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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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느림과 비움

    나는 요즈음 다큐멘터리를 많이 본다. 산책할 때면 유튜브에 나오는 강연들을 듣기도 한다. 살면서 세상과 접속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따금씩 그 속의 말 한마디에서 귀중한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엊그제는 마흔 살에 출가해서 혼자 암자에 사는 스님의 일상을 보았다. 남은 인생을 수행자로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해서 출가했다고 말한다. 그 말이 연한 색깔로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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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옆방 노인의 죽음

    실버타운의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던 부인이 내게 말했다. “그저께 한밤중에 413호에서 잠깐만 와달라고 전화가 왔어요. 가서 보니까 할아버지가 옆에 있던 할머니가 죽은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저녁을 좀 많이 먹었는데 토하더니 그렇게 됐대요.” 노부부가 실버타운에 와서 일주일 정도 되자 한 사람이 죽었다. 부인의 말이 이어졌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가 한국으로 온 부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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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명문대 교수 넘어뜨린 ‘악마의 미끼’

    명문대 무용과 교수였던 그녀는 그 계통의 권력이었다. 대학입시 실기시험의 심사위원장이었고 예술단 단장으로 수 많은 무용수들 중 누구를 프리마돈나로 무대 중앙에 세우나 하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행복을 다 거머쥔 것 같았다. 성실하게 외조를 해주는 고급 공무원인 남편은 장관이 멀지 않았다. 아이들도 탈없이 자라주었다. 그녀의 꿈은 서울에서 세계적인 무대를 펼쳐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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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나의 성공 뒤엔 수많은 이들의 실패와 희생이 있음을…

    나의 생업이었던 변호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에너지가 고갈되어 가는 것 같다. 요즈음은 소가 되새김을 하듯 나와 인연이 닿아 내 삶속을 잠시 스쳐 간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때 보지 못했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일전엔 업무일지 속에서 조용히 잠자던 그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이빨 틈이 벌어진 그의 모습은 헐렁해 보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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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탈주범 신창원 변호 때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마음이란 뭘까? 어떤 유행가는 내 마음 나도 모른다고 한다. 어떤 작가는 이 마음이 저 마음을 때리고 저 마음이 이 마음을 친다고 표현했다. 마음은 그 깊이와 넓이를 모르는 우주라고도 한다. 마음은 느끼는 것이지 설명되어지는 게 아니라고 한다. 나는 재미삼아 인공지능 ‘챗봇’에게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챗봇은 “마음은 두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와 화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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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돈 문제에 얽힌 역대 대통령들

      나는 자존감을 가지고 인생을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사는 것 같이 살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건 돈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 돈이라는 낚시 미끼에 아가미가 꿰면 한없이 비굴하게 된다. 사업가들을 단골손님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지압사를 알고 있다. 그가 이런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검사들은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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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어느 법조인들의 젊은 시절

    노량진 고시촌의 모습이 화면에 나오고 있다. 공무원 시험준비를 해왔다는 청년의 얼굴에 절망감이 가득하다. 생활비가 없어서 더 이상 고시원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흐린 저녁 들길에 혼자 있는 사람같이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처지가 된 것 같다. 서글픈 얼굴에 눈물이 어리고 있었다. 또다른 고시원의 작은 방이 나타나고 벽에 걸린 모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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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많은 돈 갖고도 쓸 줄 모르는 ‘가난한 부자들’

    내가 묵는 실버타운에서 안타까운 모습을 봤다.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부자 노인의 혼자 살아가는 모습이다. 실버타운은 사실상 아파트에 혼자 사는 것과 비슷하다. 공동식당과 같이 쓰는 부대시설이 있을 뿐이다. 노인들끼리 소통하지 않는다. 밥도 따로 먹는다. 실버타운을 버스터미널로 비유하기도 한다. 우연히 스치는 여행객 정도의 관계라는 것이다. 파킨슨병에 걸린 채 혼자 산다는 그 부자 노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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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깨달음 전하는 판사

    “불교의 깨달음이란 고정관념, 선입견 없이 사물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 해변을 산책하는데 스마트폰에서 저절로 유튜브의 동영상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민감한 터치 화면이 우연히 건드려진 것 같았다. 나타난 화면 속에는 금빛 불상 앞에서 신도들에게 법문을 하는 근엄해 보이는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백발에 눈이 옆으로 길게 찢어진 노인이었다. 화면 밑에는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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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나는 그런 기적을 봤다. 남들이 내 말을 믿어줄까”

    아직 어둠이 엷게 남아있는 새벽이었다. 상가의 문을 열지 않은 제과점 유리문 앞에 작달막한 남자가 서 있었다. 유난히 키가 작다. 얼핏 어린아이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입고 있던 점퍼 안에서 묵직한 망치를 꺼냈다. 그리고 제과점의 유리문을 힘껏 내리쳤다. ‘펑’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유리가 가루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그는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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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하는 사람들

    “그들의 내면에서 훈훈함을 느꼈다” 정보요원이라고 하면 자기를 안개 속에 두고 있는 것 같은 존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정보요원을 희화화하는 만화를 보면 꼭 검은 안경을 쓰고 무표정한 캐릭터였다. 나는 그런 정보요원들의 본체를 보고 싶었다. 그들을 먼 기억 저쪽에서 끌어내기 위해 나는 36년 전 풍경 속으로 들어 간다. 긴장감이 감도는 특전사령부 연병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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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대통령이 찾아간 국수집 “뛰지 말어, 다쳐. 배고프면 또 와!”

    한 선배가 카톡으로 삼각지 뒷골목에 있다는 국수집 얘기를 보냈다. 지금은 따님이 운영하지만, 주인 할머니는 낡은 탁자 네개 좁은 가게에서 25년간 한결같이 연탄불로 진하게 멸치국물을 우려내 국수를 만들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일을 나가는 막노동자, 학생, 군인들이 들어와 쓰린 속을 따뜻한 국물로 풀고 가곤 했다. 어느 날 오후 노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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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조국 교수와 서머셋 모옴의 ‘크리스마스 휴일’

    중학 2학년 시절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국어교과서를 열심히 암기하고 있었다. 나를 지켜보던 친구가 딱하다는 눈길로 나를 보다가 이런 말을 했다. “공부할 필요 없어. 그 아이의 집에 가면 기말고사 문제와 답을 미리 얻어낼 수 있어.” 그게 사실이었다. 재벌집 아들이 학교 선생님들한테 전과목 개인과외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아이 성적을 올리기 위해 시험문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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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의 시선] 돈이 절실한 분들께

    공사 현장에서 잡부 일을 하는 20대 청년의 하루가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수은주가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날이다. 어둠이 짙은 새벽 4시경 직업소개소의 대기 의자에 청년이 앉아 있다. 대학생이라고 한다. 사무실의 직원이 그날 잡부 일을 할 장소를 청년에게 알려주었다. 일을 얻은 청년은 작업복과 신발이 담긴 묵직한 가방을 들고 공사장으로 가는 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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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상익 칼럼] 단역 배우와 앙꼬 빵으로 성공한 두 노인 이야기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낸 고교 1년 선배가 있었다. 백수가 되어 세월을 보내다 보니 그 참에 연극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실은 대학 때부터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돈을 벌어야 하고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바람에 기회가 없었다. 그는 동숭동의 연극무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주인공같은 화려한 역할은 없어도 나이먹은 사람이 하는 단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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