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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유현옥의 추억창고] 주판, 선생님 “1원이요, 2원이요···” 맞춰 잰 손놀림
초등학교 특활시간에 배웠던 과목 중에 주산이 있었다.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글씨는 사람을 대신해서 보여주는 것이므로 크고 반듯하게 써야 한다”고 교육하셨다. 그래서 나는 펜글씨를 예쁘게 쓰려고 勁筆部에 들어간 적이 있고, 또 셈을 잘하고 두뇌발달에 좋다는 주산반에도 들어갔었다. 남들처럼 급수를 높은 단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했지만 4, 5학년 어디쯤에서 주산반에서 열심히 암산을 놓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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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유현옥의 추억창고] “엄마, 이 금반지는 절대 팔면 안돼!”
여성들은 나이가 들면 몸에 붙이는 장식이 늘어난다. 청춘 시절, 젊음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을 지나 옷 색깔도 조금 더 원색에 가까워야 얼굴색이 살아나는 것 같고, 목걸이나 귀걸이를 달아야 화사해지는 것 같은 심정이 드는 중년쯤이면, 액세서리가 하나 둘, 늘어난다. 소박한 결혼패물이 있었지만 도둑을 맞아 그마저도 없는 나에게는 별로 값 안 나가는 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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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유현옥의 추억창고] 가족사진의 향수
그 즈음, 시내 중심가에 있던 사진관 진열장에는 으레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 70년대는 경제개발프로젝트와 함께 가족계획이 정부의 잘살기 정책으로 이루어졌고, 부부를 중심으로 하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 구호와 함께 핵가족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었다. 근대적 개념의 가족이 형성되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 시절, 가족사진찍기는 단란한 가정의 상징이었다. 결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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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유현옥의 추억창고] 엄마표 손재봉틀
재봉틀을 보면 언니들이 생각난다. 60, 70년대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에서 봉재산업 일꾼이던 언니들에게 재봉틀은 ‘꿈이자 절망의 대상’이었다. 열악한 고용환경과 저임금은 그들에게 인간적인 삶을 포기하게 했으나 그래도 그 일을 거부하게는 못했다. 절대빈곤에 놓인 가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 또는 오빠를 교육시켰던 언니들은 그들 가정에 희망의 통로였다. 그들의 경제활동이란 것은 실상, 가정에서 일어나는 가사노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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