본, 베트남, 미국에 이어 한국이 34억 1000만 개로 6위를 차지했다.

국민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한국이? 75개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1957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신중동 정책 발표

1957년 1월 5일 미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왜 한국전을 서둘러 종식시키는지’, ‘인도차이나에서 베트남전을 종식시켰는지, 수에즈 운하 국유화 사건으로 빚어진 제 2차 중동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했는지 원칙을 담고 있는 ‘아이젠하워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한 뒤 1956년 10월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침공, 유엔의 이름으로 휴전을 성사시킨다. 영국군과 프랑스군을 철수를 성사시킨 직후의 상황이다. 아직,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군을 거부하며 강짜를 부리던 시점이다.

아이젠하워는 이스라엘의 고집으로 중동 평화가 위협받을 시점에 놓이자, 특사를 보내기 전 의회의 협력부터 구한 것이었다. 이날 독트린 발표 후 아이젠하워는 특사를 보내 이스라엘로 하여금 중동평화안을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가했다. 결국 이스라엘은 1957년 3월 군대를 철수했다.

1924년 한국 독립운동가 일왕 암살기도 실패

1924년 1월5일 한국의 독립운동가 김지섭(金祉燮, 1885년~1928년 2월20일) 선생이 일본 왕의 거처인 도쿄 소재 왕궁에서 폭탄을 터뜨려 일왕을 시해하려 왕궁진입을 시도, 폭탄을 던졌지만 3개 모두 불발되고 현장에서 체포됐다.

김지섭 선생의 호는 추강(秋岡)이며, 경상북도 안동(安東) 출생이다. 경북 상주보통학교 교원을 거쳐 금산지방법원 서기, 김응섭(金應燮) 법률사무소 상주출장소원을 지냈다. 1919년 3·1 운동 때 독립운동에 가담해 활약하다가 1920년 중국으로 망명, 의열단에 가입해 상하이·베이징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1924년 제국의회에 참석하는 일본 고관들을 저격하고자, 1923년 12월20일 중국 상해를 출발 같은 달 31일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1924년 1월3일 도쿄에 잠입했으나, 제국의회가 무기한 연기됐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계획을 바꿔 일본 궁성(宮城)의 니주바시(二重橋)에 폭탄 3개를 던져 일왕을 죽이기로 했다. 마침내 1월5일에 왕궁진입을 시도하며 폭탄을 던졌으나, 3개 모두 불발됐다.

현장에서 체포된 김 선생은 일본제국주의들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의 변호사 후세 다쓰지는 “김지섭이 조선 민중 전체의 의사를 대표한 사람이고 폭탄이 불발했으니 불능범”이라면서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일본 검찰은 사형을 구형하고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1928년 2월20일에 이치가야(市谷) 형무소에서 복역 중 사형 당했다. 한국 정부는 1962년 김지섭 선생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1899년 아귀날도 장군 독립선언

필리핀의 독립운동가로 ‘건국의 영웅’ 불리는 에밀리오 아귀날도(Emilio Aguinaldo, 1869년 ~ 1964년)가 1899년 1월5일 독립을 선언하고 그해 필리핀 혁명 정부를 조직, 대통령이 됐다.

1897년 필리핀을 지배해 온 스페인에 맞서 독립 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홍콩에 망명했다. 이듬해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의 원조를 받아 다시 독립 전쟁을 지휘했다.

전후 미국이 필리핀을 지배하게 되자 체포됐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중 다시 독립운동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미국-필리핀 간 전쟁에서 민간인이 60만 여명, 군인 약 2만여 명이 각각 사망했고, 부상자는 150만 여명에 이르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만행보다 훨씬 많은 희생으로 전해지고 있다.

필리핀은 1946년 7월16일 미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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