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칼럼] 한덕수 무역협회장의 선택은?

코엑스몰 200여 임대업자들이 한국무역협회의 갑자스런 계약해지 통보에 분노하고 있다. 한 상점에 걸려있는 '지하상인 협박하는 무역협회 자폭하라'는 배너구호가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 2월, 주미 한국대사 근무 중 갑작스레 귀국해 대한무역협회 회장에 오른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요즘 심경이 어떨지 궁금하다.

무역협회가 산하기관으로 두고 있는 코엑스몰에서 영업을 하는 200여 점포주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청와대, 여야 정당 등에 탄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전말은 이렇다. 핵안보정상회의가 끝난 바로 그날(3월27일) 코엑스몰측은 입점주들에게 ‘임대차계약종료 및 재계약거절’ 공문을 매장과 자택으로 내용증명편으로 보냈다. “재계약갱신은 안 된다”는 게 요지였다.

코엑스몰측은 지난해 4월 입점주들을 한 곳에 불러모아 “2014년 상반기까지 리모델링을 실시하겠다”고 설명했다.

당시 재입점과 관련해서는 아무 언급이 없어, 상인들은 재입점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리모델링을 학수고대했다. 그러던 코엑스몰측이 1년이 지난 3월 말, 재계약거절 공문을 보낸 것이다. 이에 상인들이 시위 등 집단행동을 보이자 코엑스몰측은 “불법으로 재임대한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취한 조치”라며 “기존 상인들에게는 가산점을 주어 재입점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득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입점주들은 “코엑스몰측이 가산점 등을 주어 재입점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하지만, 이는 재계약거절 공문에 대해 상인들이 항의하자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상인들은 가산점을 받는다고 해도 재입점이 가능할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사측의 수수료매장 전환 방침에 대해 상인들은 “이는 대기업 등이 직영하는 매장에 적합한 방식으로, 우리같은 소규모 매장에선 전혀 이윤을 남길 수 없는 구조”라고 반발한다.

코엑스몰 리모델링 후 재입점을 보장하라며 1인 시위중인 임차인.

상인들은 “불법으로 재임대한 사람 몇몇 쫓아내려고 대다수 상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공포 분위기까지 조성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사측은 한달 이상 입점주들의 대화요구에 불응한 채 재입점과 관련해서도 ‘말로만 흘릴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아, 상인들의 불만만 더 키우고 있다.

무역협회는, 상인들이 “한덕수 회장 물러가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한덕수 퇴진’ 구호를 외치자 “리모델링을 실시하는 주최는 무역협회가 아니라 코엑스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인들은 물론, 무역협회나 코엑스몰조차 리모델링 추진은 무역협회 주도 아래 추진되고 있음을 다 알고 있다. 물론 코엑스몰 간부들도 의견개진은 할 수 있지만 핵심 결정권은 무역협회가 갖고 있다는 사실은 상식이나 다름없다. 특히 한씨 전임인 사공일 전 회장이 퇴임 직전 기자간담회에서 “코엑스몰을 세계적인 쇼핑몰로 만들지 못하고 퇴임하는 것이 아쉽다”고 밝힌 것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전세계를 상대로 한국무역을 전방위 지원하는 무역협회가 리모델링 같은 ‘사소한’ 일에 몰두할 시간이 있을까 여길 수도 있다.

무역협회는 한달 이상 입점주들의 대화요구에 불응한 채 재입점과 관련해서도 ‘말로만 흘릴 뿐’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아, 상인들의 불만만 더 키우고 있다. 사진은 무역협회 전경.

또 한덕수 회장 입장에선 전임자 때 시작한 일로 자신이 비난받는 것에 대해 억울해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회장이 놓치고 있는 게 바로 이것이다. 무역은 좋은 상품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좋은 상품도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면 팔지 못하는 건 자명하다. 남을 설득하는데 신뢰보다 더 좋은 무기는 없다. 불과 200여 점포주들과 소통은커녕 불신의 골만 깊게 파고 있는 무역협회 처사가 안타깝기만 하다.

어찌 보면 이번 코엑스몰 문제는 거대조직의 작은 일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다. 꼭 그럴까? 200여 상인들과 거기 딸린 1300여 직원들, 그리고 1000여 상인가족의 사활이 걸린 일이다. 특히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 특히 아시아지역에서는 이같은 일들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다만 정치권이나 언론에선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아 묻혀있을 뿐이다. 이번 코엑스몰 사태는 경우에 따라서는 해외에서까지 주목받게 될지도 모른다. 무역협회라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일종의 ‘나비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 부총리와 국무총리, 그리고 이명박 정부에서도 주미대사를 지내는 등 탁월한 능력을 지닌 한덕수 회장은 누구보다 자기관리가 철저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기록이 남는 공항 면세점 이용은 절대 하지 않을 정도다.

무역협회는 이윤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기업이 아니라 공익법인에 속한다. 특히 공정무역이 세계적인 추세인 요즘, 무역강국인 대한민국의 무역협회 총수 한덕수 회장이 이번 코엑스몰 사태를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되는 이유다.

이상기 기자 winwin0625@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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