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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9월의 붉은 잎’ 박노해
이른 아침 9월의 푸른 숲에서 역광에 빛나는 붉은 잎 하나 너는 너무 일찍 물들었구나 흰 원고지 위에 각혈하는 시인처럼 시절을 너무 앞서 갔구나 너무 민감하게 너무 치열하게 모두가 물들어 떨어지고 말 시대를 예감하며 홀로 앞서 몸부림하다 핏빛으로 물든 붉은 잎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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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9월’ 오세영 “코스모스는 왜 꽃이 지는 계절에 피는 것일까”
코스모스는 왜 들길에서만 피는 것일까. 아스팔트가 인간으로 가는 길이라면 들길은 하늘로 가는 길. 코스모스 들길에서 문득 죽은 누이를 만날 것만 같다. 피는 꽃이 지는 꽃을 만나듯 9월은 그렇게 삶과 죽음이 지나치는 달 코스모스 꽃잎에서는 항상 하늘 냄새가 난다 문득 고개를 들면 벌써 엷어지기 시작하는 햇살 태양은 황도에서 이미 기울었는데 코스모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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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聞曉笛’-새벽 피리소리를 들으며- 윤윤기
更深耿耿抱愁懷 城北我聞曉笛催 驥路卄年孤枕上 ?窓依舊送明來 깊은 밤 근심으로 뒤척이다 성북쪽에서 새벽 재촉하는 피리소리 흘러간 20년, 외로운 침상봉창은 어제처럼 밝은 날 맞이하네 이 시는 손병주 독자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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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빈집’ 기형도(1960~1989)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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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숨’ 이병률 “신은 인간에게 채찍 대신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서로 가까이도 말며 말하지도 말라며 신은 인간에게 채찍대신 마스크를 나눠주었다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였을까 입을 가만히 두라는 뜻이었을까… 몇백년에 한번 사랑에 대해 생각하라고 신이 인간의 입을 막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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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바람이 불어오면’ 박노해
에티오피아 고원에 바람이 불어오면 아이들은 어디로든, 어디로든 달려 나간다 초원을 달리고 흙길을 달리고 밀밭을 달린다 허기를 채우려는지 온기를 찾는 것인지 소년은 소녀를 만나고 친구는 친구를 부른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내 영혼은 달려 나간다 어디로든, 어디로든, 그리운 네가 있는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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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가을 法語’ 장석주
태풍 나비 지나간 뒤 쪽빛 하늘이다. 푸새것들 몸에 누른빛이 든다. 여문 봉숭아씨방 터져 흩어지듯 뿔뿔이 나는 새 떼를 황토 뭉개진 듯 붉은 하늘이 삼킨다. 대추 열매에 붉은빛 돋고 울안 저녁 푸른빛 속에서 늙은 은행나무는 샛노란 황금비늘을 떨군다. 쇠죽가마에 괸 가을비는 푸른빛 머금은 채 찰랑찰랑 투명한데, 그 위에 가랑잎들 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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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길’ 박노해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 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가라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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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시] ‘감사하다’? ?정호승
태풍이 지나간 이른 아침에 길을 걸었다 아름드리 프라타너스나 왕벚나무들이 곳곳에 쓰러져 처참했다 그대로 밑동이 부러지거나 뿌리를 하늘로 드러내고 몸부림치는 나무들의 몸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키 작은 나무들은 쓰러지지 않았다 쥐똥나무는 몇 알 쥐똥만 떨어드리고 고요했다 심지어 길가의 길가의 풀잎도 지붕 위의 호박넝쿨도 쓰러지지 않고 햇볕에 젖은 몸을 말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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